[카드뉴스] 관악구 문화역사 탐방

내 손안에 서울

Visit719 Date2017.08.24 14:40

관악구 편

우리동네 문화유산 이야기 10탄!<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

강감찬 집터의 유일한 흔적, 삼층석탑

절벽에 숨겨진 미륵, 마애미륵불좌상

미륵불과 미륵신앙

건물 자체가 문화재인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미술관이 간직한 굴곡의 역사

문화유산의 위치와 용도는 변해도 소중함은 천년만년 그대로

“우리동네 한 뼘 문화유산”
-관악구 편-

#1
나만(?) 몰랐던 우리동네 문화유산 이야기 10탄!
#문화유산의변천사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공간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관악구의 문화유산 이야기!
우리동네 한 뼘 문화유산을 확인해 볼까요?

#2
한 뼘 문화 유산, 첫 번째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그가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 하여 ‘낙성대’라 불린다. 거란 40만 대군을 무찌른 강감찬 장군을 기려 사당과 부속 건물을 새로 세웠다.

#3
한 뼘 상식 “강감찬 집터의 유일한 흔적, 삼층석탑”
실제 강감찬 장군의 집터는 봉천동 218번지다. 집터에는 1층 몸돌에 ‘姜邯贊落星垈’(강감찬낙성대)라는 글씨가 새겨진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새로 조성된 낙성대 사당 경내로 옮겨졌다.

#4
한 뼘 문화유산, 두 번째 절벽에 숨겨진 미륵, 마애미륵불좌상
관악산 중턱의 거대한 절벽 바위면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불상. 조선 인조 8년(1630) 4월 박산회(朴山會) 부부의 시주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어, 사료로 가치가 높다.

#5
한 뼘 상식 “미륵불과 미륵신앙”
너비 5m, 높이 6m의 거대한 바위에 미래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을 형상화했다. 17세기 조선에도 미륵신앙이 유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한 뼘 문화유산, 세 번째 건물 자체가 문화재인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대한제국 때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건물로, 서양의 고전주의 양식 건축물이다. 현재 ‘미술관이 된 구 벨기에 영사관’ 건축 아카이브 전시를 통해서 근대사의 흐름과 함께해 온 건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7
한 뼘 상식 “미술관이 간직한 굴곡의 역사”
1905년 벨기에 영사관으로 쓰이다가, 이후 일본 요코하마 생명보험회사 사옥,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활용되었으며, 광복 후 해군헌병대,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사료관으로도 쓰였다.

#8
문화유산의 위치와 용도는 변해도 소중함은 천년만년 그대로! 관악구의 명소를 직접 만나보세요.
우리동네 한 뼘 문화유산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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