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이다’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시민기자 김수정·최용수

발행일 2017.08.18. 10:14

수정일 2017.08.18. 12:57

조회 1,296

안중근 의사 대형 좌상 ⓒ김수정

안중근 의사 대형 좌상

“나는 천국에서도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뤼순감옥을 찾아온 동생들에게 남긴 안중근 의사 유언 중 일부이다. 도마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 1879.09.02~1910.03.26.)는 대한제국 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제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조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힌 민족의 영웅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2010년 유품과 자료 전시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평화 사상을 널리 알리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기념관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 12개 기둥 형태는 단지동맹을 결성한 12명의 독립투사를 상징한다 ⓒ최용수

안중근의사기념관, 12개 기둥 형태는 단지동맹을 결성한 12명의 독립투사를 상징한다

우윳빛 유글라스(U-glass) 12기둥 형태의 독특한 건물 외양은 안 의사와 함께 대한독립을 맹세하고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한 12인을 상징한다. 12개 기둥 중 하나는 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안중근 의사를 상징한다. 아이들과 함께 기념관을 찾는다면 이 투명 기둥을 찾아보는 것도 뜻 깊은 관람이 될 것 같다.

기념관은 제1, 2, 3전시실, 기획 및 체험전시실, 추모실 그리고 광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 제1전시실부터 지상 2층까지 차례로 관람하는 것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안중근 의사 대표적 유묵(遺墨,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과 단지동맹회 동지 혈서 내용을 새긴 벽을 따라 내려가면 입구가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만날 수 있는 것은 안중근 의사 대형 좌상이다.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혈서 아래 홀 중앙에 자리했다. 도마 안중근 의사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입장 시 참배하는 곳으로, 거대한 안중근 의사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시대적 배경 ⓒ김수정

시대적 배경

제1전시실에는 안중근 의사 생애와 반동학군 투쟁, 빌렘 신부와 천주교 입교,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 등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떻게 의사가 ‘도마(Thomas, 多默)’라는 호를 얻게 되었는지도 설명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 부조, 전언 등의 상징물을 지나 안중근 의사가 태어나 활동한 시대적 배경이 연도순으로 설명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 사건들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일본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1882년 임오군변,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1904년 러일전쟁, 1905년 을사늑약까지 침략이 노골화되어 간다. 안중근 의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1879년에 태어났다.

동의단지회 ⓒ김수정

동의단지회

제1전시실에는 그가 태어나 성장기까지의 이야기와 함께 가문에 대한 소개도 이어진다. 그의 가문은 항일독립운동가 명문이다. 15명이 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로 서훈을 받았으며, 안중근 의사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다. 그가 위대한 독립운동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같다.

지상 1층은 제2전시실이다. 독립운동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했던 전시물을 볼 수 있다. 1907년 연해주에서의 항일운동, 동의회조직, 의병투쟁, 1909년 11명의 동지를 규합 국권을 회복하자고 결성한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등 중국 망명 후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깨물어 ‘大韓獨立(대한독립)’이란 혈서를 썼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진실은 왼손 약지를 자르고 받은 피로서 썼다는 사실을 생생히 알 수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이런 모습을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안중근 가문도 ⓒ김수정

안중근 가문도

제3전시실에서는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안중근 의사의 외침이 흘러나온다.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하면서 소리친 ‘대한만세!’라는 러시아어다.

단지동맹회 동지들과 함께 한 하얼빈 의거에서부터 법정투쟁, 뤼순감옥 수감생활 5개월, 수감 중 남긴 자서전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 200여 점의 옥중유필, 1910년 3월 26일 순국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모형과 영상, 음성을 통해 안중근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안응칠 역사’에 이어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시민들이 안중근 의사에게 쓴 감사와 존경의 편지들이 체험실 벽면에 가득하다 ⓒ최용수

시민들이 안중근 의사에게 쓴 감사와 존경의 편지들이 체험실 벽면에 가득하다

이외에도 기념관에는 의사의 옥중유묵(獄中遺墨)이 전시되어있는 ‘기획전시실’과 안중근 의사에게 편지쓰기, 스탬프 찍기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의사를 추모할 수 있는 추모실이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 앞뜰은 ‘안의사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동상도 있다. 광장에는 안 의사 대표 유묵을 돌기둥에 세워 광장을 찾는 시민들이 그 우국충절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안 의사 유묵은 전체가 보물 569호로 지정되어 있다.

2월 14일을 `도마 밸런타인`으로 부르자는 H중학교 학생들 ⓒ최용수

2월 14일을 `도마 밸런타인`으로 부르자는 H중학교 학생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된다. 법정에서 그는 대한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한 정당한 행동이었고 자신은 전쟁 중 잡힌 포로임을 주장하였으나, 일본 법정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한다.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로만 대부분 알려져 있는데요. 이날이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거든요. 일제가 이날을 기억하지 못하게 밸런타인데이를 선전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기념관에서 만난 학생들은 이제부터라도 밸런타인데이라는 명칭 대신 ‘도마 밸런타인(Thomas Valentine)’으로 부르자며 UCC를 제작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대견해 보였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입구 ⓒ김수정

안중근의사기념관 입구

돌아오는 길, 단순히 우리나라 독립만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와 인간 평등에 대해 고민했던 안중근 의사가 지금 현재 모습에 얼마큼 만족할 것인지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고 말했다. 그것이 아픈 역사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곧 여름방학도 끝이 난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아이들과 아직 나들이를 못했다면 남산공원을 추천한다. 기념관 인근에 백범광장과 김구 동상, 김유신 장군상 등을 관람하며 나라사랑 정신과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 안중근 의사 기념관
◯ 관람 시간 : 3월~10월 10:00~18:00 / 11월~2월 10: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3789-1016, 1026
◯ 주소 : 서울시 중구 소월로 91
◯ 홈페이지 : ahnjunggeun.or.kr

기념관 앞뜰에 있는 `안의사광장` (좌) 백범광장과 김구 동상, 서울 타워 등 산책하기 좋은 장소다(우) ⓒ최용수

기념관 앞뜰에 있는 `안의사광장` (좌) 백범광장과 김구 동상, 서울 타워 등 산책하기 좋은 장소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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