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즈음에 '전쟁 속 여성의 인권'을 만나다

시민기자 최은주

발행일 2017.08.14. 18:07

수정일 2017.08.14. 18:07

조회 695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것과 동일한 소녀상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것과 동일한 소녀상

지난 7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 소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평생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광복을 맞이한 지 72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둘러볼 만한 기념공연과 전시가 많이 있었지만 그 중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찾아 나선 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였다.

4만5,000개 검은 벽돌로 이루어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외관

4만5,000개 검은 벽돌로 이루어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외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성미산 자락 평범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들 아픔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첫 공간이다. 10년 동안 평범한 시민들이 모은 돈으로 마련됐다. 이런 곳에 누가 찾아오기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검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의 육중한 문을 밀었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실내에는 예상 외로 많은 사람이 해설용 헤드폰을 끼고 관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물관 성격상 학생이나 일본인 등 단체 관람객이 많다고 했다.

이 날도 일본인관람은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지하→2층→1층 순으로 관람하면 이야기 흐름을 따라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철문을 열자 지하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이 나왔다.

군화 소리와 함께 거친 자갈길을 걸으며 소녀들이 연행 당시를 그린 그림을 보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가던 소녀들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10여 명과 단체관람 온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들 삶을 나타내는 거친 자갈길

할머니들 삶을 나타내는 거친 자갈길

지하 전시실에선 악몽 같은 그때의 일을 증언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통스러웠던 그들의 삶과 마주했다. 그들이 겪었던 일들은 2층을 오르는 계단 벽돌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거예요’ ‘원통해서 못 살겠다, 내 청춘을 돌려다오’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 살아야 합니다’ 할머니들 회한과 분노에 찬 메시지를 읽으며 올라오니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됐다.

2층 역사관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기록들이 전시돼 있었다. 위안소 입장권과 할인티켓, 군인들에게 제공된 콘돔 등 위안소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즐비했다. 일본인 군인이 친구들과 위안소에 갔던 일들을 기록한 수첩 앞에서, 학생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자신들이 본 것들을 옮겨 적고 있었다.

관람을 마친 학생이 소감을 적고 있다

관람을 마친 학생이 소감을 적고 있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해방 후에도 그들 삶이 여전히 참혹했다는 점이다. 가난과 질병은 물론 사회의 냉대, 고독과 싸워야 했다. 전쟁이 끝났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과거 상처를 안은 채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강하게 버텨냈다.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위안부 존재를 부인하던 일본을 향해 “내가 바로 증인”이라며 용기 있는 증언을 한 김학순 할머니 덕에 위안부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전시장에서는 당시 김학순 할머니 기자회견 장면과 신고 전화를 받던 전화기, 피해자 증언을 청취하기 위한 일본산 녹음기도 볼 수 있었다.

생 마지막까지 진실을 밝히고 평화를 외쳤던 ‘위안부’ 할머니들 추모공간에서 참배를 마친 관람객들은 이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본인 여성 두 사람이 소녀상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한 여성이 소녀상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인 관람객이 소녀의 손을 꼭 쥐고 있다

일본인 관람객이 소녀의 손을 꼭 쥐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는 설렘 속에서 광복 72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광복의 밝은 빛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70년 전 아픔이 치유되지 않고 상처로 남아있는데 이를 묻어두고는 용서도, 화해도 없다.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죄를 저지른 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길뿐이다.

“일본군 사과가 있어야 우리의 용서가 있을 것”이라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곳 특별전시실에는 전쟁 중 한국군에게 강간당한 베트남 여성들에 대한 전시도 열리고 있다.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엔 성폭력 문제로 고통당하는 여성들이 있다. ‘전쟁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가혹한가, 우리는 왜 전쟁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를 깨닫게 한다.

■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안내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11길 20(성산동 39-13)
○ 관람 안내 : 화~토요일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요일~월요일은 정기휴관)
○ 관람요금 :일반 3,000원 , 어린이(초등학생 이하) 1,000원
○ 문의 : 전화(02-392-5252),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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