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공평동 꼼장어 구이

정동현

발행일 2017.08.07. 17:30

수정일 2018.02.21. 16:33

조회 2,941

꼼장어 구이-지도에서 보기

숯불에 초벌구이 해서 나오는 공평동꼼장어

숯불에 초벌구이 해서 나오는 공평동꼼장어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⑨ 종로구 공평동꼼장어

중간이 없는 나라다. 뭐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전국에 폭염 경보가 떨어진 날, 멈출 줄 모르는 태양의 기세는 땅을 뜨겁게 달궜다.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 인격이란 가변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날 불판 앞에 앉겠다는 생각은 자학과 극기 둘 중 하나에 속한다.

하지만 뜨거운 날씨보다 더 필요했던 것은 뜨겁고 매콤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입 속에서 꿈틀댄다면 더욱 좋았다. 그리고 독주 한 잔을 목구멍으로 넘긴다면 더위 따위, 소리 한 번 크게 내지르면 끝나고 말 것 같았다.

종로로 향했다. 이제는 사라진 지번 주소인 공평동에 음식명이 붙으면 이곳 이름이 완성된다. ‘공평동 꼼장어’다.

오피스 빌딩들이 줄을 선 이 곳에 바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다. 날이 선선해지면 백이면 백 줄을 서야 간신히 드럼통 앞 낮은 의자에 엉덩이를 뉘일 수 있다. 그러나 날은 삼복더위, 숯불 앞에 앉아서 꼼장어를 굽겠다는 기백을 가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

여름에도 줄이 서 있는 공평동꼼장어

여름에도 줄이 서 있는 공평동꼼장어

그 계산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퇴근 하자마자 간 ‘공평동 꼼장어’에는 우리를 위한 단 하나 자리가 있었다. 우리 뒤로 온 사람들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듯한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줄을 서야 했다.

사실 이 집에서 꼼장어를 굽는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모두 다 구워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메뉴는 안쪽 주방에서 계량이 되어 식당 밖으로 향한다. 그곳에 이 생물을 굽는 사내들이 있다. 얼굴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고 온 몸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 식당 성공 비결이란 이 사내들 땀에서 비롯된다.

저 메뉴들을 일일이 불판 앞에서 굽다보면 시간은 오래 걸리고 수고는 수고대로 들기 마련이다. 술잔을 앞에 두고 하염없이 집게를 들고 꼼장어를 뒤척이는 것도 일, 게다가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앉아서 기다리면 다 익은 꼼장어가 대령되니 움직일 것은 손가락과 손목 뿐이다. 메뉴 구성도 다채롭다.

공평동꼼장어 내부 모습

공평동꼼장어 내부 모습

“꼼장어 못 먹는데…….”

이곳은 꼼장어의 고장 부산이 아니라 서울, 여럿이 모이면 꼼장어를 앞에 두고 망설일 사람이 꼭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상호는 꼼장어를 앞세웠으나 메뉴는 다양하다. 쭈꾸미, 돼지고기, 껍데기, 막창 등이 있는데 하나 같이 ‘불’자가 앞에 붙는다. 양념도 벌건 것이 입에 넣으면 ‘맵다, 매워’가 절로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이것들도 뜨겁게 맵기보다는 입맛을 돋울 정도로 살짝 혀를 덥히기만 한다.

식사 메뉴도 빠지지 않는다. ‘짬밥’이란 이름을 가진 무채비빔밥, 계란후라이가 들어있는 ‘벤또’는 테이블 마다 꼭 올라와 있는 인기메뉴이고 매운맛을 덜어주는 계란찜도 빠트릴 수 없다.

테이블

무엇보다 이 집 하이라이트는 뒤에서 지켜보듯 빠르게 찬과 소스를 채워넣는 직원들이다. 맛있다고 소문이 나 바쁘게 돌아가는 집이면 부르고 또 불러도 대답이 없는 직원과 덩달아 찾아오는 불친절에 아무리 맛있어도 ‘다시는 안 와’라고 여러 번 이를 악물게 된다. 이 집은 다르다. 아무리 바빠도 대답과 행동은 빠르고, 호쾌하기까지 한 서비스는 재즈 빅 밴드의 화려한 앙상블을 보는 것 같다.

뒷 주방 ‘이모’들은 드럼처럼 묵묵히 재료를 쓸어 담고 가게 밖 불꽃 앞 남자들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석쇠를 뒤집는다. 가혹하기까지 한 더위에도 종업원들 얼굴에는 짜증이 없었고 그 기운은 손님에게 쉽게 전염됐다.

매운 입을 달래주는 달걀찜

매운 입을 달래주는 달걀찜

꼼장어에 돼지고기, 막창까지 추가해 초록병 줄을 세우던 날, 목소리 큰 이 집 ‘왕언니’는 얼음이 가득 든 봉지를 손님 목에 걸어주며 “많이 더우시죠”라고 말을 건냈다. 취기는 찬찬히 오르고 배는 슬그머니 차올랐다.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빠르게 자리를 비켜주며 계산을 했다. 왕언니는 카드를 긁으며 힘있는 목소리로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물었다. 10여 년 전부터 그랬듯이 나의 대답은 똑같았다.

“그럼요. 잘 먹었습니다.”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