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철도 건널목 ‘땡땡거리’ 순례기

시민기자 김종성

Visit1,192 Date2017.07.28 18:17

경의선 숲길에 남아있는 정겨운 철도 건널목 ⓒ김종성

경의선 숲길에 남아있는 정겨운 철도 건널목

폐선이 된 옛 철길을 걷기 좋은 곳으로 조성한 경의선 숲길은 연남동, 홍대, 마포, 용산 등을 지나가기 때문에 만남의 장소로도 참 좋다. 이 길을 걷다 보면 금방이라도 기차가 지나갈 듯한 철도 건널목도 만난다. 건널목과 경보 차단기, 역무원 아저씨와 지나는 동네 주민들 모습을 복원해 놓은 옛 철도 건널목 풍경이 실감 난다.

주변 고깃집과 주점 등이 몰려 있는 이곳은 ‘신촌 땡땡거리(마포구 와우산로32길)’라 불리던 곳이었다. 마포 산울림소극장 건너편의 작은 샛길에서 시작해 와우교 아래로 옛 철길을 따라 홍대에서 신촌으로 이어지는 200m 남짓한 길이다. 이곳은 숲길이 조성되기 훨씬 전부터 동네 주민들과 홍대, 신촌 소재 대학의 학생들이 정담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다. 기차가 저 멀리서 다가오면 건널목에는 차단기가 내려지고 ‘땡땡땡’거리는 경보음이 기찻길 옆 골목과 거리로 울려 퍼지면서 자연스레 땡땡거리라 불렸다.

문득 서울 속 또 다른 철도 건널목이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지나다 마주쳤던 ‘서소문 건널목’, ‘백빈 건널목’, ‘돈지방 건널목’ 등이다. 이 건널목들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 있을지 궁금해 찾아가 보았다.

서소문과 서소문역이 있었던 유서 깊은 건널목 ⓒ김종성

서소문과 서소문역이 있었던 유서 깊은 건널목

100년 넘은 전통의 서울 미동초등학교와 서소문 아파트가 위치한 서대문구 미근동에 또 다른 ‘땡땡거리’가 있다. 공식 명칭은 ‘서소문 건널목(서대문구 충정로6길)’이다. 지금은 이름만 전하는 서소문(西小門, 한양의 4소문(小門) 중 하나로 서쪽의 소문)이 있던 자리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허문 뒤, 경의선 열차가 지나는 서소문역을 지었다. 서소문역 역시 후일 철거되고 이제 철도 건널목과 열차 소리만 남았다.

열차, 차량, 사람들로 늘 바쁜 서소문 철도 건널목 ⓒ김종성

열차, 차량, 사람들로 늘 바쁜 서소문 철도 건널목

한적했던 서소문 거리에 ‘땡땡땡’ 신호음이 울리면 어디선가 빨간 봉을 손에 든 역무원이 나타나고, 차단기가 내려오면서 지나가던 사람들과 차들을 일제히 멈추어 세운다. 곧이어 KTX, 무궁화호 열차, 전철, 화물열차 등 다양한 기차들이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하루 열차 통과횟수가 약 580회로, 전국 철도 건널목 중에서 하루 평균 교통량이 가장 많다는 게 역무원의 말이다.

이곳은 ‘미근동 기찻길’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과거 이 일대가 온통 미나리꽝이었단다. 뜻을 찾아보니 미근동(渼芹洞)은 ‘미나리(芹)가 물결(渼)치는 마을’이란 뜻이었다. 미근동 땡땡거리 주변 골목엔 3대째 운영하는 ‘형제옥’ 설렁탕집이 있는가 하면, ‘미근동 쌀국수’ 등 작지만 예쁘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골목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영화, CF에 나올법한 풍경의 백빈 건널목 ⓒ김종성

영화, CF에 나올법한 풍경의 백빈 건널목

조선시대 궁에서 퇴직한 백씨 성을 가진 빈(嬪, 임금의 후궁에게 내리던 정일품 내명부의 품계)이 건널목 뒤쪽에서 살면서 이 길로 행차했다고 하여 붙여진 ‘백빈 건널목(서울 용산구 이촌로29길)’이다. 건너편에 단선 철로 건널목인 ‘삼각 백빈 건널목’과 함께 땡땡거리를 이루고 있다. 뒤편에 높이 솟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낮고 오래된 집들이 용산 방앗간, 기찻길 주점, 여천식당, 쌀집 등과 나란히 모여 있다. 땡땡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동네 주민과 눈인사를 나누는 고양이 두 마리는 백빈 건널목에서 일하는 아저씨들과도 친근했다.

백빈 건널목의 마스코트 고양이 ⓒ김종성

백빈 건널목의 마스코트 고양이

현대식 아파트와 빌딩 속 철길과 그 옆으로 줄지어진 작은 가게들, 골목길의 집들은 영화나 방송, 사진가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풍경이다. 신호에 맞춰 차들이 서고, 지나는 사람들과 자전거가 서 있는 모습이 영화나 TV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아늑한 분위기의 동네라 그런지 건널목에서 들려오는 ‘땡땡땡’ 경보음이 무척 정겹고 아련하게 들려왔다.

땡땡거리를 탄생시킨 ‘땡땡땡’ 종소리는 녹음된 소리임에도 실제로 작은 종을 치는 것처럼 풋풋하고 아련한 기분이 든다. 저절로 향수에 빠지게 하는 옛 종소리지만 철도 건널목엔 중요한 첨단장치가 있다. 건널목 주변에는 레이저 감지기를 부착해서 혹시 건널목에 들어온 차량이 빠져나가지 못하면, 감지기가 이를 감지하여 건널목 수백 미터 앞 선로 변에 설치된 기관사용 경보기에 경보등을 켠다. 기관사는 건널목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하고 미리 속도를 줄일 수 있다. 더불어 국토교통부에서는 철도 건널목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가 철도 건널목에 접근하면 내비게이션을 통해 ‘일시 정지’ 경고 메시지를 알리는 서비스를 시행한다고 한다.

건널목을 지키는 역무원과 잠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보기와 다르게 건널목은 매연이 심했다.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데다 열차가 건널목을 지날 때 속도를 줄이는데 이때 브레이크가 작동되면서 먼지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전철의 배차 간격이 짧아지는 출퇴근 시간엔 더욱 심해서, 역무원 한 분은 열차가 지나갈 때 잠시 숨을 멈춘단다. 마스크를 쓰면 되지 않을까 물었더니 호루라기를 자주 불어야 해서 마스크 쓰기가 번거롭다고 한다. 떠올려보니 서소문 철도 건널목에서 일하는 분들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철도 건널목은 작은 부주의로 인해 큰 인명 사고가 나는 곳이니 그렇겠구나 싶었다.

이 외에도 땡땡거리가 조성되지는 않았지만 작은 철도 건널목의 역할을 묵묵히 하는 ‘서빙고 건널목’, ‘돈지방 건널목’이 있다. ‘돈지방 건널목’ 이름의 유래를 역무원에게 물어 봤다. 독특한 이름 덕에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인근에 일본군이 주둔해서 그런 이름(둔→돈)이 붙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이렇게 철도 건널목마다 이름이 있지만 인터넷상의 지도에서는 건널목 이름을 검색해도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 이 건널목들이 마치 사회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평범하고 믿음직한 내 이웃 사람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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