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청정구역 ‘고궁 나무 산책’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7.07.04. 10:30

수정일 2017.07.04. 17:30

조회 1,072

나무가 드리운 풍성한 그늘 아래 맑은 공기를 맡으며 걷기 좋은 고궁 ⓒ김종성

나무가 드리운 풍성한 그늘 아래 맑은 공기를 맡으며 걷기 좋은 고궁

연일 폭염주의보, 오존주의보가 발효되는 도시의 여름은 더욱 무덥게 느껴진다. 고궁은 그런 도심 속에서 시원한 그늘과 청정한 공기를 선사해 준다. 며칠 전 기자는 서로 이웃하고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방문해 산책했다.

이곳은 나무 그늘이 그리운 요즘 같은 날 자주 찾게 된다. 큰 나무일수록 내뿜는 산소가 많아서인지 그늘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햇빛, 물, 공기만으로도 푸르게 높이 자라는 나무 아래에서 쉬다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모하며 사는지 생각하게 한다.

오래된 궁궐이 편안한 쉼터처럼 다가오는 건 품이 넉넉한 노거수(老巨樹: 오래되고 큰 나무) 덕분이다. 소나무, 회화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명목나무 외에도 느릅나무, 졸참나무, 들메나무 등 다채로운 수종의 나무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왠지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수년 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 방문 후 우리 조상들이 나무를 무척 사랑했음을 깨닫게 됐다. 경복궁의 두 배가 넘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자금성에는 나무가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궁에 나무가 많으면 자객이 들어와 숨기 쉽고 왕족을 경호하기 어려워 심지 않았다고 한다.

창덕궁을 지키는 듬직한 노거수 회화나무 ⓒ김종성

창덕궁을 지키는 듬직한 노거수 회화나무

창덕궁 정문으로 들어서면 카메라 렌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노거수 회화나무 세 그루가 따가운 햇볕을 가리고 우뚝 서 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듬직한 어른 같은 나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하다.

고궁에서 자주 만나는 소나무는 조선의 선비와 시인들이 사랑했던 나무다. 용이 승천하듯 휘어진 소나무의 자태는 그림과 사진의 훌륭한 소재가 되어준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았던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복원 작업이 진행될 때 왕실이 있는 경복궁보다 먼저 복원할 정도로 조선 시대 왕들에게 사랑받았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지난 1997년 서울 5개 궁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장수목 느티나무 ⓒ김종성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장수목 느티나무

우리말 이름과 한반도 자생나무인 느티나무는 더욱 정감이 가며 눈길을 머물게 한다. 수백 년 동안 세월의 풍상에 몸통이 파여 큰 외과수술을 받아도 여전히 푸른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꼈다. 천 년을 산다는 은행나무, 회화나무 등 주목 못지않은 장수목답다. 푸근한 기분이 드는 느티나무는 사람이 나무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낸 ‘쉴 휴(休)’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다.

도시에서 매미 소리는 소음으로 치부되고는 하지만, 시골에서는 다르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있으면 바람결에 들리는 매미 소리가 금세 자장가 소리로 바뀐다. 늙음을 슬퍼하거나 추하게 생각하는, 심지어 혐오까지 하는 시대에 오래될수록 빛을 발하는 나무가 부럽고 더 좋아진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가장 많이 심었던 뽕나무 ⓒ김종성

조선시대 궁궐에서 가장 많이 심었던 뽕나무

고궁에는 뽕나무들도 심어져 있다. 열매가 열리는 시기면 달콤하고 건강에 좋은 오디가 땅에 떨어지곤 한다. 창덕궁엔 천연기념물로 대접받는 뽕나무가 살고 있는데 안내글을 보니 옛날 궁궐 안은 뽕나무 천지였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누에’에 뽕잎을 먹이고 명주실을 얻어 옷을 만드는 일이 농사에 버금가는 중요한 일이었다.

세종 5년(1423) 양잠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가 임금께 올린 공문에 경복궁에는 3,590그루, 창덕궁엔 1,000여 그루의 뽕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이 나무 이름을 하필 뽕나무로 지은 이유도 알게 됐다. 소화가 잘돼 방귀를 뽕뽕 뀐다 해서 옛날엔 오디를 뽕이라고 불렀단다.

무더위를 한층 더 식혀 주는 창경궁의 연못 ‘춘당지’도 나무 그늘이 이어져 있어 걷기 좋다. 연못가에는 보기 드문 백송(白松) 세 그루가 살고 있다.

조선 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귀한 흰 소나무 백송 ⓒ김종성

조선 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귀한 흰 소나무 백송

잎은 여느 소나무처럼 푸르지만 이채롭게도 나무껍질이 하얀색이다. 사람이 하얀 머리로 늙어가듯, 백송도 처음엔 푸른빛이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하얀 껍질로 변한다. 조선 시대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이 귀한 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창경궁과 홍화문 주변은 고궁에 온 건지 숲속에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나무들이 풍성하다. 나무에 놀러 온 새들의 경쾌한 지저귐이 상쾌한 기분을 더해준다. 안내문에 의하면 창경궁은 우리나라 고궁 가운데 가장 다양한 나무들이 사는 곳이다. 한국 특산종인 미선나무를 비롯해 무려 160여 종의 귀한 수종이 보존돼 있다고 한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통곡을 들었다는 허리 굽은 회화나무 ⓒ김종성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통곡을 들었다는 허리 굽은 회화나무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통곡을 내내 들었다는 허리 굽은 회화나무도 창경궁에 산다. 19세기 초반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묘사한 ‘동궐도'(東闕圖, 국보 제249호)의 선인문 앞에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는데 바로 이 나무다.

■ 창덕궁 안내
○ 위치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도보 10분
○ 창덕궁 후원 관람 예약 www.cdg.go.kr
■ 창경궁 안내
○ 위치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출구 300m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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