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산공원둘레길' 걷기 더 없이 좋은 날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7.07.04. 10:13

수정일 2017.07.04. 16:13

조회 2,302

궁산공원둘레길 정상에서 만난 넓은 잔디광장ⓒ최용수

궁산공원둘레길 정상에서 만난 넓은 잔디광장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사전이 알려준 ‘산책(散策)’의 의미다.

바쁜 도심 생활에서 산책의 즐거움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혼자도 좋고 여럿이도 좋다. 나이가 들수록 재미가 더해지고,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그러하다.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때론 새로운 아이디어가 채워지기도 한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더위는 잠시 잊어요.서울 녹음길 209선`을 소개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동네 녹음길인 ‘궁산공원둘레길’이 빠져있었다. 궁산공원둘레길은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이나 데이트 장소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짙푸른 녹음 속에는 우리 역사의 이야기도 숨어 있다. 지금은 궁산공원둘레길의 녹음을 느끼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양천향교역 2·3번 출구에서 500여 미터 걸어오면 보이는 궁산공원둘레길 입구 ⓒ최용수

양천향교역 2·3번 출구에서 500여 미터 걸어오면 보이는 궁산공원둘레길 입구

궁산(宮山)은 가양동 한강변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임진왜란 때부터 한국전쟁까지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전한다. 궁산공원둘레길은 입구부터 1.63km, 고도 74.3m의 ‘궁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순환형 녹색 산책길이다. 산책길을 천천히 따라 걸으면 50여 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그러나 둘레길 주변에 널린 자연과 양천향교, 겸재미술관 그리고 궁산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를 하나씩 음미하다 보면 반나절은 족히 양보해야 하는 곳이다.

개화기가 시작된 무궁화동산, 궁산공원둘레길에서 만난 양천향교 ⓒ최용수

개화기가 시작된 무궁화동산, 궁산공원둘레길에서 만난 양천향교

둘레길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선 ‘무궁화동산’이 반겨준다. 붉은색, 흰색, 보라색 등 무궁화 1,000여 그루가 100여 미터의 동산을 이루고 있다. 본격적인 개화 시기가 되면 아이들의 자연 학습장이 된다. 7월부터 10월까지 무려 100여 일 동안 꽃을 피운다. 피었다 지고 또 핀다고 하여 ‘무궁화(無窮花)’라 불리는 나라꽃(國花), 잘 가꾸어진 무궁화동산을 서울에서 만난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무궁화동산을 지나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왼편 계곡 아래로 기와지붕 고택(故宅)이 보인다. 조선 태종 12년(1411년)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었던 ‘양천향교’이다. 1981년에 복원한 후 현재 서울시 문화재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있다. 대성전, 명륜당, 전사청, 동재·서재 등 옛 향교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명륜당(明倫堂)’ 앞을 지나다 보면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생생히 들릴 것 같다.

궁산둘레길에서 만난 잣나무 군락지 ⓒ최용수

궁산둘레길에서 만난 잣나무 군락지

향교를 지나 걸음을 재촉하면 궁산 서편 자락의 ‘잣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서로 키 자랑하듯 하늘로 목을 뺀 잣나무들, 도심 한가운데에서 빽빽한 잣나무 군락지가 있다니 놀랍다. 예로부터 잣나무는 중풍, 손발 저림, 현기증, 기침, 변비, 산후풍, 이질 등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피톤치드 넉넉한 삼림욕을 경험해도 좋다. 잣나무가 우리나라 고유 수종임을 알게 된 것은 또 하나의 덤이다. 그래서인가 잣나무를 영어로 ‘Korean Pine’이라 부른다고 한다.

잣나무 군락지에서 가파르고 험한 고개를 오르면 궁산의 정상이다. 넓은 잔디밭, 사방이 탁 트인 곳이어서 그 자체가 자연 전망대이다. 김포공항, 행주산성은 물론 멀리 북한산도 조망할 수 있다. 정상의 동쪽 끝에는 ‘성황사(城隍祠)’라는 작은 집이 있다. 지금부터 400여 년 전부터 산 아랫마을 민초(民草)들의 번영과 행복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악귀와 재앙을 막아준 고마운 ‘여신(女神)’에게 제물과 굿을 하던 곳이란다.

겸재정선이 소악루에서 내려다본 한강과 북한산 모습 ⓒ최용수

겸재정선이 소악루에서 내려다본 한강과 북한산 모습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가 동쪽 하산 길로 접어들면 아름다운 자태의 ‘소악루(小岳樓)’가 있다. 한강을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소악루는 1737년(영조13) 이유(李楡)가 지었다. 중국의 웨양루(岳陽樓)의 경치와 버금간다 하여 ‘소악루’라 이름 붙였다. 1741년 양천현령(지금의 강서구)으로 부임한 겸재 정선이 이곳에서 수많은 진경산수화를 그린 곳이라 유명해졌다. 소악루에 오르니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과 멀리 북한산, 목면산(남산)이 품안에 안겨와 마치 겸재가 된 듯 시심(詩心)이 생겨난다.

궁산공원둘레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 ⓒ최용수

궁산공원둘레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

소악루 아래 둘레길은 솔 냄새 가득한 소나무 숲길이다. 다양한 운동기구와 쉼터, 야외용 식탁 등이 놓여 있어 가족 나들이, 소풍 장소로 인기가 좋다. 가파른 하산 길에는 나무계단을, 장마철이면 질퍽대던 산책로에는 코코매트를 깔아서 안전한 산책길로 재탄생했다. 가파른 탐방로는 숨이 차오를 만큼 오르기가 쉽지 않지만, 하지만 산을 그리워하는 시민들에게는 등산의 묘미를 맛보게 해준다.

궁산공원둘레길은 자연과 조망, 역사 이야기들이 겹겹이 속을 채우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길이다. 알록달록한 무궁화 꽃향기와 잣나무의 피톤치드, 소나무 숲이 내뿜는 솔 냄새를 두루 맛볼 수 있는 ‘여름에 손잡고 걷기 좋은’ 특별한 녹음길이다.

■ 궁산공원둘레길 안내
○ 소재지 :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산6-4
○ 교통 :
-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 2번 출구, 신방화역 4번 출구
- 버스 6712, 6643, 6631, 양천향교, 겸재정선기념관 하차(도보8분)
○ 문의 : 강서구청 공원녹지과(02-2600-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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