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40%...노량진서 먹어본 ‘이것'

서울식품안전뉴스

발행일 2017.07.11. 09:00

수정일 2017.07.11. 18:19

조회 2,177

컵밥

"45번이랑 7번이요" 익숙하게 번호를 외치는 손님 주문에 맞춰 주인은 손 빠르게 음식을 담아낸 다. 큼직한 일회용 용기에 흰밥 한 주걱, 볶음 김치 한 국자, 김 가루 솔솔. 여기에 저마다 취향에 맞는 재료를 추가로 선택해 쓱쓱 비빈다. 맛은 달라도 모양과 먹는 방법은 비슷하다. 이것이 '컵밥'이다.

공시생(공무원 취업 준비자)을 위한 노점 음식에서 출발한 컵밥은 3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노량진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공시생 애환을 모아 담은 특별한 음식 컵밥. 과연 이 컵밥 한 그릇에는 어떤 역사가 비벼져 있을까?

10년 전쯤 먹었던 컵밥 기억을 떠올리며 노량진을 찾았을 때 컵밥 포장마차는 예전 그 자리에 없었다. 2015년 겨울, 컵밥 노점들을 품었던 노량진역 앞 철교가 철거되면서 그 앞의 컵밥 포장마차들도 함께 철거됐다고 한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려 할 때 영화 속 죽은 주인공이 다시 살아나듯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노점단체와 동작구청이 1년 간 논의를 거쳐 '노량진 컵밥 거리'를 조성해 놓았다는 것이다. ‘컵밥 시즌 2’다.

컵밥거리

컵밥 거리는 노량진역에서 노들역 방면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있다. 노량진역에서 5분 정도 걸으니 노량진 컵밥 거리를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노량진 수산시장 입구로 접어드는 길 맞은편으로는 28개 컵밥 점포가 모여 거리를 이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다시 찾은 컵 밥 노점도 변해 있었다. 예전 낡은 포장마차 대신 깔끔하게 각진 모습의 컵밥 점포들이 줄 맞춰 늘어서 있다. 하지만 10년이 지 나도 변하지 않은 것은 그때 먹었던 컵밥 그 맛이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한 가게에 들어갔다. 주문과 동시에 음식을 준비하는 아주머니 손길이 눈에 익숙하다. 언제쯤부터 장사를 시작했냐는 물음에 아주머니는 "30년쯤 됐나? 정확하게는 기억 안 나는 데…" 옆에 있던 중년 손님은 "나도 처음 컵밥 처음 먹었던 때가 그쯤 된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네요"라고 거들었다.

사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정확한 대답이다. 컵밥은 노량진이 고시촌으로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흙이 있으면 풀이 자라듯 어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말이다.

'노량진=고시촌'으로 바뀐 것은 70년대 중반부터다. 1976년 정부 인구분산정책에 따라 종로학원들은 사대문 밖으로 이전했다. 노량진 유명 학원들이 이전했고 서울 남부와 경기도 위성도시 공시생들이 모여들었다.

컵밥

노량진 골목 포장마차에서 이들 공시생을 겨냥해 김치볶음밥, 주먹밥 등 저렴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팔기 시작한 것이 컵밥의 시초였다.

쫓기는 시간과 얄팍한 주머니 사정으로 식사시간이면 늘 서글펐던 공시생들. 이들에게 컵밥은 하나의 위안이었다. 비록 서서 먹는 식사지만 포장마차에서 컵밥을 먹을 때만큼은 가벼운 주머니 사정과 공부 중압감에서 벗어나 순간의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함께 서서 컵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서울시 공무원 중 40%가 이 컵밥을 먹어봤다고 하니 당시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실감할 수 있다.

80~90년대 노량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컵밥도 지역 명물이 됐다. 간단한 메뉴에서 시작한 컵밥이 이 무렵 달걀부침, 스팸, 삼겹살 등을 조합해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로 발전했다. 고시원에서 책을 보면서 밥을 먹으려는 학생들을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방식도 생겨났다. 컵밥은 한국판 테이크아웃(Take Out) 식사 선두 주자였다.

70년대부터 시작한 컵밥 변천사는 약 5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300m 남짓 컵밥 거리에서는 쌀국수와 햄버거, 일본식 라면, 심지어는 스테이크까지 맛볼 수 있었다. 김치와 달걀을 섞었던 초창기 컵밥은 삼겹살, 모짜렐라 치즈 등 재료를 더해 50개가 넘는 메뉴로 발전했다.

컵밥

가격은 2,300원부터 7,500원까지 다양했다. 커피 한잔에 5,000원이 넘는 이 시대에 컵밥은 여전히 싸고 푸짐한 먹거리였다. 하지만 저렴하다고 맛까지 저렴한 맛이라 생각하면 오산. 고급 컵밥에는 모짜렐라 치즈가 가득 들어있어 강남 맛집에서 먹는 퓨전 덮밥을 연상케 했고, 스테이크는 와인에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서 고급스럽기까지 했다. 참치마요컵밥은 예나 지금이나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었다.

컵밥 거리에서 이렇게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상인들 노력이 컸다. 컵밥 점포 상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하고 점포끼리 메뉴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한다. 식사를 주로 파는 점포는 간식을 팔지 않고, 간식 위주의 점포는 밥을 팔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메뉴가 많아지고 알차게 바뀌면서 컵밥 거리를 찾는 사람들도 다양해졌다. 공시생은 물론이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가족 단위 나들이객까지 만날 수 있었다. 컵에 담아 주기 때문에 '컵밥'이지 노량진 세계 미식 거리에 가깝다.

공시생 땀과 눈물에서 시작된 노점 음식 컵밥. 이는 이제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제대로 된 음식 하나로서 소개되고 있다. 10년 만에 다시 직접 보고 맛본 노량진 컵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요리가 됐고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미군 부대 근처에서 먹던 잡탕 찌개가 부대찌개로 자리 잡은 것처럼, 앞으로 노량진 컵밥도 스토리가 담긴 문화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출처:서울식품안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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