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7 숨겨진 역사 명소 ‘남대문교회’

시민기자 방윤희

발행일 2017.06.28. 15:02

수정일 2017.06.30. 16:59

조회 4,574

웅장한 모습의 남대문교회는 석조건물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방윤희

웅장한 모습의 남대문교회는 석조건물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서울로7017’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도심의 건물들 사이로 고딕 양식의 석조건물이 고개를 내밀었다. 수직으로 뻗은 첨탑이 인상적인 이곳은 ‘남대문교회’다. 도시의 현대식 건축물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석조건물에는 사연이 담겨 있다.

서울로7017 연결로를 통해 `알렌기념관`을 지나 남대문교회에 오를 수 있다. ⓒ방윤희

서울로7017 연결로를 통해 `알렌기념관`을 지나 남대문교회에 오를 수 있다.

대우빌딩 연결로인 서울 테라스를 거쳐 남대문교회로 발길이 닿았다. 예전 같았으면 한참을 걸었을 거리인데, ‘서울로7017’의 연결로를 이용하니 편리했다. 서울역 일대를 17개 보행길로 연결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현대식 건물의 알렌기념관 건물을 끼고, 계단을 오르자 웅장한 모습의 남대문교회가 나타났다. ‘서울로7017’에서 봤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다. 남대문교회는 1955년 기공하여 1969년 준공된 고딕 양식 건물로서 1950년대의 석조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고딕(Gothic)’이란 말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들이 그들 이전의 미술을 야만적이라고 멸시하여 부른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 양식이야말로 중세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양식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교회 건축인데, 이 건축양식은 하늘나라에 가려는 중세 사람들의 열렬한 신앙심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도심의 현대식 건물들 사이로 석조건물 남대문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윤희

도심의 현대식 건물들 사이로 석조건물 남대문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 정문 계단을 올라갔다. 로비를 지나면 교육관과 소예배실이 있다. 소예배실은 개방되어 있는데, 벽면 한쪽에 선교지도와 함께 선교사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남대문교회가 선교사에 의하여 최초로 설립되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남대문교회는 1885년 4월 10일 알렌(安連, Horace N. Allen 1858~1932)이 재동에 세운 광혜원에서 태동하였다. 1887년 제중원이 구리개로 이전되면서 선교사 혜론(惠論, John W. Heron 1856~1890)을 중심으로 열심히 전도하면서 교회가 설립되었다.

병원과 공존하던 남대문교회는 1910년 12월 4일에 세브란스병원 구내에 교회당을 헌당하였으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교회당은 1969년 11월 21일에 헌당되었다. 1994년 개·보수를 하였고, 2008년 리모델링을 하여 본당을 2층으로 이전하였다.

평일 저녁 시간이라 본당은 문이 닫혀있었다. 소예배실을 보는 것에 만족하고 돌아서려는데,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울도보관광’ 참가자가 “예배당에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하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하여 교회 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 본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배당 앞쪽에 놓인 파이프 오르간을 발견하고 해설사 선생님이 직원에게 물었다.

“제가 여학교에서 30년간 음악을 가르쳤는데, 예배당에 울려 퍼질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음향담당을 맡은 직원은, 오르간이 깊이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건물의 울림이 좋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건물의 울림을 보여주기 위해 직원이 박수를 치자, 박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오르간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상상을 해본다.

남대문교회 신도는 대략 500~6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교회는 남대문 교회 알렌 선교사를 비롯해 새문안교회(언더우드 선교사)와 정동교회(아펜젤러 선교사)가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목사 출신이었고, 알렌 선교사는 의사 출신이었기에 최초의 교회를 놓고 말들이 많단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1884년 9월 20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알렌이 제물포에 도착함으로써 한국의 개신교가 시작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외국 선교사들이 오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알렌 선교사는 독신으로 아펜젤러 선교사는 신혼 4개월에 한국에 왔다. 그들에 의해 배제학당(1885년), 이화학당(1886), 배화여학교(1898)의 서양학교가 설립되었다.

교회 정문 우측에 남대문교회 설명과 머릿돌(1958.6.25.)이 있다 ⓒ방윤희

교회 정문 우측에 남대문교회 설명과 머릿돌(1958.6.25.)이 있다.

예배당을 둘러볼 수 있게 해준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서, 교회 건물을 빠져나왔다. 교회 정문 우측으로 걸어가자 남대문교회 설명문과 함께 머릿돌(1958년 6월 25일)이 있었다. 현 남대문교회 건물은 건축가 박동진의 작품이며, 서울 미래유산으로(서울특별시 2013_045) 등재되어있다.

한국 교회 음악 선구자인 박태준 박사 찬송비가 세워져 있다. ⓒ방윤희

한국 교회 음악 선구자인 박태준 박사 찬송비가 세워져 있다.

머릿돌을 지나 발길이 머문 곳은 남대문교회 측면에 세워진 박태준 박사 찬송비 앞이었다. 박태준(1900~1986) 박사는 한국 교회 음악의 선구자로 이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우리 음악에 서양 음악 양식을 도입해 한국 근대 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작곡가이며, 해방 후에는 합창단을 창단해 헨델의 ‘메시아’를 초연하는 등 한국교회 음악사에도 빛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름만 듣고서는 그가 누구인지 빨리 와닿지 않을 것 같다. 가곡 ‘동무 생각’, 동요 ‘오빠 생각’을 작곡한 분이라고 하면 아~ 하고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교회 정문 앞, 신록이 드리워진 공원 ⓒ방윤희

교회 정문 앞, 신록이 드리워진 공원

남대문교회는 우리나라 개회기에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하며 복음전파, 교육, 사회봉사 그리고 애국 운동에 힘써왔다. 한국 개신교 역사가 130년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130년 전, 알렌 선교사는 어떤 마음을 갖고 한국에 왔을까? 알렌 선교사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서울로7017’ 산책을 통해 남대문교회에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대문교회를 시작으로 서울역 근처의 숨겨진 명소를 탐방하며, 보물찾기보다 값진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남대문교회’를 둘러볼 수 있는 서울로7017 도보관광 안내

○ 서울로 야행(야간코스) : 서울역15번 출구 - 서울로7017 - 남대문 교회 - 한양도성 - 백범광장 - 남산육교 - 숭례문

○ 소요시간 : 2시간

◯ 도보관광 예약 :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울도보관광(dobo.visitseo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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