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음하셨나요?’ 동서양 해장음식

서울식품안전뉴스

Visit1,060 Date2017.06.07 10:27

술잔

주당들에게 최고의 해장 음식은 술이다. 역사적으로 해장술을 즐긴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3세기 무렵의 진(晋)나라 사람 유령(劉伶)이 아닐까 싶다. 죽림칠현의 한 명인 유령은 삼국시대가 끝난 후 정권 교체기에 접어들자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평생을 보냈다.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지 술 다섯 말을 마시며 해장을 한다는 뜻인 ‘오두해정(五斗解酲)’이라는 고사를 만들어냈다.

술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유령이 부인에게 술을 달라고 조르자 부인이 술잔을 깨트리며 “당신은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반드시 끊어야 한다”며 울면서 매달렸다. 그러자 유령이 “스스로 술을 끊을 수 있는 단계는 지났으니 천지신명께 기도해 끊겠다는 맹세를 하겠다”며 먼저 하늘에 바칠 제물로 술과 고기를 차려달라고 했다.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상을 차리자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하늘이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할 때 술로서 이름을 날리게 했으니 한 번 술을 마셨다 하면 열 말이요, 해장술로는 다섯 말을 마시도록 했다. 그러니 신명께서는 삼가 내 아내 말을 듣지 마소서”라고 기도하며 상 위에 차려놓은 술과 고기를 먹고는 취해 쓰러져 잠이 들었다고 전해진다.

해장음식

동양의 술꾼들이 속 푼다고 해장술을 마시며 핑계로 삼던 고사지만 술에 취한 속은 술로써 풀어야 한다는 것은 비단 동양 주당들만의 논리는 아니었다. 서양 주당들 역시 술이 최고의 해장 음식이라고 생각했는지 영국 주당이 대표적으로 꼽은 해장술이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를 넣어 만든 칵테일, 블러디 메리다.

그러나 해장술이 최고라는 주장은 주당들의 핑계일 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해장 음식은 의외로 설탕물이다. 지금도 술 마신 후 꿀물을 마시며 속을 푸는 것을 보면 인류는 먼 옛날부터 경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속 푸는 방법을 체득한 것 같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웠을 때부터 왕망에 의해 나라가 망할 때까지, 전한 시대 역사를 다룬 한서 ‘예악지(禮樂志)’에는 자장(柘漿)이라는 음료가 아침 숙취를 해소하는 데 좋다고 나온다. 자장은 사탕수수 음료라는 뜻이니 지금의 설탕물이다. 참고로 요즘과 달리 이 무렵 설탕이나 꿀은 왕후장상이 아니면 감히 넘보지 못할 귀한 식품이었다.

서양에서 가장 역사가 싶은 해장 음식은 양배추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지금도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양배추를 식초에 절인 피클을 먹으며 속을 푼다. 양배추가 해장 식품으로 각광을 받은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정치가이자 대문호인 카토(Cato)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양배추는 채소 중에서도 가장 좋아서 요리를 해도 좋고 날로 먹어도 좋다. 날로 먹을 때는 식초에 담갔다 먹는데 놀라울 정도로 소화를 도우며 이뇨 작용을 한다. 술을 많이 마셨을 때는 되도록 많은 양의 양배추 잎을 날로 먹는 것이 좋다. 술 마시기 전보다 술 마신 후 5~6장의 양배추를 먹는 것이 좋다”

유럽인들이 양배추를 해장 음식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아마 카토가 살던 로마시대였던 것 같다. 카토는 여든 살 넘게 살았다고 하는데, 매일 식초에 절인 양배추를 먹은 것이 비결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해장국이 유독 발달한 나라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속풀이 국이 많다. 전주 콩나물해장국에서부터 부산 해운대 복국, 하동 재첩국, 서울 청진동 선지해장국, 서울 무교동 북엇국과 배춧국, 양평 뼈다귀 해장국, 서산 태안의 우럭젓국, 목포 무안 연포탕, 순천 짱둥어탕, 여수 광양 갯장어탕, 영동 보은 괴산의 올갱잇국, 속초 주문진의 곰칫국, 강릉 물회 국수, 양양의 섭국, 제주 갈칫국과 돼지국수 등등.

콩나물국이 해장국

이 중에서도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친숙한 해장국은 아무래도 콩나물해장국이다. 그런데 콩나물국이 해장국으로 발달한 데는 과학적인 근거와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콩나물은 아미노산과 아스파라긴산이 많아 숙취 해소에 좋다. 이는 이미 현대 과학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 역시 진작부터 콩나물국이 술 마신 후 속 푸는데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콩나물에 관한 기록은 6세기 초 ‘신농본초경’에 황권(黃卷)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보인다. 황권은 노랑 콩의 싹인 ‘황두아’를 햇볕에 말린 것으로 바로 콩나물이다. 부기를 빼고 위의 열을 내리는 데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끓여서 복용한다고 했으니 콩나물국이다. ‘동의보감’에도 콩나물은 오장이나 위에 몰린 응어리를 푸는 데 좋다고 나온다.

요즘도 많은 사람이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쓰린 속을 푼다며 고춧가루 얼큰하게 푼 콩나물국을 찾는다. 그런 콩나물국이 무려 1500년 전인 6세기 초부터 속 푸는 데 최고의 명약으로 꼽혔다는 사실이 놀랍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출처 서울식품안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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