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K씨…“당신 대체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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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298 Date2017.04.21 17:14

벚꽃ⓒnsews1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66) 목소리의 검은 유혹

우리는 나름 똑똑하다.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자부한다.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 이야기를 들으면, 왜 저렇게 헛똑똑이인지 이해가 안갈 때가 많다. 그러나 막상 덫에 걸려든 상태에서는 아무리 평소에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 해도 끝이 날 때까지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게 마련이고, 그걸 귀신같이 알아내고 교묘하게 파고드는 것이 바로 사기꾼들의 본능이며 속성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홀로 작은 오피스텔에서 살던 20대 후반의 여성 A씨에게는 외로움이 일상으로 따라다녔다. 매일 똑같은 업무에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전직을 고민하며 직장을 그만두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스마트폰의 채팅 앱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을 보게 됐다. 변리사라는 S는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의사 남편, 그리고 인형같이 예쁜 아이까지 있는 그야말로 다 가진 여자였다. S가 꾸며놓은 집, 입는 옷, 화장, 머리스타일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했고 A씨는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게다가 S는 성격 또한 왜 그리도 다정다감한지 댓글에 예쁘다는 칭찬을 하면 꼭 눈물나게 고마워하는 답글을 달아줬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친해졌고 어느새 SNS와 전화를 통해 흉금을 털어놓는 언니동생 사이가 됐다. 서울에 살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딱히 없었던 A씨에게 S는 그야말로 요정이고 여신이었다. 전직을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며, 디자인공부를 해보고 싶은 희망이며,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속마음까지 A씨가 다 꺼내놓으면 S는 함께 고민해주며 함께 울어줬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능력자 S는 A씨에게 디자인공부를 위한 책을 보내주면서 두 달 정도만 책 속에 있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면 자신이 취업을 시켜주겠노라 했다. S가 보내온 책은 정교한(?) 색칠공부 책이었다.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취업이 된다는 말에 열심히 숙제를 했고, 사진을 찍어 S에게 검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기를 두 달여, S가 드디어 디자인 회사 실장과 이야기가 됐다면서 취업이 가능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다. 다만 취업알선비가 200만원 정도 든다고 했지만, A씨는 앞뒤 잴 것도 없이 그 돈을 보내줬다. 전직을 하려면 그만한 투자는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S는 남자친구까지 소개해줬다. 사업을 하는 H라는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SNS를 통해 소개를 받아 대화를 나눠본 H는 여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다정한 남자였다. 어떤 때엔 지하철역 사물함에 무언가를 넣어놨으니 가서 열어보라며 비밀번호를 알려주기도 했는데, 가보면 달달한 연애편지가 써있곤 했다.

그렇게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A씨는 무언가 자꾸 헛헛함을 느꼈다. S를 만나면서 지루하던 일상은 확 바뀌었지만, 남자친구 H도, 완벽한 여자 S와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만나자고 할 때마다 상대방에서 갑작스러운 일이 터지곤 했다. 게다가 남자친구 H의 사업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자금회전이 잘 안되면서 근심걱정을 하는 그에게 A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몇 십 만원을 부쳐주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S는 A씨에게 해외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안했고, A씨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전화와 SNS로만 친해졌던 S와 여행을 함께 하다니 꿈만 같았다. S는 자신이 거래하는 여행사에서 비행기 티켓을 할인해서 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 티켓 값을 여행사 직원 K에게 맡기라고 했다. A씨는 400만원에 이르는 돈을 여행사직원 K씨를 만나 전달했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뒤, S에게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둘째 아이를 임신해 여행을 잠정적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설마 S가 나를 속였을까, 그렇게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완벽한 품절녀가 뭐가 아쉬운 것이 있어서 나를 속일까 싶기도 했지만 확인은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A씨는 S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다. 전화기 너머 S는 흥분했다.

“언니, 지금 나를 못 믿어서 이러는 거야? 언제부터 나를 의심한 건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그동안 언니랑 쌓아왔던 정이 얼마고 시간이 얼마인데? 정말 실망이야!”

“아니 나는 그게 아니고, 알게 된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얼굴 본 적도 없고, 만나려고 할 때마다 자꾸 미뤄지고, 게다가 취업도 소식이 없고 그러니까 답답해서 그러는 거지. 널 의심한다기보다는…”

S의 서슬에 A씨는 자신이 믿음을 저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이럴 때 S를 잘 알고 있는 남자친구 H를 만나서 의논을 하고 싶었지만 그도 만나기가 힘들었다. A씨는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했던 방식대로 편지를 써서 지하철역 사물함에 넣어두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과 직접 만나고 싶은 소망을 담아 쓴 편지를 지하철역 사물함에 넣고, A씨는 H에게 SNS로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몇 시간 후 지하철 사물함에서 편지를 찾아간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남자가 아니라 젊은 여성이었다. 대체 그녀는 누구이기에 H와 A씨만 알고 있는 비밀번호로 사물함을 연 것일까? 놀랍게도 그녀는 A씨가 S의 소개를 받고 비행기 티켓값을 건네줬던 여행사 직원이라는 K였다. 자신의 눈을 의심한 A씨.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K 앞에 섰다.

“당신 대체 누구야? 네가 왜 H 대신 나타난 거지? 어떻게 알고 나타난 거야?”

K는 당황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내가 물어볼 테니까 대답만 해. 네가 S이고 남자친구 H였던 거야? 거기다 여행사 직원 행세까지 1인 3역을 한 거야?”

“……네”

SNS를 통해 쌓아올렸던 인간관계는 모든 것이 허상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S의 완벽한 외모와 인형 같은 아이사진은 모두 인터넷 쇼핑몰의 모델들 사진을 도용한 것이었고, K는 그저 작은 회사를 다니는 20대 중반의 여자였을 뿐이다. SNS에 거짓말로 화려한 성을 쌓았고, 그곳으로 들어온 A씨에게 미끼를 던져 낚아 올렸던 것이다. A씨는 S의 취업알선을 믿었고, 여행제안을 믿었고, 남자친구의 마음을 믿었기에 몇 달 동안 수백만원을 보내준 것도 억울하지만, 그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는 사실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괴롭다고 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모든 것이 들통난 K의 반응이었다. 며칠 뒤, K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해요. 그래도 언니랑 이야기 나누는 게 즐거웠어요. 제가 빌린 돈은 갚을게요. 만나서 드려도 될까요? 용서 구하고 다시 언니 동생으로 지내면 안 될까요?”

화려함 뒤에 외로움이 짙게 깔린 도시.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외로움을 파고드는 검은 유혹들에 눈이 멀고 귀가 멀기도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검은 목소리, 검은 손은 도처에 있고 그것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내 삶을 파고들지 알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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