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세상 어찌 할꼬?

최경

발행일 2017.03.31. 15:04

수정일 2017.03.31. 17:58

조회 590

31일 목포신항에 도착한 세월호ⓒnews1

31일 목포신항에 도착한 세월호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63) 세상은 가끔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고 필연이 계속되면서 세상이 확 뒤집히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다. 북경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뉴욕의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그래서 현실은 늘 변화하지 않는 것 같고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요즘 답답한 현실 때문에 ‘고구마 만개 먹은 것 같다’는 말이 유행한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더 그렇다.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인용 결정이 난 뒤, 국민들의 관심은 파면된 전직대통령의 구속여부로 옮겨졌다. 과연 전직대통령을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할까. 법원이 구속을 결정할까... 꽤 많은 이들이 말했다. 국민 다수의 뜻으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왔으니, 그것만으로도 됐다고. 어떤 이들은 구속이 되는지 마는지는 더 이상 관심 없다. 파면된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고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파면된 뒤, 거짓말 같이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탄핵인용 결정이 난 그날, 5시간 뒤 세월호 인양날짜가 발표됐다. 3년 가까이 바다 속에 묻혀 있던 배를, 그토록 기술적인 문제로 인양이 어렵다고 했던 그 배를 갑자기 들어 올리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세월호가 모로 누운 채, 바다위로 올라왔다. 1,073일 만이었다. 2014년 4월 16일, 모로 누운 채 침몰해가던 세월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모두를 먹먹하게 했다. 그렇게 금방 올릴 수 있는 것을 왜 3년 동안 인양을 못한 것일까. 기술적인 문제였을까 아니면 다른 문제였을까. 이 모든 건 우연일까.

그리고 오늘 새벽 3시를 조금 넘겨 TV에 속보가 떴다. 전 대통령 구속을 알리는 속보였다. 한 사람이 가고 나니, 또 거짓말처럼 세월호가 뭍으로 돌아왔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해 일어난 대형참사를 그저 교통사고쯤으로 말해온 사람들은 왜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왜 그 많은 학생들이 희생돼야 했는지 침몰한 배를 끌어올려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시체장사’를 하려 한다는 둥, ‘유가족들이 온갖 특혜를 받아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려고 한다’는 둥 온갖 가짜뉴스들을 양산해내며 공격했다.

진실을 덮고 침몰시켜버리려 했던 세력들이 힘을 잃자, 아이들을 가두고 진실을 가뒀던 배가 마지막 항해 끝에 항구에 닿았다. 마치 잘 짜진 영화 시나리오 같은 일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새벽 누군가는 SNS에 지금 이 일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글을 썼고, 누군가는 속보가 뜬 TV 화면을 찍어 올렸으며 또 누군가는 앞으로 비정상이던 모든 것들을 정상으로 돌리는 일을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이로써 모든 일상에서도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결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이제 겨우 정상적인 일들이 시작됐을 뿐이다. 또 얼마나 많은 비정상들이 정상을 가리려고 시도할지 알 수 없다. 아직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수 없는 이유는 그래서다.

#세월호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탄핵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