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뜨는 망리단길에서 떠나는 주민들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7.03.30. 16:36

수정일 2017.03.30. 16:36

조회 1,600

촬영 후 사진작업을 하고 계신 사진사 아저씨ⓒ김종성

촬영 후 사진작업을 하고 계신 사진사 아저씨

다양한 맛집과 별별 카페들이 생겨나고, 방송과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핫’한 동네가 된 서울 마포구 망원동. 이태원의 인기 상권인 ‘경리단길’과 ‘망원동’을 붙여 ‘망리단길’이란 이름까지 생겨났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경리단길 만큼이나 많은 외지인들이 찾아와 북적이는 곳이 되었다. 한강으로 오갈 수 있는 나들목이 이어져 있고, 자전거 가게들도 많다. 기자가 한강 라이딩을 하다 꼭 들리는 동네이기도 하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는 망원동ⓒ김종성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는 망원동

기자는 지인이 운영하는 자전거 가게에 들러 얘기를 나누다 건너편 작은 빵집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는 “동네가 떠서 좋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지인은 “동네가 뜨는 게 문제다”라고 답하였다. 알고 보니 망원동에도 우려했던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되었던 구도심이 번성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신촌이나 홍대, 연남동 등지에서는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말로 ‘둥지 내몰림’ 현상이라고도 한다. 도시의 다양성을 해치고 도시 공간을 획일화하는 주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최근 ‘한옥 카페거리’로 거듭난 종로구 익선동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였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이미 도시에 깊숙이 스며들어와 있다.

망원동은 최근에 이색적이고 개성적인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동네가 한층 활기를 찾았다. 하지만 외부 자본이 들어와 건물주가 바뀌고 월세가 껑충 뛰면서 오히려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주민과 상인들이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임대료가 오르니 미용실, 식당, 슈퍼 등의 생활물가도 같이 오르게 된다. 자연스레 기존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40년간 동네 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온 `행운의 스튜디오`ⓒ김종성

40년간 동네 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온 `행운의 스튜디오`

3월 말에 문을 닫는 ‘털보 사진관’에 찾아가보았다. 정식 가게명은 ‘행운의 스튜디오’이지만, 주민들은 젊은 시절 턱수염을 길렀던 사진사 아저씨(김선수 씨)를 보고 ‘털보 사진관’라고 부른다. 사진관 이름과 젊은 시절 털보 아저씨 사진이 재미있다며 농담을 건네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사진관 폐업을 앞둔 아저씨의 씁쓸한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털보 사진사 아저씨(가운데)ⓒ김종성

젊은 시절의 털보 사진사 아저씨(가운데)

신학대학 출신인 아저씨는 존경하는 어느 목사의 삶을 영화로 제작하고 싶어 사진을 배운 것이 평생 직업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비록 영화는 못 찍었지만 1977년에 사진관을 개업해 무려 40년간 망원동 주민들의 돌 사진, 주민등록증 사진 등을 찍었다. 이곳은 망원동 주민들이 가족사진을 찍어왔던 토박이 사진관이다. 또한, 저렴한 가격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단돈 1만원에 증명사진 9장과 여권사진 8장을 찍어주었다니 무척이나 놀랐다. 돌 사진도 액자포함 1만 원에 제작하였다고 한다. 아저씨는 망원동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고 가게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사진관이 폐업을 하게 된 건 얼마 전 바뀐 건물주가 요구하는 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왔던 월 임대료의 두 배를 훨씬 웃도는 비싼 가격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는 사진관 폐업소식을 들은 많은 동네, 인근 주민들이 가게로 찾아와 가족사진, 여권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촬영 후 컴퓨터로 보정 작업 중인 사진사 아저씨의 모습에서 착잡함과 회한이 느껴졌다. 40년의 세월을 한 동네에서 주민들의 사진을 찍으며 살아왔을 텐데 어찌 안 그럴까….

착한가게임을 알리는 안내(좌)와 사진관 폐업을 알리는 안내(우)가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김종성

착한가게임을 알리는 안내(좌)와 사진관 폐업을 알리는 안내(우)가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아저씨는 더 이상 사진관을 운영하지 않고 당분간 쉴 예정이라고 하셨다. 사진관 폐업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느끼셨는지 이웃 가게 아주머니 표정엔 불안함과 함께 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아주머니는 사진관을 담는 기자의 모습을 보며 어디 가서 ‘망리단길’이란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 그의 부탁 속에서 더 이상 사람들이 동네에 몰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해졌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기자의 지인은 다른 곳들이 그랬듯 망원동도 2~3년 후면 사람들이 물거품처럼 빠져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3년 후면 빠져나갈 물거품 때문에 30년이 넘게 정붙이며 살아온 사람들이 동네를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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