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학교촌, 혜화·명륜동을 가다

시민기자 박혜민

Visit360 Date2017.03.29 15:19

혜화문 안쪽으로 위치한 성곽마을, 혜화·명륜동을 찾았다. ⓒ박혜민

혜화문 안쪽으로 위치한 성곽마을, 혜화·명륜동을 찾았다.

서울 한양도성의 동쪽 흥인지문과 북쪽 숙정문 사이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다. 바로 혜화문이다. 이 문 안쪽으로 역사도심의 동북부에 위치하는 성곽마을, 혜화·명륜동을 찾았다.

혜화·명륜동은 백악산 응봉 자락과 낙산 자락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마을이다. 1401년에 태조가 창건한 흥덕사가 있었다고 하여 그 주변을 흥덕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조선시대 문인들이 그 절경을 시로 지어 읊었다는 한양의 명소 열 곳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혜화문에서 내려다본 혜화·명륜동, 가까이에 보이는 기와지붕부터 멀리 고층 아파트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다. ⓒ박혜민

혜화문에서 내려다본 혜화·명륜동, 가까이에 보이는 기와지붕부터 멀리 고층 아파트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다.

예부터 이곳에는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일을 돕던 사람들이 모여 살며 반촌(泮村)을 이루었다. 성종 때 성균관 입구의 민가를 철거하고 성균관을 감싸고 흐르는 반수(泮水)의 서쪽을 경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 시기부터 반촌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짐작된다.

성균관은 국가 교육기관이자 공자를 모시는 신성한 곳이었으므로, 조선시대 순라군이나 의금부의 관리들조차도 감히 반촌에 들어가지 못하였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성균관은 명륜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명칭이 바뀌다가 지금의 성균관대학교로 확장되었고, 사적 제143호(1964년)로 지정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입구 오른편에 성균관의 정문인 삼문(三門)이 보인다. ⓒ박혜민

성균관대학교 입구 오른편에 성균관의 정문인 삼문(三門)이 보인다.

성균관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제사공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쳤던 교육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성전을 앞에 두고 명륜당을 뒤에 두는 대표적인 전묘후학의 모습이다.

대성전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성현들에게 음식을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제사 의식인 석전대제를 행한다. 올 3월 1일에도 공자탄신 2568년을 맞아 춘기 석전대제를 올렸다. 국가적 행사로 치러지는 석전대제는 엄숙한 제례 절차와 함께 기악, 성악, 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의 하나이다. 발상지인 중국에도 그 원형이 남아 있지 않은 석전대제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성현들을 모시는 대성전 ⓒ박혜민

성현들을 모시는 대성전

명륜당의 양쪽에는 스무 칸짜리 긴 건물인 동재와 서재를 두어 기숙사로 사용하였다. 유생들은 학문을 익힐 뿐 아니라 무예를 겸비하기 위한 수련에도 매진했다고 한다.

이제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된 명륜당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59호인 4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처음에는 암나무였으나 열매가 많이 열리자 이를 주우려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워져 제를 올려 수나무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명륜당에 걸터앉은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다. ⓒ박혜민

명륜당에 걸터앉은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다.

혜화·명륜동은 성균관 외에도 근대 교육기관이 들어서 학교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지금은 이름만 남은 학교도 있지만, 여전히 배움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체육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했던 옛 보성보통학교 자리에는 서울과학고등학교가 들어섰고,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기독교학교인 경신학교는 지금의 경신중고등학교가 되었다. 1928년 혜화공립심상소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혜화초등학교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이 있던 마을이자 근대 교육기관의 밀집지였던 것이다. 지금도 초중고교와 대학이 모여 있고, 서울 내 유일한 국제고등학교가 위치한 학교촌이다.

혜화초등학교(상단 좌), 서울과학고등학교(상단 우), 경신중학교(하단 좌), 경신고등학교(하단 우) ⓒ박혜민

혜화초등학교(상단 좌), 서울과학고등학교(상단 우), 경신중학교(하단 좌), 경신고등학교(하단 우)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학교촌답게 혜화·명륜동에는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하숙집이나 원룸이 많다.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6년째 자취를 한 유영인(29) 씨는 얼마 전 성곽 바로 아랫자락에서 혜화역 부근으로 방을 옮겼다. 졸업한 뒤 현재 은평구에 위치한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이 지역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 그러면서도 여느 신흥 대학가보다 유해시설이 적고 아늑하다는 점을 이곳의 매력으로 꼽았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공원과 문화시설이 집 가까이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학생들이 많이 살지만 학생이 아니어도 살고 싶은 곳이 혜화·명륜동이다.

원룸 빌라 사이로 기와지붕의 낮은 한옥이 공존한다. ⓒ박혜민

원룸 빌라 사이로 기와지붕의 낮은 한옥이 공존한다.

이 동네가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지켜내기 위해 서울시는 ‘혜화·명륜동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참여를 기반으로 한 재생사업을 실현 중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이 지역 내부 가로에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들어설 수 없게 된다. 작고, 독특한 영세점포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 내는 이곳만의 색깔을 흐리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혜화동 로터리는 상업지역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건축물 높이를 4층 이하로 제한하였다. 이 외에 급경사 구릉지에 들어선 집들을 중심으로 주거환경을 관리하는 사업도 시행될 예정이다.

과거의 것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변화를 수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역사적 의의를 지닌 주거지를 보존하는 과정이 까다로운 이유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사실 혜화문 일대 성곽은 한양도성 전체에 걸쳐 훼손이 가장 심한 구간이다. 소유자가 바뀌고 개발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보존과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는 수도 서울의 중심부인 역사도심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 출발점이 될 혜화·명륜동에서 역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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