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탈 수 있다

시민기자 고함20

Visit427 Date2017.03.27 16:37

공원에서의 휴식ⓒ조용근

1.
서울에 올라와선 자전거를 탄 적이 없다. 길도 낯설고, 버스나 지하철 노선이 참 편하게 닦여있기도 하고, 자전거보단 컴퓨터나 술자리 따위에 내 취미의 방향이 쏠린 탓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걸 떠나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자전거가 없다. 간단한 논리과정이다. 자전거가 없으면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사실 자전거가 없다는 사실에 그리 큰 아쉬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길도 낯설고, 버스나 지하철 노선이 참 편하게 닦여있기도 하고, 자전거보단 컴퓨터나 술자리 따위에 내 취미의 방향이 쏠리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날씨가 갑자기 풀려서, 또 서울 살이 몇 년에 제법 주변 길들이 눈에 익어서, 더불어 게임이나 술 약속이 점차 지겨워져서 나는 문득 생각하고 말았던 거다. 어디어디 정도는 나갈 때 자전거 타기 딱 좋겠다고, 동네 여기저길 돌아다닐 때 자전거가 있으면 참 편하겠다고, 저녁 시간엔 운동도 할 겸 자전거가 있으면 꽤나 멋지겠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려면 자전거가 있어야지. 주말엔 본가에 내려가 예전에 타던 자전거를 찾았다. 몇 년을 아파트 복도에 묶어놨던 내 파란 자전거는 어느새 경비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주차장 뒤편 창고로 옮겨져 있었다. 안장 위의 먼지를 걷어내며 기대에 부풀었던 나는, 그러나 페달에 발을 올려놓으며 빠르게 좌절했다. 페달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페달만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차체는 묘하게 휘어 있고, 상큼함을 자랑하던 파란 도색은 여기저기 녹이 슬었으며, 브레이크는 헐렁하고, 벨은 온데간데없다. 놈은 더 이상 탈 수 있는 자전거가 아니었다. 가까스로 몇 년 전 자전거를 타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내고, 그대로 녀석을 아파트 복도 끝에 처박아 둔 과거가 생각났다. 몇 년 전의 업보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자전거 대신 허망함만 가지고 돌아온 서울에서 나는 여전히 자전거가 없다.

따릉이ⓒ호미숙

2.
자 그럼 이제 어떡할까. 마땅한 수입도 없는 처지에 자전거를 새로 사는 건 부담이다. 어디서 공짜 자전거가 떨어질 일도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날씨가 너무 좋은걸. 페달을 밟으며 봄바람을 음미하는 탐욕스런 상상을 이미 해버렸다. 다행히도 나는 자전거가 없지만, 자전거가 없는 이곳 서울엔 나 같은 욕망의 노예들을 위한, 아니 사실 그렇지는 않고 우리네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거창한 사명을 건 시민정책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서울자전거 따릉이’라는 귀엽고 익숙한 이름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는 자전거 무인대여 시스템이라는데 너무 홍보 같으니까 서울시가 제공하는 소개 문구는 이만 줄이자. 교통체증과 대기오염, 고유가 문제를 해결한다는데, 운전면허도 승용차도 없는 나야 뭐 예전부터 문제해결에 조금은 일조해온 듯도 싶지만 이 부분도 넘어가자. 언제나 그렇지만 정책 실현엔 이용자 수가 중요한 거니까, 나의 욕망과 서울시의 정책목표가 자전거라는 지점에서 하나로 맞닿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도록 하자.

따릉이 덕분에 비용문제는 해결됐다. 대여료가 있기야 하지만 시간 당 천 원 정도니 내 빈약한 주머니 사정으로도 충분하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사용 실력도 틈틈이 연마해놨으니 대여도 어렵지 않다. 어렸을 적 책 속에서 본 디지털 세계가 마침내 펼쳐진 2017년의 첨단 서울에선 놀랍게도 스마트폰 하나면 자전거도 빌릴 수 있다.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통해 정기권 결제도 가능하지만 내 경우 일일권으로도 충분하다. 간단한 대여 과정을 거치고, 가좌역 앞 대여소에서 마침내 자전거를 만났다. 하얀색 차체에 검은 안장, 바퀴엔 녹색이 배색된 수수한 자전거다. 교통사고 이전 전성기를 달리던 내 사제 자전거보다는 못하겠다만, 뭐 이 정도면 귀엽다 싶다. 물론 감동스럽게도 페달은 아주 매끄럽게 움직였다.

샛강공원 라이딩ⓒ최용수

3.
어렸을 적 고향에 하나뿐인 자전거 대여소를 이용한 적이 있다. 아마 지금도 창고에 묶여있는 내 비운의 파란 자전거를 사기도 한참 전의 일이다. 눈치 챘겠지만 대여소가 하나뿐이라는 점은 이용자에게 굉장한 불편을 초래하는 악몽이었다. 날씨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자전거를 타고 시외까지 나갔던 그 날, 나는 내 옆으로 버스들을 떠나보내며 지친 허벅지로 자전거를 몰아 원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 점에서 서울자전거 따릉이의 최대 업적은 자전거 반납 장소를 임의로 설정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자전거의 대가로 머나먼 대여소에 맡겨둔 주민등록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하지만 첨단도시 서울은 디지털 세계다) 삐걱거리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지나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적당히 타다 돌아와 반납해야 하는 골치 아픈 동선 때문에 자전거 이용에 제약을 겪을 필요도 없다.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그냥 자전거를 타고 싶을 때도 상관없다. 서울시 전역에 차고 넘치는 대여소를 어플로 확인하고 반납 장소를 지정해 동선을 짜면 그만이다.

홍대역에 약속을 잡아놨던 터, 반납장소를 근방에 설정하고 허벅지 걱정 없이 페달을 밟았다. 연남동 여기저기를 쏘다니다 시간이 남아 동교동 돌아 신촌을 들러 조금 더 달렸다. 날씨 좋은 봄이다. 자전거 타기엔 더 없이 적합하다. 푹 쉬렴, 내 고장난 파란 자전거야. 서울시에선 네가 없어도 봄을 만끽할 수 있더구나.

내 엉뚱한 욕망과는 같지 않더라도 자전거를 한 번쯤 타보시라. 봄 날씨가 간지러워 왠지 모르게 지하철 타기가 아쉽다면 더욱 좋다. 컴퓨터 게임이나 술자리가 지루해졌다면 더 좋고, 본가에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가 한 대 있다면 더더욱 좋다. 교통체증과 환경오염에는 별 관심이 없어도 사실 괜찮다. 생색은 아니지만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탈 수 있으니까 편하게 이용하도록 하자. 감동스럽게도 페달은 아주 매끄럽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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