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시민기자 김경민

Visit429 Date2017.02.28 15:50

진관사 입구의 모습ⓒ김경민

진관사 입구의 모습

1919년 3.1운동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중에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 등 많은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이 각자의 종교적 신념을 넘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참여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은평구에 위치한 고려시대 천년 고찰인 진관사를 중심으로 전국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백초월 스님은 만해 한용운에 비견되는 대표적인 항일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 독립운동을 위해 정진하다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 일제의 모진 고문에 의해 청주교도소에서 옥사했다.

지난 2009년 진관사 칠성각을 해제 보수 중 백초월 스님의 1919년 당시 항일운동을 대변해주는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 귀중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발견됐다. 독립신문 , 신대한신문, 자유신종보 등 희귀자료를 비롯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태극기에 싸여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 사이에 90년 동안 숨겨져 있었다. 뒤늦게나마 백초월 스님이 국내는 물론 상해임시정부 등 해외에 걸쳐 화롱한 독립운동의 증명으로 재평가되기도 했다.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사료가 발견된 진관사 칠성각ⓒ김경민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사료가 발견된 진관사 칠성각

2010년 정부에서는 6총 20점에 이르는 사료들을 등록문화제 458호로 일괄 지정했고, 같은 해 서울역사박물관은 사료를 소개하는 진관사 태극기 특별전을 개최했다. 우리가 진관사 태극기로 알고 있는 등록문화제 458호 태극기는 3.1운동 당시 독립단체에서 사용한 태극기로 추정되며, 왼쪽 귀퉁이가 불에 타 약간 손상돼 있고 현재의 태극기와 달리 리와 감의 위치가 바뀐 형태이다.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 양식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한 불교인들과 연결돼 자금모음, 시위 등 해외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백초월 스님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진관사의 태극기는 일장기의 붉은 원을 도려낸 뒤 흰 광목천에 덧붙여 박음질을 하고 다시 푸른 염료로 물들인 태극이라는 점에서 항일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진관사 태극기의 모습ⓒ김경민

진관사 태극기의 모습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진관사 입구에서 하차한 뒤, 백초월길을 따라 극락교와 해탈문을 넘어 진관사를 찾았다. 경내에 들어가기 전 홍제루 입구의 디지털안내문을 통해 독립운동과 항일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 등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난 후,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말끔히 단장된 칠성각에서 발견된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사료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볼 수 있었다. 백초월 스님과 같이 아직까지 모르는 숨은 독립투사들이 많을 거란 생각에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진관사 내부 모습(좌),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에 대한 사료 안내문(우)ⓒ김경민

진관사 내부 모습(좌),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에 대한 사료 안내문(우)

한편, 은평구는 지난해 광복절에 이어, 올해도 3.1절을 기념해 은평구 관내 주요 가로변 5개 구간(통일로, 은평로, 증산로, 연서로, 서오릉로)에 총 1,360개의 태극기를 게양한다.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 선양 사업의 일환으로 이달 27일부터 3월 1일까지 3일간 진행된다. 이번 3.1절에는 백초월 스님을 비롯해 평소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숨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진관사
◯ 주소: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길 73 진관사
◯ 가는 법: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 7723, 7211 승차 후 진관사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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