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상상해 봤을 법한 일확천금의 꿈

최경

발행일 2017.02.24. 14:03

수정일 2017.02.24. 17:47

조회 980

증권거래소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9) 주식천재 ‘복덩이’가 나타났다!

얼마 전, 심상치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사촌여동생이 요즘 푹 빠져있는 여자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예전에 방송했던 ‘복덩이’인가 그 여자 같아요.”

사촌여동생이 몇 달 전부터 귀인을 만나 하던 일을 모두 접고 그녀 옆에서 수발을 들며 살고 있는데, 주식천재인 그녀가 워낙 금 펀드 운용을 잘해서 수익금을 어마어마하게 돌려준다는 것이다. 일 년만 옆에 있으면서 투자를 잘하면 그동안 쌓였던 빚도 모두 청산할 수 있다며 몹시 기뻐했다는 사촌동생, 하지만 제보자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어디에서 많이 들은 이야기 같아서 방송을 찾아보게 됐고, 주식천재 복덩이로 불리면서 해외선물거래를 한답시고 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수십 억 원을 가로챈 뒤 감쪽같이 사라진 그 사기꾼이랑 비슷한 것 같다는 의심이 들어 제작진에게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사기꾼 ‘복덩이’에 대한 방송 역시 제보로 시작됐다. 서울의 한 지역에서 10여명의 투자자들을 울리고 홀연히 사라진 이모씨, 피해금액만 40억원 대였다. 당시 이씨는 일본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다 막 귀국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자신이 운용한 펀드가 얼마나 수익률이 좋은지 운용실적을 보여주며 귀가 얇은 사람을 골라 현혹시켰고, 초기엔 투자자에게 투자금의 10%를 매일 입금해주면서 실력을 증명했다.

소문을 듣고 투자자들이 앞 다퉈 이씨에게 돈을 맡겼고, 한 사람은 아예 집 한 층을 내주며 사무실처럼 쓸 수 있게 했다. 이씨는 밤새워 컴퓨터로 선물거래를 하는 모습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수익금을 돌려주곤 했기에 철썩 같이 믿었다고 한다. 투자자들은 그녀를 ‘복덩이’라고 불렀고, 수익금을 모두 그녀에게 재투자할 뿐 아니라, 있는 돈 없는 돈, 대출에 사채까지 끌어 모아 올인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그만큼 주식천재 복덩이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투자자들은 자신의 카드로 온갖 해외고가품 가방과 신발, 옷을 사다 바쳤다.

그러던 어느 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자 그제야 투자자들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투자피해자들이 경찰에 고소했을 때 들은 이야기는 그녀가 이미 동종수법 사기전과가 있었고, 8건에 이르는 사기혐의로 전국에 수배가 내려진 상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씨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복덩이 사기꾼이 이번엔 한 지방도시에 다시 나타난 것 같다는 제보가 왔으니 지체할 틈이 없었다.

우선 사촌동생부터 만나서 확인을 해야 했다. 마침 사촌동생은 귀인이 머무는 집에서 잠시 외출해 있었다. 우리를 만나 이야기를 듣자마자 사촌동생은 주저앉았다. 지난 방송을 보여주고 실물사진을 확인시키니 낯빛이 더 창백해졌다. 자신의 빚을 청산해줄 것이라 믿어 지난 몇 달 동안 옆에서 온갖 수발을 다 들었던 그녀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에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우리는 지난 방송 때 사기꾼을 잡기위해 동분서주했던 피해자들에게도 연락을 했다. 늦은 밤이었다.

“혹시 보내드린 사진 보셨나요?”
“네. 그 여자 맞아요. 저 지금 미쳐버릴 것 같아요. 언제까지 가면 되나요?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어요. 어딘지 모르지만요.”

몇 시간 뒤 자정이 넘어서 예전피해자들이 지방 도시로 달려왔다. 사기꾼 이씨가 눈치재기 전에 직접 잡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서에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사기수배가 내려진 여자이고, 지금 잡지 않으면 또 잠적할지 모른다고 하자 형사들이 나섰다. 이씨는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 투자자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긴박한 검거작전은 그렇게 조용하고도 빠르게 시작됐다.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가고 바로 뒤따라 서울의 피해자들까지 들어가면서 사기꾼이 머물던 집은 순식간에 북새통이 됐다. 소파에 널부러져 있던 사기꾼 이씨는 경찰과 피해자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집주인은 난데없는 상황에 ‘당신들은 다 누구냐?’는 소리를 질렀다. 몇 년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며 주식천재라고 속이며 투자자들을 울렸던 복덩이 사기꾼 이씨의 범죄행각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집의 주인 역시 투자 피해자였고, 과거 서울 피해자가 당한 것과 똑같이 자신의 카드로 온갖 해외 고가품 가방과 신발, 안경, 옷가지들을 이씨를 위해 사줬다며 기막혀 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녀가 받아 가로챈 투자금의 행방이다. 하지만 경찰에서 이씨는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투자금은 모두 써버리고 없다고 진술했단다. 문제는 이씨가 감옥에서 형을 살더라도 투자자들의 피해액은 고스란히 남는다는 사실이다. 사기꾼 이씨가 돈을 어디로 빼돌렸는지까지 철저하게 수사해야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할지는 미지수다. 사실 사기사건은 숱하게 발생하지만 검거율은 높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경찰인력이 부족한 탓에 피해금액이 크지 않으면 아무리 전국 수배가 내려진 상태라 하더라도 용의자 검거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피해자들과 제작진이 이씨를 직접 잡지 않았다면 사기행각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고 피해규모는 더 커졌을 것이다. 이런 현실이고 보니, 사기꾼을 잡아도 허탈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피해자들은 잡은 것만 해도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고 했다. 가장 좋은 건, 사기를 당하지 않는 것뿐이다. 하지만 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에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일확천금의 꿈, 고수익을 내는 쉬운 투자는 세상에 거의 없다는 사실만 잘 새기며 사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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