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할아버지의 ‘의외의’ 장수비법

최경

Visit575 Date2017.02.17 16:53

어르신ⓒ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8) 103세 할아버지의 장수비법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고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위 ‘골골백년’이 나은지 ‘짧고 굵게’ 사는 것이 나은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치레 하며 고통스럽게 사느니 짧게 살더라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도 있다. 현대의학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왔고 지병이 있어도 치료와 약을 먹으며 삶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 보통 사람들도 100세 이상 살 수 있는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수명 100세 시대에 들어선 우리가 모두 바라는 삶의 형태는 바로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깨끗하게 죽는’ 것이다.

꽤 오래 전 일이다. 장수비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장수노인들에게 어떤 비결이 있는지 취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팀 후배작가와 함께 103세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기 위해 서울 근교에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과연 103세 할아버지는 자신의 장수비결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실까? 실제로 거동은 가능하신지, 어떤 음식을 드시는지, 하루 일과는 어떤지, 운동습관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가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기다고 있다며 우리를 반겨 맞았다. 허리가 굽은 꼬부랑 할머니였다. 마루의 한 소파에 기대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께 인사부터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아! 미스코리아 두 분이 오셨네!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103세 할아버지는 농담도 잘하셨다. 할머니에게도 ‘우리 미스코리아’라고 불렀다. 정확한 나이를 묻는 질문에도 재치 있게 답했다.

“겨우 세 살이지 뭐.”
“앞에 100은 어디 가고요?”
“100은 뚝 떼야지 그 까짓것, 내가 지금 덤으로 사는 거야. 남의 나이 살아요.”

할아버지는 이북이 고향이고, 소싯적 일본 유학길에 올라 명문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이북에 아내를 둔 채 자식 둘만 데리고 급하게 피난을 내려왔다는 할아버지는 비슷한 이유로 남편과 사별한 지금의 아내를 만나 40년 넘게 가정을 꾸려왔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100세가 넘은 연세에도 지난 일들을 연도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정도로 총기가 좋았다. 매일 냉수마찰을 할 정도로 건강한 할아버진 식사도 특별한 반찬 없이 된장찌개에 콩자반, 깻잎 등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셨다.

“부모가 준 체질을 가지고 깨끗이 살면 120살까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학계에선 특별하게 아픈 곳 없이 100세를 넘긴 노인들의 장수비결은 다른 무엇보다 ‘유전자’의 힘이라고 알려져 있다. 103세 할아버지의 혈액을 채취해 검사해본 결과 일반인들보다 고밀도 콜레스테롤 (HDL)수치가 월등하게 높았고 ‘장수유전자’로 지칭되는 특정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할아버지는 80대 수준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장수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특별한 성인병도 걸리지 않고 거뜬히 100세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이 장수유전자를 연구해온 학자의 설명이다.

“80대 중반이나 후반까지 사는 것은 70%가 환경의 영향을 받지만 100세 이상을 사는 경우는 그 반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7,80%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죠.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들을 피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일부는 좋지 않은 식습관, 비만, 흡연을 하면서도 100세까지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수유전자가 없는 일반인들은 그럴 사치를 누릴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겁니다.”

장수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은 일평생 건강하게 장수하다가, 며칠 앓지도 않고 편안하게 생을 마치는 것이 특징이다. 타고난 것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깔끔하게 죽기 위해서는 따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대대로 장수유전자를 타고난 103세 할아버지에게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답 대신 손가락으로 머리 위의 벽 쪽을 가리켰다. 거기엔 ‘무념(無念)’이란 붓글씨로 쓴 액자가 걸려 있었다.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망상이 없다는’ 무념.

그런데 할아버지가 100년 넘게 그렇게 신선처럼 사시는 동안 정작 30년이나 젊은 할머니의 허리는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느라 펴질 새가 없어 꼬부랑이 돼 버렸다. 건강하고 유쾌한 103세 할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할아버지의 일상을 돌보는 일이 오롯이 할머니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장수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우리 사회가 장수노인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오롯이 가족들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취재를 하면서 100세가 넘은 노모를 돌보는 70대 후반의 딸이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에게 했던 말이 있다.

“나도 이렇게 늙어 가지고 어머니를 묻어놓고 나도 죽어야 할 텐데, 요즘은 그 걱정 밖에 없어요.”

100세를 넘기는 장수는 축복이다. 그 축복받은 존재에 대해 사회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효’ 사상 속으로 가족들만 밀어 넣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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