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청이 뜨개의 바다가 된 사연

시민기자 최은주

발행일 2017.02.13. 17:12

수정일 2017.02.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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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청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전시, 그리움을 만지다`. 천장에 2,800개의 뜨개 컵받침이 별처럼 달려 있다. ⓒ최은주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전시, 그리움을 만지다`. 천장에 2,800개의 뜨개 컵받침이 별처럼 달려 있다.

세월호 엄마들이 그리움으로 뜬 뜨개 전시회가 서울시청 시민청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월 11일부터 시작된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전시, 그리움을 만지다> 전시회는 세월호 엄마들이 손으로 직접 뜬 뜨개 작품과 그간 마음속에 담아왔던 엄마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난 12일 찾아간 시민청갤러리는 발디딜 틈이 없었다. 아이가 떠난 지 1,000일. 잊혀지지도 잊을 수도 없는 기억을 안고 엄마들이 3년 동안 매일매일 손으로 직접 뜬 작품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알록달록한 뜨개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어 포근해 보였다. 그러나 한 땀 한 땀 깊은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세월호 엄마들이 3년 동안 그리움을 담아 정성들여 뜬 조끼와 모자들 ⓒ최은주

세월호 엄마들이 3년 동안 그리움을 담아 정성들여 뜬 조끼와 모자들

아이들을 생각하며 뜨기 시작한 컵받침과 목도리와 방석. 천장에 별같이 떠있는 2,800개의 컵받침에는 뜨개질을 한 엄마와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놓았다. 이들의 뜨개질은 한가롭고 여유로운 취미활동이 아니었다 엄마들은 밀려오는 그리움과 고통에 맞서 맹렬하고 전투적으로 땀을 이어갔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밤을 새며 손을 움직였다. 한 사람이 450개가 넘는 목도리를 뜨기도 했다. 전시된 뜨개물 위에는 그 시간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이렇게 만들어낸 목도리, 모자, 조끼는 내 아이를 사랑해 준 고마운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 된다. 물속에서 아이들을 데려와준 잠수사, 아이 생일 시를 써 준 고마운 시인,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준 연예인 등 각자 고마운 사연들을 드러냈다.

관람객들은 전시된 뜨개 작품에 얽힌 사연 하나하나에 눈시울을 붉히며 엄마들이 전하는 감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전시회와는 달리 관람객들은 뜨개 작품을 만져보고 부벼보며 그 속에 담긴 마음을 읽어낸다. 각각의 작품은 전시가 끝난 후 사연의 주인공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대형 러그가 깔린 중앙 마루에서 세월호 엄마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시민들ⓒ최은주

대형 러그가 깔린 중앙 마루에서 세월호 엄마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시민들

오후 3시에는 세월호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는 '엄마와의 대화' 시간이 열렸다. 박원순 시장 부부도 이 자리에 함께 해 이야기를 들었다. 웅기·순범이·영만이 엄마 세 사람이, 아이를 보낸 후 안타깝고 힘든 시간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아이를 보내고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속옷까지 노란색으로 염색했다”며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순범이 엄마의 말에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이 날 함께한 세 명의 엄마들은 가족 간에도 서로 감추고 살아야 했던 깊은 슬픔이 뜨개질 하는 시간을 통해 치유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세월호 엄마와의 대화시간. 순범이 엄마의 노랑머리는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최은주

세월호 엄마와의 대화시간. 순범이 엄마의 노랑머리는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세월호 엄마와의 대화시간이 끝나고도 관람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중앙에는 대형 마루에 알록달록한 러그가 깔려있었다. 아이들이 잘 있기를 바라는 기도와 염원을 담아 엄마들이 공동으로 엮은 대형 러그이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에서 가장 긴 목도리를 짰다.

솜씨가 좋은 사람만 목도리를 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뜨개질을 배워 단을 세우는 초보자도 있었고, 고사리 손도 엄마의 도움을 받아 목도리 이어뜨기에 동참했다. 한 코 한 코 목도리를 이어가며 위로의 마음을 보태는 방송인 김제동 씨 모습도 보였다. 솜씨는 제각기였지만 마음만은 하나였다.

방송인 김제동 씨가 관람객에게 뜨개질 요령을 배우고 있다(좌). 고사리 손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는 어린 아이(우).ⓒ최은주

방송인 김제동 씨가 시민에게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좌). 고사리 손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이(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이 지났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은 끝나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에게는, 아이들을 기억해 주는 거,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뜨개 전시장에 발걸음하는 것, 대형 러그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면 한번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이번 전시는 2월 19일까지 계속된다.

뜨개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 ⓒ최은주

뜨개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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