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투쿵” 경쾌한 망치소리 울리는 형제 대장간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7.02.06. 17:40

수정일 2017.02.06. 17:40

조회 2,857

수 십 년간 불과 쇠를 다뤄온 형제가 일하는 대장간 ⓒ김종성

수 십 년간 불과 쇠를 다뤄온 형제가 일하는 대장간

서울에서 임진강역을 지나 북한의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오래된 기차길 경의중앙선 수색역에 내리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쾌한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땅, 땅, 투쿵, 투쿵”

수색역 앞에 자리한 이채로운 곳이자 동네 명소가 된 ‘형제 대장간(서울시 은평구 수색로 249)’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수색역을 오가는 열차 소리와 어쩐지 잘 어울렸다. 대장간은 불로 쇠를 달구고 주물러 여러 가지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대도시 서울에서 마주친 대장간은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고 판타지를 마주한 것만 같았다. 추운 날씨 대장간이 뿜는 후끈한 열기가 여행자의 굳은 얼굴을 풀어 주었다.

열차 소리와 잘 어울리는 수색역 앞 형제 대장간 ⓒ김종성

열차 소리와 잘 어울리는 수색역 앞 형제 대장간

이곳엔 ‘형제 대장간’ 이름 그대로 형제 두 분이 일하고 있다. 1960년대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인 13세부터 대장간 일을 배웠다는 형님 대장장이 유상준 씨와 함께 동생 유상남 씨가 열 평 남짓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

리듬이 느껴지는 망치질 소리는 화덕에서 시뻘겋게 담금질을 한 쇠를 두들기는 소리로 ‘쇠멧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는 대장장이의 모습에서 나왔다고 한다. 쇠멧질을 하는 대장장이를 실제로 보니,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며 방망이를 내려치는 익살맞은 도깨비 모습이 연상돼 실실 웃음이 났다.

서울시가 미래세대에게 전할 문화유산으로 선정한 형제 대장간 ⓒ김종성

서울시가 미래세대에게 전할 문화유산으로 선정한 형제 대장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형제 대장간

화덕 안에서 새빨간 쇠를 꺼내 받침대인 모루 위에 올리는 사람은 동생 대장장이, 쇠망치로 힘차게 두드리며 모양을 잡는 건 세 살 많은 형 대장장이다. 쇠를 두드리며 모양을 만드는 단조작업엔 노련함과 정교함이 필요해서이다.

참고로 동생은 20여 년, 형은 무려 50년 경력의 대장장이다. 달인 혹은 장인의 모습을 떠올리기 좋은 장면이라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그런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니었나보다. 멀리 대전의 한 방송국에서 찾아와 촬영이 한창이었다. 형제 대장장이는 방송 촬영이 익숙한 듯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제 일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는커녕 세상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평생을 불과 쇠를 다루며 묵묵히 살아왔을 환갑의 대장장이 아저씨. 타인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듬직한 고목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오랜 끈기와 노력으로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어엿한 간판도 얻었다.

불과 쇠를 능숙하게 다루는 형제 대장장이 ⓒ김종성

불과 쇠를 능숙하게 다루는 형제 대장장이

나이 지긋한 형제 대장장이를 보니 문득, 김훈 작가의 소설 <현의 노래>에 나왔던 대장장이 ‘야로’가 떠올랐다. 쇠가 많이 나서 철의 왕국으로 불렸던 가야시대, 농사(농기구)와 국방(무기)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다보니 왕과 독대를 할 정도로 중요한 일꾼이었던 대장장이는 천직이란 말이 어울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직업이 아닐까 싶다. 옛날엔 점잖게 야장(冶匠)이라고도 불렀다는데 대장장이라는 말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알고 보니 기차역 앞에 대장간이 자리 잡은 이유가 있었다. 망치질 소리 시끄러운 대장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게들과 떨어져 있어야 해서였다고. 따로 대문이 없는 대장간 입구에는 호미, 낫, 괭이, 갈고리 등 수백 가지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안쪽에는 조그마한 화로가 불꽃을 활활 일으키며 대장간을 후끈하게 달구고 있었다. 요즘같이 추운 날에도 대문이 필요 없는 이유다. 지긋지긋했던 올해 여름날엔 극한직업의 현장이 따로 없었겠지만, 겨울철엔 찜찔방의 불가마 앞을 연상케 하는 뜨끈뜨끈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가 된 대장장이

우리가 쓰는 많은 것들을 공장에서 기계로 만들지만 이곳은 여전히 손으로 때리고 두드려서 물건을 만들어낸다. 수타면이 손으로 치대면 치댈수록 쫄깃해지듯, 쇠도 때리고 두드릴수록 찰지고 내성이 강해진단다.

호미, 낫 같은 농기구 외에도 건설현장·인테리어·방송국 사극 등에 쓰이는 연장이나 도구들을 많이 만든다. 영화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옛 소품들은 예약을 받아 주문제작하고 있다.

특히 건축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콘크리트 파쇠기·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 등 건설현장에서 쓰는 각종 연장들을 주문한다. 공사현장에서 쓰는 중국산 연장들은 가격은 싸지만 쇠멧질과 담금질을 한 수제품의 차이는 품질과 내구성 면에서 비교가 되질 않는다고. 문화재 복원이나 수리를 할 때마다 의뢰가 들어오는 문화재청도 단골이다.

건설현장에 필요한 연장도 많이 만든다(좌), 쇠를 올려놓고 모양을 만드는 대장간의 필수장비 모루(우) ⓒ김종성

건설현장에 필요한 연장도 많이 만든다(좌), 쇠를 올려놓고 모양을 만드는 대장간의 필수장비 모루(우)

형님 대장장이는 문화재청이 장인에게 부여하는 마에스트로(Maestro, 예술가나 전문가에 대한 경칭) 명칭과 함께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문화재청이 충남 부여에 설립한 학교다. 앞면엔 대장간, 뒷면은 교수직함이 써 있는 명함을 건네주는 대장장이 아저씨 표정이 자랑스러워 보였다.

대장간엔 웬 젊은 청년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형제 대장장이의 조수를 자청해 찾아와 대장간에서 일을 하는 서른 살의 젊은 청년이다. 대장장이의 꿈을 품고 일 년 넘게 대장간 일을 배우고 있단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제자까진 아니어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고민했다는 형님 대장장이의 마음이 한결 든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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