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당한 사고가 방송꺼리가 되나요?”

최경

Visit217 Date2017.02.03 15:36

야경ⓒ김일중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6) 불발로 끝난 추억 1 – 발목이 사라졌던 남자

꽤 오랫동안 방송 제작현장에 있으면서 많은 이들의 사연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건,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고,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때론 웃음과 해학으로, 눈물과 감동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엮어내고, 또 때론 안타까움과 분노를 희망과 변화의 씨앗으로, 함께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꿈이다.

물론 그러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고 벽에 부딪히곤 한다. 세상 일이 그렇지만 방송도 온에어가 되기까지 만사형통, 일사천리로 술술 풀리는 경우는 드물다. 아이템을 찾아 사전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엎어지기도 하고, 촬영까지 무사히 잘 마쳐도 마지막에 출연자의 변심으로 방송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더 황당한 경우는 사전취재를 통해 파악한 내용과 직접 현장에서 확인한 것이 전혀 다를 때다.

오래 전, 불의의 사고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 선 순간,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할 때였다. 아이템을 찾으면서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교통사고로 심하게 찌그러진 차 안에 갇혀 누군가 구조해주기만을 기다리던 한 남자가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을 보자마자 ‘내 발목이 없어졌다’며 찾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는 내용이었다. 가까스로 구조된 남자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수술을 받은 끝에 퇴원까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발목까지 절단될 만큼 큰 사고를 당한 와중에도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그를 만나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순간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수소문을 통해 남자와 연락이 닿았고, 그는 흔쾌히 제작진을 만나겠다고 했다.

과연 남자의 발목은 찾은 건지, 다리는 괜찮은 건지, 걸을 수는 있는 건지 몹시 궁금했다. 혹시 우리의 질문이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한편으론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는 지방에 살고 있었고,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우리는 촬영팀까지 세팅해 출장길에 올랐다. 약속시간이 되자, 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남자가 다리를 조금 절기는 했지만 발목이 잘리는 큰 사고를 당했다고 하기엔 무척 건강해 보였다. 교통사고가 할퀴고 갔을 남자의 발목은 긴 바지 속에 가려진 채 궁금증만 키울 뿐이었다. 그날 사고를 당하던 순간에 대해 침착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던 남자가 문득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제가 당한 사고가 방송꺼리가 되나요?”

그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더 이상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내가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억하기 싫으시겠지만, 사고당시 없어진 발목은 찾으셨어요?”

남자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발목…이요? 제 발목이 왜요?”
“어,,,그러니까, 사고로 발목이 없어졌다고 알고 왔,,,”

그는 대답대신 씩 웃으며 우리를 향해 바지를 걷어 올렸다. 발목 근처엔 긴 흉터만 있을 뿐이었다.

“아킬레스건이 손상돼 수술을 받았어요. 경과는 좋대요. 그때 구조가 늦었더라면 진짜로 발목 나갈 뻔 했어요.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아아,.. 천만다행이네요.”

그의 발목은 무사했고, 뻥튀기 기사에 발목 잡혀 먼 길을 달려갔던 제작진은 장렬하게 아이템을 접고 돌아와야 했다. 그 일로 교훈 하나는 얻었다. ‘잘 써진 기사도 다시 보자. 사전에 사실 확인을 잘해야 헛고생을 면한다.’ 뭐 그런 것들이다.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