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푸는데 최고! 매운맛 '캡사이신'

서울식품안전뉴스

발행일 2017.02.13. 13:23

수정일 2017.02.13. 17:25

조회 2,329

고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필자 역시 매운 떡볶이와 낙지볶음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자 라면에도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매운맛 중독자’다.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캡사이신’이다. 캡사이신이 많이 함유된 고춧가루를 혀를 중독 시키는 ‘붉은 마약’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매운 음식이 제격이다. 하지만 이를 과다하게 섭취하면 위장점막을 손상시킨다. 속이 쓰린 것은 물론 항문이 아프고 설사가 발생할 수 있다. 심하면 암에 대한 면역기능도 약화된다고 말한다. 사정이 이런데 우리가 매운맛을 즐겨도 되는 것일까?

매운‘맛’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매운맛은 우리 혀의 맛봉오리(미뢰) 사이에 있는 맛세포(미세포)에 느끼는 미각이 아니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미각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5가지뿐이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사실 통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혀도 피부의 일종이기 때문에 통각을 인지하는 통점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 통점의 흥분을 대뇌로 전달하여 자각하게 되는 감각이 바로 매운맛인 것이다.

혀

이처럼 매운 맛을 즐긴다는 것은 바꿔 말해 통증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 몸이 아프다고 느낄 때는 여기에 대해 방어기작이 일어나게 된다.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뇌에서 진통 효과를 가진 물질 엔도르핀(endorphin)이 분비되는 것이다. 엔도르핀이란 이름 자체가 몸 안에서 분비되는 모르핀(endogenous morphine)이라는 뜻이다. 캡사이신이 포함된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결론적으로 엔도르핀의 영향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어떤 의미로는 마약중독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고추를 먹으면 덥다고 느끼고, 먹고 나면 땀을 확 흘리면서 시원하고 개운함까지도 느낄 수 있다. 캡사이신 분자가 수용체에 붙으면 이와 연결된 이온통로가 열리면서 통증을 감지하게 된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캡사이신 수용체가 온도가 상승했을 때도 반응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캡사이신을 감지하는 수용체와 뜨거운 감각을 인지하는 수용체의 작동 기작이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우면서도 동시에 더운 것이다.

고추가루

매운 음식을 먹고 너무나 아프고 뜨겁다는 사실을 심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 MBN ‘창과방패’라는 프로그램에서 과학 자문을 하던 당시의 일이다. 이른바 캡사이신의 여왕이라고 방송가에서 인정받은 배정희씨와 매운 음식을 먹는 대결을 벌인 것이다. 음식은 중국의 사천요리 ‘변태닭날개’였다. 구운 닭날개에 고추기름을 바르고 맵기로 소문난 중국 호남 고춧가루를 뿌린 음식이다. 처음엔 견딜만하다가 조금 있으니 식은땀이 나면서 심박 수까지 빨라졌다. 끝내 머리끝까지 아픈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매운 닭날개를 먹었던 개그맨 김태현 씨는 ‘입을 100대 때린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캡사이신의 여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닭날개를 계속 먹었다. 감각은 이처럼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혀에 존재하는 통점의 수와 흥분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심하게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는 일단 혀에 붙어있는 캡사이신을 떼어내어야 한다. 캡사이신은 지용성 분자라 물을 마시는 정도로는 아픈 감각을 쉽게 해소하지 못한다. 식용유 등을 한 숟가락 떠서 마시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매우 느끼하다. 이럴 때 우유를 마시게 되면 우유 속에 약 4%정도 존재하는 유지방 성분이 같은 지성 성질을 띠고 있는 캡사이신을 잘 씻겨 내려가도록 도와준다. 맥주와 같이 알코올이 5% 포함되어 있는 저도주도 물보다는 캡사이신을 씻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과하지만 않으면 매운 음식 속의 캡사이신이 기분을 좋게 하는 엔돌핀을 생성시키고, 땀을 내고 개운함을 느끼게 하여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준다. 또한 캡사이신은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타액의 분비와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는 기능이 있다. 체지방을 연소시켜 에너지대사를 촉진시키는 작용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캡사이신이 많이 포함된 음식을 섭취한다고 무조건 살이 빠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캡사이신이 주요 성분인 고춧가루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캡사이신으로 소비할 수 있는 열량이 매우 적은데 비해서 중독성 때문에 매운 음식을 계속 먹게 된다. 즉, 음식에 포함되어 있는 지방과 탄수화물을 과잉 섭취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고추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쉽게 부패되지 않는다. 세균의 생장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항균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농업연구소(ARS) 과학자들은 캡사이신 성분이 인간에게 감염되는 캔디다 알디칸스 곰팡이의 생장을 93%까지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세균과 곰팡이뿐만 아니라 캡사이신은 암세포도 죽일 수 있다. 영남대 약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 캡사이신이 간암과 방광암 등의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일정 한 양 이상의 캡사이신 섭취는 세균, 곰팡이에 암세포까지 다 죽이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그리고 캡사이신의 과도한 섭취는 위점막 손상을 일으켜 만성위염의 원인이 되며 항암면역기능도 떨어뜨릴 수 있다.

고추

미국암연구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캡사이신은 통증수용단백질(TRPV1)을 감소시킨다. 통증수용단백질이 감소하면 매운맛에 더욱 익숙해지고 매운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된다. 캡사이신이 암을 유발시키는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와 결합해 피부암을 증가시켰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울산의대의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캡사이신 섭취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면역세포의 일종인 자연 살생세포의 기능을 감소시켜서 오히려 암 발생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위암세포의 경우 캡사이신 50㎛ 이상을 투여했을 때 나타났던 결과다. 그러므로 이 양 이상으로 캡사이신을 섭취하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 캡사이신 50㎛은 청양고추 약 15~20개를 먹었을 때의 양에 해당한다.

암에 대한 면역기능 저하는 과도한 캡사이신 섭취로 인한 결과다. 하지만 매운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민감도가 떨어져서 더 큰 자극을 찾게 된다. 보통 매운 정도를 스코빌로 나타내는데, 우리나라의 청양고추는 8,000스코빌 정도 된다. 먹으면 혼이 나간다고 하여 유령 고추로 불리는 부트졸로키아는 100만 스코빌 정도다. 최근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매운 수입 고추가루를 넣은 음식을 즐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캡사이신 함량이 높은 고추를 섭취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이다.

글 최은정 (과학교육학 박사, 최은정 과학교육 연구소)
출처 서울식품안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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