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

최경

Visit338 Date2017.01.13 14:34

야경ⓒ강명훈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4) 현대인의 위기, 공포 1편 – 공포를 직감한다는 것의 의미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하는 건,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냥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포감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방송 일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게 다반사라 그날도 새벽에 귀가하던 길이었다, 집 앞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흘끔 뒤를 돌아보니, 한 10대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아이의 눈빛이 뭔가 이상했다. 왜 그런 느낌이 든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저 아이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몰려왔을 뿐이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나는 몸을 돌려 천천히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갔다. 마치 다른 볼 일이 생각난 듯… 어느 정도 현관과 멀어졌을 때, 뒤를 돌아봤더니 그 남자애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또 다른 일행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나의 직감은 맞는 것 같았다. 그때부턴 살아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 새벽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경비실을 향해 뛰었다. 마치 꿈속에서 소리를 지르면 큰 소리가 나오지 않아 답답한 것처럼, 내 목소리가 너무나 작게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큰 소리를 냈던 것 같다. 잠을 자던 경비아저씨가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를 좇아오던 남자 아이들은 멈칫 하더니 몸을 돌려 딴청을 피웠다. 그 아이들도 당황한 듯 보였다. 나는 온몸을 덜덜 떨며 경비아저씨와 함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한참동안 불도 켜지 못한 채 숨죽여 울었다. 혹시라도 내가 몇 호에 살고 있는지 들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엘리베이터 공포증에 시달렸다. 엘리베이터 앞에만 서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났다, 지금까지도 늦은 밤 엘리베이터에 낯선 남자가 홀로 타있으면 그냥 보내곤 한다.

‘공포’는 사실 생존의 위협을 알리는 공습경보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공포’라는 예민한 무기를 갖고 있다. 천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감각이 발달돼 있는 것이다. 신체가 위험상황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과 공포는 그 첫 번째 준비다. 위협적인 경고신호가 감지되면 우리 몸은 가장 최적의 상태로 바뀌는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오르며 호흡도 가빠지고 근육은 긴장한다. 즉, 교감신경이 활성화됨으로써 도망가거나 맞서 싸울 수 있는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늦은 밤, 엘리베이터 앞에서 직감한 안 좋은 느낌. 그것이 공포로 전환되는 순간, 내 몸에서 일어났던 반응도 그러했다. 문제는 이런 신체반응이 때로는 과도하게 계속돼 특정 공포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공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많은 특정한 것에 심한 공포증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어떤 대학생은 ‘새’ 그림만 봐도 기겁을 하고, 어떤 여성은 ‘고양이’ 털끝만 봐도 울음을 터뜨렸고, 어떤 주부는 ‘벌레’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이와 공원 산책 한 번 해본 적 없으며, 어떤 여고생은 바나나를 벌레보다 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과일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뇌에서 공포를 담당하는 곳이 편도체라고 알려져 있다. 만약 편도체가 없다면 외부의 위험자극을 공포로 인식하지 못하게 돼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정 공포증을 가진 환자의 뇌를 촬영해본 결과 편도체가 일반인보다 활성화 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어찌 보면 공포증을 가진 환자들은 가장 진화된 사람들일 수 있다. 다만 이들이 가진 문제는 큰 위협을 가하지 않는 대상을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특정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제시한 치료방법은 노출치료다.

“그동안 두려워서 피하기만 했기 때문에 더 나아지지 않고 증세가 심해지는 겁니다. 자꾸 노출이 돼야 해요.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인지해야 합니다. 전문가가 보는 앞에서 공포의 대상을 노출시켜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피하고 있는 것들을 안전한 상황에서 맞닥뜨릴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새, 고양이, 벌레에 심한 공포를 느끼던 사람들은 노출치료를 받은 첫날, 거의 죽을 듯이 기겁을 하며 울부짖었고, 심한 경우 과호흡 증세까지 보였다. 하지만 치료횟수가 더해지면서 조금씩 진전을 보였다. 나중에는 새장을 직접 들어 올리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아이와 함께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공원을 산책하는 데까지 호전될 수 있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불확실성은 커져가고 그만큼 불안요인은 더 많아졌다. 매일 끊이지 않는 사고와 질병, 전쟁위기 같은 위험신호들은 우리의 불안과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자극들이 스트레스에 취약한 현대인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한 사람이 가진 과도한 공포심을 개인의 기질적인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위기상황을 부추기는 사회분위기가 우리를 자꾸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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