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쓰러진 행인을 만났을 때, 당신이라면?

최경

Visit489 Date2017.01.06 14:46

복지ⓒ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3) 도움행동의 조건

어느 해인가 한 작은 도시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한 소년이 병을 앓다 숨진 어머니의 시신 옆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이 일은 담임교사가 장기결석을 하는 소년의 집을 수소문해 겨우 찾아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지역주민들이었다. 이웃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각성했고, 너도나도 도움을 자청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소년은 어느 교회에 머물면서 주위의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아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소년은 편지로 감사의 마음을 알리며 나중에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당시 그 사건은 한 소년을 구하고 후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 시민단체의 제안으로 지역주민들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체계적으로 돕기 위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심사를 거쳐 발급된 가족증을 제시하면 연계돼 있는 식당에서는 식사를 제공하고, 슈퍼에서는 물품을 제공하는 등 나눔 행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또한 지역 주민센터에 쌀독을 가져다 놓아 필요한 사람이면 아무나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했다. 놀랍게도 쌀이 없어지는 속도보다 쌀을 기부하는 양이 훨씬 많아 창고에 쌀이 그득그득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 이 나눔 운동을 제안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 역시 예상 밖이라며 놀라워했다.

“우리가 불을 붙이긴 했는데 불이 막 저절로 타들어가듯이 지금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을 하고 쌀독 같은 것은 우리가 제안만 했는데 모든 공무원들이 다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걸 보면서 깨달았죠. 아, 마음속에는 모두 선행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데 그걸 모아줄 모티브와 시스템이 없었던 거구나, 그동안 아무도 점화를 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거구나 하고 말입니다.”

당시 취재를 하면서 남을 돕는 ‘이타행동’은 어떻게 해서 촉발되는 건지 궁금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의 자문을 구해 몇 가지 실험을 해봤다. 우선 지하철역에서 한 여성이 탁구공이 가득 든 통을 들고 가다 넘어지는 상황을 연출했다. 공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공을 주워줬다. 남성이 탁구공이 든 통을 들고 가다 넘어졌을 때에도 사람들은 주저 없이 공을 주워 건넸다. 심리학자는 이것이 큰 부담이나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망설임 없이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애매한 상황일 때 이타행동을 하기 까지 어떤 요소가 영향을 미치게 될까?

두 번째 심리실험은 지하철 역 플랫폼에서 여성이 갑자기 아픈 듯 쓰러지는 상황을 연출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흘깃흘깃 보면서 지나치더니, 한 사람이 다가가서 상태를 묻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너도나도 도움을 주려고 했다. 누군가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망설이던 사람들도 함께 이타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엔 남성이 갑자기 쓰러졌다. 여성일 때보다 사람들은 선뜻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결국 연기자 한명이 투입돼 상태를 살피며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자,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주저앉았을 때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거죠. 괜히 나섰다가 민망해지면 어떻게 하지? 되레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면 어떻게 하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누군가 먼저 나선다면 상황이 명확해집니다. 그러면 선택이 빨라져요. 도움을 줘야겠다 하고요.”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오히려 이타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즉 책임이 분산되기 때문에 개개인이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제노비스 사건’이다. 미국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한 여성이 귀가도중 수차례 칼에 찔리고 강간을 당하다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피해자는 범행이 지속되는 35분간이나 살아있었고 도와달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나서지 않았고 결국 처참하게 사망했다. 당시 목격자는 무려 38명이나 됐지만 한사람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나 말고 누군가 하겠지, 괜히 신고했다가 내가 보복을 당할지도 몰라, 피곤하게 경찰서를 오가야 할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방관자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책임감을 느끼면서 타인을 돕는 행동은 어떻게 하면 가능한 것일까?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그러면 우르르 몰려들어요. 어떻게 보면 리더가 필요한 겁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다른 사람이 도와주길 기다리는 사람보다 그냥 내가 먼저 해보지 하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수 만 명이 나설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실제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지하철역에서 노인 한분이 선로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였다. 전동차 사이에 다리가 낀 사고를 목격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우왕좌왕 했다. 그렇게 3분가량 지났을 무렵, 누군가 먼저 전동차에 손을 대고 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동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까지 나와 가세해 함께 밀기 시작했고 꿈쩍도 않던 33톤 무게의 전동차가 들어 올려져 노인이 구출될 수 있었다. 얼마 전 부산의 한 터널에서 유치원버스 전복사고로 차안에 갇혀있던 아이들이 전원 큰 부상 없이 구조될 수 있었던 것도 먼저 달려가 구조를 시작한 화물차 운전기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사람이 나서자, 시민들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구조를 도운 것이다.

세상은 각박하고 공동체는 와해되고, 가족들조차 대화가 끊겼으며 이웃들은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언제라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불씨가 있다고 믿고 싶다. 다만 점화시킬 방법을 모를 뿐. 그래서 용기 있게 나서는 의인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하고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 또한 나 자신부터 의인은 아니더라도 작은 도움을 주는 걸 망설이지 않는 연습을 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언젠가 나와 내 가족 역시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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