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서 만난 ‘국보 제3호’는?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7.01.05. 14:51

수정일 2017.01.05. 14:51

조회 1,731

북한산 비봉길

유형문화재 가운데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을 ‘보물’이라 하며,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인 가치가 높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된 보물을 ‘국보’라 한다. 국보 제1호 숭례문, 제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서울 도심에 있는데 유독 ‘국보 제3호’는 북한산 봉우리에 있다는 것이 흥미를 끈다.

북한산은 예부터 한반도의 ‘오악(五嶽)’ 중 하나였다. ‘오악’이란 백두산·금강산·묘향산·지리산·삼각산(북한산)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북한산은 한반도의 중앙에 있는 산이라 하여 ‘중악’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북한산의 향로봉과 사모바위 사이 ‘비봉’에 국보 제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호로 지정되었다. 비바람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 1972년 경복궁으로 이전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그리고 2006년, 원래 자리에는 복제 순수비를 세웠다. 순수비의 역사성을 오롯이 보존하기 위해 강화도 화강암을 가져와 3D기법을 활용하여 원형과 똑같이 만든 것이다.

국보 제3호 `신라 진흥왕 순수비`

국보 제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순수비는 직사각형으로 비봉 꼭대기의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어 세운 형태이다. 윗부분의 일부가 없어져서 남아 있는 비(碑)는 높이 1.54m, 너비 69㎝이다. 모두 12행의 글이 남아있으며, 행마다 ‘해서체’로 32자가 새겨져 있다. 비를 세우게 된 까닭과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 그리고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 등이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창녕의 신라 진흥황 척경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라고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1,200년이란 세월동안 비바람에 씻기고 닳아 알아볼 수 없는 비석을 친구 김경연과 ‘승가사’에 놀러왔던 추사 김정희가 비봉에서 발견하고 탁본을 떴다. ‘북한산주를 폐하고 남천주를 설치한다’는 대목이 키워드가 되어 68자를 해독하게 되면서 마침내 ‘진흥왕 순수비’라는 비밀이 밝혀졌다. 추사는 조인영과 함께 비석의 글자를 조사했다는 내용을 순수비 옆면에 새겨 넣어 아이러니하게도 원형을 훼손하게 되었다. 또 비석의 뒷면에는 20여발의 6.25전쟁 탄흔이 남아있어 안타깝지만,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북한산 차마고도

국보 제3호가 있는 비봉으로 가려면 ‘대호아파트~족두리봉~차마고도~비봉’에 이르는 탐방로를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조망이 우수하여 갑갑한 가슴이 뻥~ 뚫리고 중간 중간 자연이 빚은 진귀한 조각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불광역 9번 출구를 나와 대호아파트 방향으로 도보 5~6분 정도 걸으면 탐방로의 들머리가 나타난다. 깔끔한 나무데크길이 탐방객의 기분을 좋게 한다.

족두리봉으로 가는 가파른 암릉길, 조금만 오르면 서울 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20여분 올랐을까, 첫 번째 피에타(조각 걸작품)가 나타난다. 교과서에서 본 인류 조상의 두개골 형상과 똑같은 ‘유인원 바위’이다. 인증샷 하는 산꾼들을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하니 ‘족두리봉(해발 370m)’에 다다른다.

물개바위

족두리봉을 지나 향로봉5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한국판 ‘차마고도’이다. 규모는 작지만 빼어난 경관이야말로 영락없는 ‘차마고도’ 형상이다. 차마고도를 지나면 비봉 계곡길 오르막이 계속된다. 얼마쯤 올랐을까?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드니 앞 능선에 ‘물개’ 한 마리가 산을 오르고 있다. 유명한 ‘물개바위’이다. 물개를 보며 마지막 힘을 쏟으니 마침내 비봉 정상을 향한 암릉길이다. ‘코뿔소바위’를 지나 100여 미터를 올라가니 드디어 해발 560미터 비봉 정상, 국보 제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반갑게 맞아준다. 서울 서북 도심은 물론 고양 파주 일대가 눈 아래 펼쳐지고 멀리 백운대 인수봉까지 훤히 보인다.

비봉길

예부터 한강유역을 차지한 나라가 한반도의 패권국가 지위를 누려왔다. 통일신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이곳 비봉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며 순수비를 세웠던 진흥왕의 기상이 느껴지는 것 같다. 비록 지금 이곳에는 복제비가 서 있지만 지난날의 역사를 간직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움츠러들기 쉬운 요즘, 가족·친구들과 함께 국보 제3호의 이야기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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