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출세가 나의 삶을 지배할 때...
최경
발행일 2016.12.23. 14:37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1) 대한민국 출세이야기 1
최고의 학벌과 이른바 ‘사’자가 붙은 직업과 수십억, 수백억의 재산가, 거기에 쥐락펴락하는 권력까지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부러운데 모든 것을 거머쥐고 있는 그들은 분명 최고 중에 최고다.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집단 기억상실증에 실어증에 걸려 만인이 보는 청문회 자리에서 눈만 꿈뻑거리며 기껏 하는 말이라고는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이가 많다보니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들은 지금 울화를 부르는 대상이 됐다.
권력을 누리며 호령하던 그들이 이제 와 면피하기 바쁜 비겁하고 치졸한 모습인 걸 보면, 머리 좋고 모범생이고 좋은 직업과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뭘 하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출세를 한 사람들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비겁해지면 세상 살기 편해진다는 걸, 그들은 출세 길에서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야 하고, ‘사’자 붙은 사람이 돼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집안의 영광이며 행복의 길이 열린다고 얘기할 명분이 없어져 버렸다. 적어도 요즘, 출세한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게 실망스럽다.
‘출세’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인의 ‘출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내린 ‘출세’의 정의는 조금 다르다.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이 세상의 부름을 받고 나와, 만인을 위해 봉사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지도자에 따라 역사의 물길은 달라져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행복감은 하늘과 땅을 오간다. 출세한 사람들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고 사람들의 행복감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된다. 때문에 우리는 리더의 가치관과 태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리더의 내면보다 혈연, 지연과 같은 배경이나 만들어진 외형적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아닐까. 그 때문에 오늘날 사상 유래 없는 국정농단사태가 빚어지고 온 나라가 ‘분노’와 ‘자괴감’에 휩싸이게 된 것이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 파워 엘리트들은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당시 출세한 유명인들을 여러 명 만나 인터뷰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고초려 끝에 한 인터뷰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조건에 대해 한 말이다.
“지금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수오지심(羞惡之心)입니다. 자기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꼈을 때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 그래야 고쳐지거든요. 누구라도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느낄 때 그런 지적을 받았을 때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새로 조명해서 빨리 자기를 교정해 나갈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지금 역사의 물길이 바뀌는 중요한 기로에서 출세해 리더에 오른 엘리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에게 과연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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