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다섯 개인 남자친구의 비밀

최경

발행일 2016.12.16. 15:36

수정일 2016.12.16. 16:37

조회 974

꽃ⓒ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0) 남자친구의 비밀

독신주의자였던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손님으로 온 K와 친해지게 됐다. 훤칠한 외모와 친절한 말투 그리고 다정다감한 성격까지 남자는 그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먼저 고백을 했고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불타는 연애를 했다. 그리고 결혼약속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단, 부동산 투자 사업을 하던 남자친구 K가 급작스럽게 돈줄이 막히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던 것만 빼고는. K는 그녀에게 급전이 필요하다며 몇 백만 원씩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결혼할 사이였기에 그녀는 대출을 받아서 야금야금 그가 알려주는 통장으로 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K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늦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그녀는 남자친구 K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남자친구의 사진과 함께 찾는다는 글을 올리자, 몇몇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쪽지를 보내왔다. K가 쓰는 이름만도 다섯 개, 학력과 직업, 형제관계며 집안 사정까지 그녀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달랐다. K는 같은 수법으로 여러 명의 여성들을 울렸다고 했다.

남자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순진하게 믿었던 그녀, 한편으로는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K가 그동안 보여줬던 다정한 모습과 따뜻한 말들에 그래도 진심은 있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남자의 정확한 실체를 알고 싶어 그녀는 K의 고향을 찾아가 그를 안다는 사람들을 만나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만난 사람은 술집 마담이었다.

“손이 큰 손님이었어요. 하룻밤에 최고급 양주 3병을 시킬 정도였죠. 젊은 남자가 팁도 듬뿍듬뿍 줘서 다 좋아했어요. 이 정도로 돈을 잘 쓰는 남자면 대충 뭐하는 사람인지 소문이 나거든요. 재벌 2세라든가, 큰 사업을 한다든가 뭔가 소문이 돌기 마련인데 그 손님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좀 이상하긴 했죠.”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과 데이트를 할 때 K는 기사식당을 찾아다니며 밥을 먹을 정도로 짠돌이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만남 사람 역시 술집 남자 종업원이었다. 그는 K의 사진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어 이 양복, 내가 선물한 건데, 이걸 입고 찍었네요.”

그는 K와 꽤 가깝게 지냈었다고 했다. 엄청난 기분파여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다 같이 일본에 놀러가자면서 비행기표를 끊고 함께 여행을 하며 수천 만 원을 쓸 정도로 통이 컸다고 했다.

“금사빠에요.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요. 여자든 남자든 자기가 마음에 든다 그러면 다 해줘요. 원래는 K의 여자친구 때문에 알게 됐거든요. 여자친구한테도 옷가게 차려주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어요.”

여자친구가 있었다니, 그녀는 깜짝 놀랐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K의 여자친구였다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화 속 그녀의 말이 놀라웠다.

“결혼 날짜까지 잡았는데 없어졌어요. 제 사촌오빠한테 투자금 3천 500만 원을 받아간 뒤 사라진 거예요. 가을의 신부 만들어준다고 약속해놓고.”

기가 막혔다. K가 그녀에겐 5월의 신부를 만들어준다고 했었다.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는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

“당한 우리가 바보인 거예요. 공통점이 외로운 사람들이라서. 속상하겠지만 그냥 잊어버리세요.”

그녀가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경찰서였다. 경찰은 K가 이미 몇 건의 사기 혐의로 고소된 상태라고 말해줬다. 최고급 호텔 숙박비를 안내고 사라졌고, 고급 바(Bar)에서 술값 수백 만 원을 내지 않았으며, 투자금 명목으로 지인들에게 돈을 챙겨가는 등 그 내용도 가지가지였다. 그리고 경찰은 그녀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K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혼을 했었던 남자라니, 금시초문이었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고, 그녀는 점점 K의 민낯과 마주하고 있었다.

“일단 마음의 정리를 잘 하시고요. 저희도 최대한 빨리 잡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K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꿈을 꾸었던 그녀. 꿈은 산산조각 났고 돈보다 사랑했던 진심을 송두리째 사기당한 것이 더 아프다고 했다. K는 그녀에게 늘 고향얘기를 하며 결혼해서 금의환향하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 꼭 함께 와보고 싶었다는 그녀. 하지만 모든 실체를 알고 난 뒤 K의 고향은 그녀에게 지옥과도 같은 곳이 됐다.

“이곳엔 발걸음도 하고 싶지 않아요. 끔찍한 기억만 있는 곳이에요. 너무 비싸고 아픈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언젠가 만나면 그 나이 먹도록 인생을 왜 그렇게 살았는지,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녀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신의 고향으로 떠났다. 다시 도시 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녀의 사연이 새삼 떠오른 것은 오랫동안 자신을 이미지로 포장하고 국민들을 속여 온 국가지도자와 그 세력들을 TV로 지켜보면서였다. 떠나지 않는 의문은 과연 속고 살아온 국민이 바보이고 멍청했던 걸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속이려고 덤비면 안속을 수 없다. 그게 인간이 가진 나약함일 것이다. 속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예전처럼 어영부영 지나갈 것이 아니라 제대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남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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