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남영동 대공분실' 5층에선 무슨 일이?

시민기자 김윤경

발행일 2016.12.12. 15:27

수정일 2016.12.21. 18:20

조회 2,184

故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난 공간은 당시 그대로 보존했다. ⓒ김윤경

故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난 공간은 당시 그대로 보존했다.

진눈깨비 내릴 듯 스산한 오후, 검은 벽돌 경찰청 인권센터 앞마당에선 작은 트리 점등식이 열렸다. 카운트다운에 맞춰 트리에 불이 켜지자 경찰관계자들이 박수를 쳤다.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 ‘사람으로 살아가며 정당하게 누릴 권리’가 ‘인권’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막상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막연히 어렵게만 여긴다.

검은 벽돌로 지어진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김윤경

검은 벽돌로 지어진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용산구 남영동에 위치한 경찰청인권센터는 1976년 설립됐다.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사용했지만 ‘oo해양연구소’라는 위장 간판을 걸었다.

2005년 7월, 보안3과가 이전하면서 이곳을 인권센터로 조성하기로 하고 10월 선포식을 개최했다. 2007년에는 본관 및 별관에 ‘고객만족모니터센터’와 ‘여성·아동·청소년 경찰지원센터’가 입주하여 인권 수호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검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 작품이다. 밖에서 봐도 유독 5층 창문이 좁고 기다래서 특히 눈에 들어왔다.

공간 지각력을 잃게 만드는,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나선형 계단(좌)과 똑같은 구조로 생긴 16개의 조사실(우) ⓒ김윤경

공간 지각력을 잃게 만드는,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계단(좌), 똑같은 구조로 생긴 16개의 조사실(우)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1층부터 5층까지 이어진 나선형 계단이었다. 쳐다만 봐도 현기증이 난다. 도무지 지금 서있는 곳이 몇 층인지 알 수 없다. 저절로 공간 지각력을 상실하게 된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걸어보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렇게 계단이 끝나는 5층에 올라오면 똑같은 구조로 생긴 16개의 조사실을 접하게 된다. 바로 故 김근태 전 의원 고문사건 및 故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모든 문이 똑같이 생겼으며 마주보는 문들이 서로 엇갈리게 배치돼 맞은편에서 같이 문을 열어도 서로 볼 수 없도록 돼있다. 어느 쪽에서 왔는지 헷갈렸다. 몇 번을 헤매자 방향감각이 사라지고 차가운 공포감이 밀려왔다.

다른 곳은 리모델링했지만 박종철 열사 공간은 당시 그대로 보존했다. 욕조를 보며 사진 속 젊은 청년을 떠올리자 가슴이 먹먹했다. 좁은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조차 눈이 부실만큼 온통 침침했다.

5층, 복도 끝 작은 창문을 통해 당시도 있었던 해태제과 건물이 보였다. 어느 누구나 과자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 시절 마음은 모두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코끝이 시큰거렸다.

박종철 열사의 어린시절부터 유품까지 살펴볼 수 있는 박종철 기념 전시실 ⓒ김윤경

박종철 열사의 어린시절부터 유품까지 살펴볼 수 있는 박종철 기념 전시실

4층은 박종철 기념 전시실과 인권교육과 관련된 상설전시 및 서적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박종철 기념 전시실에는 6월 민주항쟁에 대한 사진과 내용들이 가득 적혀있다. 박종철 열사 어린시절과 가족사진, 직접 그린 그림과 안경, 책, 시계, 옷 등도 전시돼있다. 인권교육 전시관에선 인권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카툰으로 그려져 이해하기 쉬웠다. 인권침해가 우리 생활 속 작은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층 인권 교육 전시관 ⓒ김윤경

4층 인권 교육 전시관

1층은 역사관과 홍보관, 영상소개실이 있다. 예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지금의 인권센터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과정을 소개한다. 인권 센터가 있는 본관은 사무실과 회의실을 포함 7층까지 있다. 관람은 1층 역사·홍보관, 5층 구 조사실, 4층 박종철 기념 전시실 및 인권 교육 전시관 순으로 둘러보면 된다.

예전 굳게 닫혀만 있었을 철문이 오늘은 열려있다. 교육실에서 장애인을 위한 워크숍이 이틀에 걸쳐 열리고 있단다. 여름에는 앞마당에서 경찰인권영화제를 개최해 600여 명이 모인 적도 있다고 한다.

경찰청 감사관실 나찬문 씨는 “암울했던 시절 인권보다 국가안보가 우선이었지요. 앞으로 많은 시민이 인권센터를 찾아 인권에 대해 확실히 배우고 인권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인권이 버려졌던 곳에서 새 희망의 불이 켜지고 있다. ⓒ김윤경

인권이 버려졌던 곳에서 새 희망의 불이 켜지고 있다.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 철문 너머로 트리는 반짝이고 있었다. 다시는 소중한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다. 6월 민주항쟁의 초석이 된 박종철 기념 전시실도 둘러보며 인권에 대해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경찰청 인권센터 소개

○ 견학시간 : 평일 오전 9시~오후6시

○ 위치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71길 37(갈월동)

○ 찾아가는 길 : 1호선 남영역 1번 출구(도보 1분), 4호선 숙대입구역 7번 출구(도보 5분), 6호건 삼각지역 10번 출구(도보 10분)

○ 문의 : 02-3150-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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