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촌 무단주차 차량 사건의 전말

최경

Visit1,314 Date2016.12.09 15:20

야경ⓒ김현진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9) 의문의 무단주차 외제차, 그 실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필자는 꽤 오랫동안 미국을 여행한다거나 방문을 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이유는 좀 우습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 속의 미국이란 나라는 툭하면 총질에 유색인종에 대한 공격 그리고 밤만 되면 범죄의 거리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실제로도 굳이 미국여행을 찾아서 가지 않았다. 훗날 가보게 된 미국은 상상하고 생각한 것만큼 무서운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밤이 되면 숙소에 콕 박혀서 가까운 거리라도 걸어가는 일 따윈 절대로 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TV나 책, 영화 등에서 얻은 것에 대한 인상은 그렇게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을 낳기도 한다.

몇 달 전 제작진에게 특이한 제보 하나가 왔다. 한 빌라촌에 외제차 한 대가 보름째 무단 주차하고 있는데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언뜻 들으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제작진을 솔깃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외제차가 아무래도 강력범죄에 연루된 듯 보인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무서워서 차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고, 삐딱하게 선을 타고 주차를 해놓고 안 나타나는 바람에 정작 빌라 주민들은 주차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혹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운전자가 차를 찾으러 다시 빌라 근처에 나타날까봐 매일 매일이 두렵다고 했다.

차를 얼른 치워달라고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주차된 차에 관한 것은 구청 소관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구청에 신고했더니 이번엔 주차된 장소가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차량 소유주 허락 없이는 차를 견인해 갈수 없으니 길면 두 달 정도까지 기다리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빌라주민들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으니 하루라도 빨리 의문의 외제차를 치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대로 뒀다가는 빌라 촌이 피비린내 나는 강력범죄의 현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민들은 갖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보름 전 CCTV를 살펴보니, 한밤중, 차 한 대가 익숙한 듯 빌라 주차장으로 들어와 주차를 하더니, 한 남자가 내려서 한참동안 천천히 앞뒤 좌석과 트렁크에서 짐을 빼서 빌라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것만 보면 영락없이 빌라주민이 퇴근해 주차하고 귀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주민도 아니었고, 빌라 뒷산 너머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주민들이 다음날 아침, 문제의 외제차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바퀴는 주저앉아 있고, 차량 앞과 옆 범퍼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차량 앞의 번호판까지 없는 상태였다. 주민들은 누군가를 치고 나서 도주한 뺑소니차량이거나 강력범죄에 연루돼 경찰에 쫓기다가 차를 버리고 달아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영화에 보면 많이 나오잖아요. 트렁크에 시신이 실려 있는데, 경찰 검문에 걸려서 막 도주하다 차 버리고 가는 장면. 이 차가 딱 그런 것 같다니까요. 트렁크를 못 열어 보겠어요. 무서워서 시체 나올까봐…”

“범인은 범행현장에 다시 온다고 하잖아요. 증거인멸을 해야 하니까 이 차로 다시 나타날지도 몰라요. 괜히 재수 없게 맞닥뜨렸다가 봉변 당할까봐 너무 무섭다구요.”

생전 처음 겪는 일에 주민들은 자신들이 본 영화나 TV 범죄수사물에서 나오는 온갖 장면을 떠올리며 눈앞에 있는 사고흔적이 역력한 외제차에 대입시키고 있었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에선 이미 차적 조회와 차량안의 지문채취까지 마친 상태였다. 제작진이 경찰에 확인한 결과, 무단주차 외제차량은 대포차량이었다. 즉 무적차였던 것이다. 원주인을 찾아서 알아보니 이미 2년 전에 대포차량으로 신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제가 그 차를 담보로 돈을 빌렸었는데 못 갚아서 차가 넘어갔거든요. 근데 그 뒤로 과태료며 범칙금이 전국 팔도에서 날아오더라고요. 그래서 대포차 신고를 해버렸어요.”

그렇다면 대포차를 몰았던 운전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대체 왜 빌라촌에 무단주차를 하고 사라져버린 걸까. 차량상태를 살펴보던 전문가는 차량 범퍼와 옆면에 난 흔적들에서 단서를 찾아냈다. 노란 페인트 흔적이 나있는 차량 옆면을 보니 아무래도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것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문의 외제차가 빌라촌으로 들어오기 전, 근처 도로에서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문조회 결과도 나왔다. 운전자는 지명수배가 된 남자라고 했다. 퍼즐이 대략 맞춰졌다.

대포차를 몰던 운전자가 도로의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그대로 달아났다. 경찰에 걸리면 안 되는 지명수배자이기 때문이다. 사고로 차바퀴도 펑크가 나 오래 갈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고, 가까운 곳을 찾아들어가 차를 버리고, 차 안의 흔적들을 대충 치운 뒤에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차량이다. 구청에선 차량소유주를 찾아야만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자체 기준이라는 이상야릇한 논리를 앞세우며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했다. 하지만 자동차 관리법상으로 보면 자동차를 일정한 곳에 옮긴 뒤 소유자에게 연락을 하게 돼 있다. 도대체 법을 뛰어 넘는 자체 기준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연락을 취하니, 그제서야 곧바로 방치차량을 견인해가겠다고 했다.

결국 보름을 넘기고서야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무단주차 외제차량이 견인차에 끌려 주차장을 떠났다.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비로소 홀가분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 보면 대포차도 대포폰도 문제긴 문제다. 범죄에 쓰일 수 있어 엄연히 불법인데도 점점 그 수가 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청와대에서도, 비선실세도 대포폰을 사용했다니 엄중단속도 무소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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