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할 것이다!”

강원국

Visit815 Date2016.11.28 14:10

숲ⓒ마재석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7) 눈에 그려지듯 써라 – 글과 그림의 상관관계

미국 언론인이자 퓰리처상의 장본인 조지프 퓰리처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눈에 그려지듯 쓰면 잘 읽힌다.

크로키와 데생 훈련
글이나 그림이나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가장 특징적인 장면이나 성격을 그려내야 한다.
불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덜어내고, 남은 부분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 분야는 많다.
기사, 보고서, 블로그의 제목 뽑기, ​표어나 슬로건 작성, ​광고 카피 만들기 등.
그림으로 치면, 크로키와 같다.

그림의 데생훈련 같은 것도 있다.
묘사와 기록이다.
본 그대로를 묘사하거나, 일어난 일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글쓰기로 출발해 느낌과 해석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실대로,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다.

글쓰기는 출구 찾기
깜깜한 방에서 출구를 찾아 더듬더듬 미로를 헤매는 것이 글쓰기다.
저 멀리 보이는 한 줄기 빛을 향해 좌충우돌하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과정이다.
처음엔 막막하고 글과 데면데면 하다가 한참 동안 글과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글의 윤곽이 잡히고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된다.
그것은 마치 중고교 다닐 적,
문제집 여러 권을 풀었을 때 전체가 한 장의 그림으로 다가오는 경험이고,
글쓰기는 누가 더 빠르고 그럴싸하게 완성된 그림을 그리느냐의 승부다.

퍼즐 맞추듯
그림 퍼즐 맞추듯 글쓰기를 시작하자.
그림으로 채워야할 광활한 판때기를 보면 얼마나 막막한가.
백지의 공포다.
퍼즐 조각은 두서없는 생각, 즉 글감이다.
우선 비슷한 색깔의 퍼즐 조각을 분류해서 모은다.
퍼즐 그림을 그릴 때 이웃해 있을 확률이 높은 덩어리별로 모으는 것이다.
글감의 클러스트화 작업이다.
글에서는 한 문단에 놓일 것들이다.

이제 그림판에 퍼즐 조각을 배치할 차례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가.
모서리다.
그 다음이 가로세로 네 변이다.
글도 자기에게 쉽고 편한 방식으로 시작하면 된다.
첫줄이 가장 쉬우면 그것으로,
그냥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이 익숙하면 그렇게 시작하자.​
관건은 단초를 찾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릴 수 있으면 쓸 수 있다
대우에서 근무할 때 나의 상사는 업무를 종이 한 장에 그림으로 그려 지시했다.
벤처기업에서 일할 때 회사 대표 방에는 화이트보드가 있었고 대표는 늘 그림으로 회사 방침을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연설문 구조를 몇 개의 단어로 짜서 보여줬다.
나는 이런 사람을 보며 좌절했다.
나는 그림으로 보여주지 못한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사람의 공통점은 상상력과 논리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상상과 논리라는 두 날개로 날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머릿속에 그림이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이렇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한다.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한다.
그래서 한눈에 보여준다.
간혹 신문 방송에서 재벌 혼맥과 조폭 조직도를 봤을 것이다. 그런 게 한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런 그림을 말로 풀어 설명하거나 글로 쓰려면 얼마나 복잡하고 장황할지 생각해 보면,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주눅들 필요 없다.
처음부터 완벽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생각에 창의성은 새끼치기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겨자씨에서 살이 붙는 게 창의성이다.
작은 겨자씨 하나씩은 누구나 갖고 있다.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이미지화해서 종이에 그려보자.
이런 낙서가 생각을 정리해줌으로써 글 쓰는데 도움을 준다.
마인드맵이 그런 일종이다.

구글에 가서 관련 이미지를 검색해보라.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글감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림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이것을 글로 표현해보라.
자기만의 상상으로 거기 담긴 이야기를 써보자.
사진이나 그림에 제목을 달아 보는 것도 방법이다.
글은 말하는 그림이고, 그림은 말없는 글이다.

종이에 쓸 것인가, 노트북에 쓸 것인가
글쓰기에 강의에 가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펜으로 쓰나요? 컴퓨터에 치나요?
소설가 김훈을 비롯해 원고지를 고집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이어령 선생 같은 분은 컴퓨터와 최신 장비로 무장하고 글을 쓴다.

나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쓴다.
간혹 종이에 쓰기도 하고, 종이에 쓰는 장점도 많다.
글의 전체 모양을 구상할 때는 종이가 좋다.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단어를 치고, 중요한 것에는 동그라미와 밑줄로 표시한다.
노트북은 이런 작업이 어렵다.

종이에 쓰면 생각이 더 잘 나기도 한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잠깐 기다릴 때는 종이에 끼적이는 게 잘 써진다.
쓰기 싫은 글을 억지로 써야 할 때도 종이에 끼적끼적하는 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수첩을 갖고 다닌다.
어떤 작가는 종이에 쓰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종이에 써서 줄을 긋고 고치면 이전에 썼던 것을 볼 수 있어 좋고,
종이에 쓰는 건 힘들기 때문에 단어를 찾을 때 더 신중해진다고 한다.

긁는 느낌, 서걱이는 소리가 좋아서 종이에 쓰는 사람도 있다.
글은 ‘긁다’를 어원으로 하고, 영어 ‘라이팅(writing)’도 뾰족한 무엇으로 ‘긁는다’의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니 틀린 말도 아니다.
이런 사람은 만년필이나 펜, 연필을 신중하게 고른다.
종이도 원고지나 줄친 노트, 아니면 흰색이나 노란색 백지와 같이 자기만의 취향이 있다.
필기도구 사는 것 자체를 즐기고, 그들에게 이러한 행위는 글을 쓰기 위한 준비운동이자 성스런 의식이기도 하다.

그림 같은 글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전달이다.
그것이 글의 본령이요 글의 공리다.
이러한 목적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달성한 것인가.
여러 방도가 있겠지만, 시각적 방법이 기본이다.
시각적 방법은 독자의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주는 것이다.
글은 눈으로 읽는다.
읽으면서 생각한다.
생각은 이미지 형태로 그려진다.
소설이나 희곡은 물론 여타 글도 그런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그게 좋은 글이다.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글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도 좋다.

글과 그림의 상관관계
글 이전에 그림이 있었다.
동굴벽화도 그중의 하나다.
아니 그 시대엔 그림이 글이었다.
어린아이도 그림부터 그린다.
그림책을 읽으며 글을 배운다.
학교에 가면 그림일기로 양수겸장을 한다.
개요를 짠다는 것은 글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기획서를 작성할 때도 그림을 그려보라 한다.​
집짓기에 비유하면 설계도에 해당한다.
이래저래 글과 그림은 밀접하다.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