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아버지들은 눈물나게 살았다

최경

Visit292 Date2016.11.25 13:53

탄광ⓒnews1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8) 대한민국의 아버지들2 – 아버지라는 거울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가 평소 무슨 생각을 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려면 그 자식들을 보면 된다. 자식이 부모를 빼닮는다는 것, 알게 모르게 배운다는 것은 일면 신비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말 무서운 일이도 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국정농단 사태의 두 주인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아버지들과 하는 짓이 어찌나 닮아있는지 온 국민이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유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사실 자식 입장에선 부모의 말과 행동, 혹은 삶의 태도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만큼은 절대로 닮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라는 말이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작금의 국정농단의 두 딸들은 그 아버지들의 거울이다. 뭐든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고, 막장 드라마도 울고 갈 막장의 끝을 보여주는 청와대 관련 뉴스를 수시로 접하다 보니, ‘이러려고 작가가 됐나 자괴감이 들 정도’다. 비리를 창조해내는 창의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유체이탈 증세와 화법 역시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적어도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대부분은 그들처럼 살지 않았다. 비록 정글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앞만 보고 달려갔어도, 자식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보다 집에 쌀이 떨어지는 것이, 자식들 교육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기며 살았어도, 그래서 자식들과 어느새 벽이 생겼다 해도, 적어도 나의 영달을 위해 남을 철저하게 짓밟는 짓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위계를 이용해 압력을 행사하고 빼앗고 등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못 배우고 가난한 아버지일수록 더 그랬다. 몇 년 전, 한 아버지의 일생을 취재했던 것이 새삼 기억난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하며 유년을 보냈고, 탄광 일에서부터 농사일까지 가장 밑바닥에서 안 해본 일이 없이 살았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자식 5남매를 대학까지 공부시키는 것뿐이었다. 그의 딸은 탄광 매몰사고가 있었던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탄광이 무너졌는데, 그 속에서 아버지가 살아나오셨어요. 그날 저녁에 집에 오셔서는 소주에 계란 하나 풀어서 드시고는 주무셨어요. 병원도 안가셨죠. 그땐 아버지는 으레 그런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면 돈이 아까워서 병원에 안 가신 거였어요. 그렇게 평생을 사셨죠.”

그 후, 아버지는 광부를 그만두고 농사를 지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논에 나가 힘든 노동을 했고, 집에 와서는 자식들과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그래도 자식들이 대학 갈 나이가 됐을 때, 아버지는 말없이 등록금을 내밀었고, 자식들은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대학을 마쳤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늙은 아버지에게선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눈이 안보이기 시작했고, 오랜 탄광 생활로 진폐증까지 앓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병으로 무너지게 된 것은 몇 년 전, 아들 둘이 불의의 사고로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부터라고 했다. 자식이 그렇게 먼저 가버린 것도 애비가 못나서라고 아버지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고생고생하면서 왔는데 자식 둘이 그렇게 되고 나니 내가 슬픔밖에 남는 게 없어요. 내가 돈이 없어서 아들들이 객지 나가서 고생하다가 죽은 거예요. 그렇게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살아있을지도 모르지요.”

아버지는 방안에 누워서 그해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그리고 남은 자식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 게 좋을지 따져보면서 마음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보러간 딸에게 말했다.

“저 달력에다가 계좌번호 적어놔. 내가 조금이라도 보태줄게. 사람이 너무 돈이 없으면 나쁜 짓 할 수 있어. 돈 보낼 테니까 중고차라도 하나 사. 그래야 너도 살지. 아버지가 암만 힘 떨어졌어도 그건 해줄 수 있어.”

아버지는 평생 자신을 위해 쓴 것은 없었다. 모든 걸 자식들을 위해 쏟아 붓고 늙고 병든 육신만 남은 아버지, 그가 유언처럼 제작진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어려서 배고파 죽다 살아난 사람이라서 자식들은 배곯지 않게 하겠다고 악착같이 살았어요. 근데 마음먹은 대로 안 되데요. 자식들이 먼저 가버리데요. 다 틀렸어요 이제. 다 알고 있어요. 가는 날을 몰라서 그렇지 이제 다 됐어요. 나는…”

자식 잘 키워 보람을 느끼고 싶었고, 세상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고, 그걸로 모진 세월 다 보상받고 싶었던 아버지. 그러나 모든 걸 다 내어주고 빈껍데기만 남은 그의 인생이 참 아팠다. 나라를 말아먹은 두 사람의 아버지와 비교하면 보잘 것 없고 가진 것 없었을지 몰라도, 이 땅의 아버지들 대부분은 그렇게 눈물 나게 살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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