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리더, 말 못하는 참모
강원국
발행일 2016.11.07. 13:00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4) 최순실 사태가 남겨준 선물
남의 말을 알아듣는 이해력, 남의 글을 알아먹는 독해력은 소통의 기본이다.
그런 기본이 없는 사람이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적 동물’로서 준비가 덜 된 것이다.
이해력과 독해력은 배경과 맥락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은 스스로 경험하거나 절실하게 느껴본 사람만이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는 다 안다고 웅변한들 결코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지도자를 두고 있는 백성은 불행하다.
그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 시기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지난해 6월, 블로그에 쓴 글이다.
대통령의 소통 수준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껴, ‘지도자가 말과 글을 못 알아먹는 것은 재앙이다’는 제목으로 썼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네 덕목
지도자는 네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
첫째,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판단력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
둘째, 본 것을 설명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식견이 있으나 아는 것을 명료하게 표현하고 나눌 수 없다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셋째,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해야 한다.
식견과 소통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공동체를 위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재물에 초연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갖췄어도 돈에 눈이 멀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필자의 말이 아니다.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페리클레스의 말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 영웅이다.
지도자의 두 번째 조건이 눈길을 끈다.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없는 것이다.
식견이 있을 리 없다.
생각 없는 지도자는 아무리 공동체를 사랑하고 재물에 초연해도 그 구성원을 망하는 길로 이끌 뿐이다
리더 역할은 의사결정과 의사소통
청와대에서 8년간 일하면서 대통령을 지켜봤다.
연설문 작성 책임자로서 대통령을 보좌했다.
대통령에게 연설은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업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모든 리더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다.
리더는 의사결정과 의사소통을 한다.
회의를 주재하고 보고를 받으면서 의사결정을 한다.
그리고 결정된 사안을 갖고 소통한다.
그러니까 의사소통 이전에 의사결정이 있다.
소통하는 연설 이전에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정하는 것이 먼저이다.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부하 직원이나 자기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의사결정이다.
청와대에서는 매일 아침 대통령 주재 참모회의가 있다.
참모들이 물어본다.
“이것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 사안에 관해 청와대 입장을 어떻게 발표하지요?”
아침마다 적어도 서너 가지는 답해줘야 한다.
또한 대통령 스스로 자신에게 묻고 답하기도 한다.
누가 묻건 스스로 묻건 간에, 그에 대한 답이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국정이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역사나 사회의 진전 방향에 부합하면 나라가 융성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국가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옳은 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작년 6월 블로그에 쓴 글 또 하나
불행하게도 우린 지금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모시고 산다.
본인은 표현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영어와 불어, 중국어엔 능통한지 모르겠는데, 한국어가 서툴다.
왜 대통령이 과거에 짧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참 나쁜 사람’이라고 했던가?
차라리 그렇게 짧게 말하라.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동안 대통령이 써준 대로 읽는다고 비판한 것도 반성한다.
써준 것이든, 본인이 쓴 것이든 써서 읽어라.
그래야 국민도 알아먹고, 받아쓰기하는 장관들도 제대로 받아쓸 것 아닌가.
받아쓰기만 하는 참모, 쓸 줄 모르는 리더
청와대 밖에 있던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던 것을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은 모두 몰랐다고 한다.
처세와 입신양명을 위한 촉이 우리나라 1등인 그들이 몰랐단다.
대통령 비서가 대통령이 하는 일을 아무 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 뭘 알았단 말인가.
월급 받고 떵떵거리면서 무슨 일을 했단 말인가.
인간적으로 자괴감 같은 것도 없었나.
내가 이러려고 청와대에 들어왔는가 하는 생각도 안 들었나.
내 몸 하나 보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나.
나도 모른 체 할 테니, 내 자리도 지켜달라고 했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나.
받아쓰기만 잘하는 공직자,
문제의식 없고,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참모,
자기 말을 자기가 쓰지 못하는 대통령.
참담하다.
그러나 얻은 것도 있다.
우리 국민은 큰일을 겪을 때마다 위기에서 배우고 또 한 단계 성숙했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상상력이 확대될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목도했다.
앞으로 우리 국민의 상상력은 세계 최고다.
또한,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았다.
이제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눈치라도 볼 것이다.
스스로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리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국민의 글쓰기 역량이 높아질 것이다.
이번 사태가 남긴 씁쓸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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