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성곽길 따라 반나절 힐링 산책

시민기자 김영옥

Visit1,604 Date2016.11.02 16:29

흥인지문과 반원 모양의 옹성 ⓒ김영옥

흥인지문과 반원 모양의 옹성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이 6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라는 걸 일상생활에서 느끼긴 힘들다. 작정하고 궁궐을 찾거나 박물관을 찾아 그 시대를 반추해 보면 모를까. 하지만 요 근래 들어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시선을 강탈하는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종로구 성북동 북정마을을 지날 때도,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을 갔을 때도, 서대문구 행촌‧교남동을 지나갈 때도, 시내에 들어가기 위해 동대문을 지나갈 때도 멀리 성곽 길이 멋스럽게 펼쳐졌다. 600년 역사 도시 한양이, 서울을 지켜 온 ‘서울한양도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최근 한양도성의 멸실 구간이 복원되면서 한양도성 전체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양도성 성곽 길을 찾아 그 매력적인 풍광을 접하고 있다.

걸으면서 느끼는 한양도성의 역사와 아름다움

동대문에서 낙산공원까지 한양도성 성곽 안쪽 길과 바깥쪽 길을 걸어보는 ‘다 같이 걷자 낙산순성놀이’란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늘 먼빛으로 보던 터라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무척 반가웠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7번 출구로 나오자 왼편으로 바로 동대문을 만날 수 있었다. 새벽녘까지 비가 온 뒤라 맑은 하늘 아래 위용을 뽐내는 보물1호 동대문(흥인지문)은 그 자태가 남달라 보였다. 태조 7년에 완공됐고 현재의 모습은 고종연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조선후기의 장식이 많은 건축양식을 잘 담고 있다. 동쪽 지형이 낮고 평탄하기 때문에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이 옹성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계획된 시설물로 서울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다.

서울한양도성은 조선을 개국(1392년)한 태조 이성계에 의해 1396년에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곽이다. 한양을 둘러싼 백악, 낙산, 목멱, 인왕의 능선을 따라 축성됐고, 전체 길이는 약 18.6km이며, 동서남북 방향으로 4개의 문과 각 대문 사이에 4개의 소문을 설치했다.

4대문은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쪽의 혜화문, 남동쪽의 광희문, 서남쪽의 소의문(소덕문), 북서쪽의 창의문 등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과 음양오행을 나타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 4대문의 이름 안에 담겨져 있고, ‘신(信)’자는 도성의 중심지에 있는 보신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동쪽으로 오간수문과 이간수문 두 개의 수문(水門)을 두었다 한다.

성돌에 책임자나 감독자의 성명과 축성구간을 새겨 넣은 `각자성석` ⓒ김영옥

성돌에 책임자나 감독자의 성명과 축성구간을 새겨 넣은 `각자성석`

동대문과 한양도성 낙산구간 사이 도로 바닥엔 ‘서울한양도성’이란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어 예전엔 성곽이 이어져 있던 곳임을 표시해 주고 있었다. 동대문에서 낙산 방향으로 길을 건너자 서울한양도성 성곽과 동대문성곽공원, 한양도성박물관이 함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도로와 인접한 성곽 길 초입에서 만나게 된 것은 성돌에 새겨진 ‘각자성석’. 성돌에 구간 책임자와 감독자의 성명과 축성구간을 새겨 넣어 성벽이 무너질 경우 이를 책임지게 했다는 각자성석은 지금의 공사실명제와 같았다. 도성의 길이 59,500척을 1구간에 600척씩, 총 97구간으로 나누어 각 지역별로 일정 구간을 담당하게 했다 한다.

동대문성곽공원 ⓒ김영옥

동대문성곽공원

서울한양도성의 각자성석을 살핀 후 동대문성곽공원을 올랐다. 수크령이 가득 핀 공원은 맑은 하늘과 성곽의 자태, 공원 내의 초화류와 어우러져 가을색 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동대문성곽공원 맨 위에 서자 동대문과 DDP, 남산타워까지 한 눈에 들어 왔다. 얼마 전 재개관한 한양도성박물관에서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한양도성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었다. 축성공사과정 모형과 축조시기별 성돌의 차이, 한양과 한양도성의 원형을 보여주는 고지도 등 한양도성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들을 미리 숙지해야 그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 사는 공간과 한양도성이 만나는 곳, 창신동과 이화동

한양도성박물관을 나와 한양도성 성곽 안길을 걸었다. 낙산성곽 구간까지의 거리 중 한양도성 안쪽은 이화동이요, 바깥쪽은 창신동이다. 성곽 안쪽 길에서 슬쩍슬쩍 보이는 바깥쪽 동네는 창신2동이었다. 예전 낙산성곽 바깥쪽에 위치한 창신동은 퇴직한 궁녀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지만 1960년대부터 동대문 의류산업 배후 생산지이자 수도권 대표적 의류제조업체 밀집지역으로 봉제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는 절벽의 형태로 남은 창신동 채석장 절개지 ⓒ김영옥

현재는 절벽의 형태로 남은 창신동 채석장 절개지

창신동에 있는 채석장의 돌을 사용해 경운궁 석조전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석조건물의 대부분을 지었다고 한다. 채석장 절개지는 절벽의 형태로 남았고 주민들은 채석장 절개지 위 바위와 채석장 절개지 바로 아래에 집을 짓고 살았다. 성곽 안길에서 멀리 보이는 창신동의 채석장 절개지 절벽집 혹은 돌산 밑 마을은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화벽화마을 골목길(좌) 및 이화동 마을박물관(우) 모습 ⓒ김영옥

이화벽화마을 골목길(좌) 및 이화동 마을박물관(우) 모습

한양도성 낙산구간을 걷는 동안 암문을 통해 바깥 창신동 길과 안쪽 이화동 길을 번갈아 가며 걸을 수 있었다. 이화동은 성벽 바로 안쪽이며 오래된 주택이 많고 골목도 좁았다. 70년대 동대문시장에 의류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2천여 개 소규모 봉제공장이 자리 잡은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2006년부터 공공미술시범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이화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지고 조형물들이 세워지면서 유명세를 타자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이화벽화마을 골목골목을 누볐고,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은 소란스러운 골목길 소음에 벽화의 일부를 지우는 일도 일어났었다. 하지만 박물관과 갤러리, 공방 등 20여 개의 문화예술공간들이 이화벽화마을 골목길에 옹기종기 들어서면서 요즘은 이화마을 전체가 ‘이화동 마을박물관’이 돼가고 있고 마을지도도 마을 곳곳에 세워졌다.

낙산성곽길(좌)을 따라 걷다보면 서울시내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김영옥

낙산성곽길(좌)을 따라 걷다보면 서울시내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성곽을 옆에 두고 걷는 이화벽화마을 끝에선 남산과 남산타워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이화벽화마을을 지나 다다른 낙산정. 전날 내린 비로 미세먼지 제로인 쾌청한 상태에서 바라 본 시내와 인왕산과 북악산, 그리고 그 아래 주택가 모습들, 저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는 것은 궂은 날엔 볼 수 없는 덤으로 얻은 선물 같았다.

한양도성 성벽의 성돌 크기가 다른 이유

한양도성 성곽 안길과 바깥 길을 걸으며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벽을 이루고 있는 성돌의 크기가 달랐던 점이다.

“한양도성은 태조 때에는 산지는 석성을, 평지는 토성을 쌓았고 성돌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했고, 세종 때는 평지의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고 성돌은 옥수수 알 모양으로 다듬어서 사용했다. 숙종 때는 무너진 구간을 여러 차례에 걸쳐 새로 쌓았는데, 성돌 크기를 가로세로 40~45cm로 규격화해서 사용해, 이전보다 성벽은 더 견고해졌으며 순조 때는 가로세로 60cm 가량의 정방형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 올렸다”라는 내용의 축조 과정에 대한 안내판이 성곽 안길과 바깥길 중간 중간에 세워져 있어 참고하기 좋았다.

한양도성은 60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보수와 개축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성곽에는 이러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됐다. 파란 하늘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성곽의 모습은 경이로웠고, 성벽 하나하나를 이루고 있는 성돌엔 축조된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성돌의 크기로 자리하고 있었다. 성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다양한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시기와 축성기술의 발달 과정을 살피며 걷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였다.

낙산공원 성벽 풍경 ⓒ김영옥

낙산공원 성벽 풍경

한양도성 낙산구간 바깥 길을 걸어 도달한 낙산공원 성벽은 가히 일품이었다. 성벽이 높기도 하거니와 성돌의 모습도 각양각색이어서 켜켜이 쌓인 세월을 마주하는 감동이 있었다. 낙산공원 바깥쪽 길은 바로 밑 장수마을과 도심을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도록 성벽에 기댄 의자도 중간 중간 놓여 있어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고 있었다.

“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에 잠시 멍한 상태에 빠졌다. 심호흡을 하며, 낙산성곽 정점이 주는 풍광에 빠져 들고 있었다. 하늘은 높았고, 바람은 시원했다.

한편, 한양도성 전문 해설사들과 함께 600년 한양도성길을 걷는 다양한 순성 해설 프로그램이 상시 진행 중이니 참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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