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필요한 다섯 가지 용기

강원국

Visit787 Date2016.10.31 14:35

동상ⓒ뉴시스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3) 양심을 지키는 용기가 필요하다

글을 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첫 줄을 쓰는 용기,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
쓴 글을 남에게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술 마시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랑을 고백하고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일도 용기가 없으면 어렵다.
글쓰기에 필요한 용기를 정리해 봤다.

첫째,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다.
‘양파이론’이라고도 불리는 ‘사회적 침투이론’이 있다.
심리학자 어윈 올트먼(Irwin Altman)과 달마스 테일러(Dalmas Taylor)가 주장한 인간관계 이론이다.
내용은 상식적이다.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느냐가 관계 발전의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을 많이 드러낼수록 상대는 호감을 나타낸다.
글쓰기가 힘들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나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발가벗을 용기가 있는가.
나의 치부까지 까발릴 수 있는가.

그랬을 때 독자도 마음을 연다.
독자와 친해질 수 있다.
친해지면 공감한다.
감동까지 가능하다.
사람들은 약점과 단점을 얘기할 때 환호한다.

나의 허세, 비겁함, 표리부동함, 헛된 욕심을 직시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글은 솔직하기만 해도 좋은 글이다.

두 번째, 회피하지 않고 맞서는 용기다.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
쓰기 전이 가장 힘들다.
막상 쓰기 시작하면 불안감이 잦아든다.

세 번째, 버리는 용기다.
글을 쓰다 보면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버리기 아깝다.
어느 것은 쓰고 어느 것은 버려야 하는지 기준이 모호하고 경계가 불확실하다.
많은 경우 글의 성패가 여기서 갈린다.
적절한 지점에서 추가하는 것을 멈추고 버려야 한다.
다 넣으려고 욕심 부리면 망한다.
여러 개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때로는 내 살을 갈기갈기 찢고 도려내는 결단을 해야 한다.
글쓰기는 그런 용기를 요구한다.

네 번째, 아니다 싶을 때 그만 두는 용기다.
나는 책을 읽을 때나 글을 쓸 때 염두에 두는 게 하나 있다.
아니다 싶을 때 재빨리 손을 떼자,
미련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손해다 싶을 때 털고 나오는 게 더 큰 손실을 피하는 길이다.
많은 시행착오 결과로 얻은 생각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낌새라는 게 있다.
왠지 이건 아니다 싶은 기미를 느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은 것이 아까워, 뭔가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책을 놓지 못한다.
마지못해 질질 끌려간다.
결국은 시간과 노력만 허비하게 된다.

글쓰기도 그렇다.
처음 잡은 주제로 쓰다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은 조짐이 들 때가 있다.
찾아놓은 자료에 현혹되어, 혹은 나도 모르게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글이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만 두지 못한다.
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관성을 따라 계속 떠밀려 간다.
뒤늦게 후회막급이다.
아니다 싶을 때 그만 둬야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섯째, 양심을 지키는 용기다.
미셸 푸코가 말년에 천착했다는 ‘파르헤지아(parrhsia)’
솔직하게 말하기, 진실을 말하는 용기 등으로 풀이하는 파르헤지아.
그리스어로 모든(All) + 말하기(Speech)의 합성어다.
푸코는 이것이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얻는 것이라며, 이를 완벽하게 실천한 인물로 소크라테스를 꼽는다.

파르헤지아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함으로써 스스로 성찰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행위이다.
비난을 무릅쓰고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함으로써 도덕적 주체로 바로 서는 것이다.
이는 오류까지도 책임지고, 위험과 비난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이 전제되어 있다.
자신도 살고 공동체도 살리는 길이다.

파르헤지아가 간절한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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