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장소 투정을 한다

강원국

Visit557 Date2016.10.17 14:40

독서ⓒ뉴시스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1) 장소에 따라 써지기도 안 써지기도 하는 글

글은 장소를 가린다. 집에서 안 써지던 글이 카페에선 술술 써진다. 회사 사무실에서 온종일 엉켜 있던 글이 퇴근길 지하철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글을 지속적으로 쓰기 위해서 시간과 함께 장소 선정이 중요하다. 장소가 글을 부른다. 글이 좋아하는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 공간에 자신을 자주 노출해야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 구양수. 그는 세 군데에서 좋은 생각이 나고 글이 잘 써진다고 했다. 말 위, 침상 위, 화장실 변기 위이다.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은 이런 비밀장소가 있다. 또한 그런 장소가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다.

장소 선정 중요

세계적인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모아 펴낸 <작가란 무엇인가>을 보면 작가마다 글을 쓰는 특정한 장소가 있다. 누구는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메모지에 쓰면 글이 술술 써진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다락방에 가면 자기 몸이 글 쓰는 모드로 전환한다고 한다. 누구는 새벽 침대 위에서 잘 써지고, 또 누군가는 골방에 들어가면 몸이 글 쓰는 모드로 바뀐다고 한다. 어디든 좋다. 그곳에 가면 왠지 글이 잘 써질 것 같은 자기만의 장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글 쓰는 장소를 만들어놓으면, 그 장소에서는 뇌가 으레 글을 써야 하는 걸로 알고 순응한다.

나는 지하철에 가면 생각이 잘 난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는 나는 버스를 타면 불안하다. 도로가 정체되면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지하철은 막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역마다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편안하다. 그래서인지 지하철을 타면 마음이 편안하고 상념에 잠긴다. 뇌에 그런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멍 때리는 모드에 들어가면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전히 생각에 빠져든다. 완벽한 집중과 몰입이 이뤄진다.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때 글 소재를 하나씩 얻기도 한다. 글 쓸 일이 있고 생각이 막히면 지하철을 탄다.

글 쓰는 장소는 공간만이 아니다. 메모지에 써야 잘 써지는 사람도 있고 공책이 좋은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에 잘 써지고, 어떤 사람은 노트북에 써야 생각이 잘 난다. 블로그에 써야 잘 써지는 사람도 있다.

장소는 소재의 보고

장소는 글 쓰는 소재를 찾는 데에도 중요하다. 장소는 기억을 불러온다. 소설가가 소설 무대를 답사하듯, 써야 할 글과 관련 있는 장소에 가보면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살았던 곳이나 연인을 처음 만났던 장소 같은 곳 말이다. 그 장소가 예전 같지 않거나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글 소재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장소의 일부이고, 글에는 장소가 묻어난다.

무조건 현장에 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회사에서 사보와 사내방송 기자를 5년 했다. 취재해야 할 행사가 모두 거기서 거기다. 현장에 가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얼추 기사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래도 가야 한다. 좋은 글을 쓰려면 반드시 가야 한다. 가면 예기치 못했던 우연한 상황이나 사건, 혹은 장면과 마주 친다. 또한 가보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그려서는 알 수 없는 디테일을 볼 수 있다. 현장감 있고 생생한 글은 여기서 나온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같은 행사라도 되풀이해서 가면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주로 공통점을 썼다. 무미건조하고 뻔하다. 재미없고 판에 박힌 얘기다. 차이점을 포착해서 쓰면 색다르다. 독자들은 왠지  모르는 가운데 글이 좋다고 한다.

순백의 뇌

내게도 글과 관련한 세 공간이 있다. 먼저, 머릿속 빈 공간이다. 사람들은 자기 머릿속에 자료가 부족해서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변명이다. 누구나 자기 안에 너무 많은 자료가 있다. 설사 없다 해도 문제될 게 없다. 아는 게 없더라도 생각은 어떻게든 나오게 돼 있다. 술을 마시건 산책을 하건 친구와 잡담을 하건 어쨌든 생각은 만들어진다. 아는 게 없다는 건 희망적인 일이다. 발전할 일만 남았다. 아직 못 본 자료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밖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료가 다른 사람보다 많고, 이미 많이 아는 사람보다 머릿속 여유 공간이 더 크다는 말이다.

오히려 문제는 아는 게 많은 것이다. 아는 게 많은 것은 글쓰기에는 독이다. 생각을 제약한다.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 이 모든 것은 아는 것의 찌꺼기다. 찌꺼기로 가득 찬 곳에는 공간이 없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거부하고 토해낸다.

다행히 나의 뇌는 깨끗하다. 모든 게 늘 새롭다. 나는 갔던 곳을 또 가도 처음 온 것 같다. 봤던 영화를 또 봐도 중간쯤까지는 봤는지 모른다. 남의 글을 표절하려고 해도 기억이 안 나서 못한다. 글쓰기에 참 좋은 뇌다. 아내는 늘 그런다. 당신은 청순한 뇌를 갖고 있어서 좋겠다고. 순백의 뇌는 확장성이 있다. 다른 가능성이 숨 쉴 공간이 있다. 나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백지 위에 뭐든지 그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들뜬다. 내 안에 없는 자료, 신기한 자료를 찾아 글 쓰는 일이 즐겁다. 쓸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어떤 어려움도 견디는 공간

두 번째 공간은 마음속에 있다. 판단하고 결정하는 공간이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자신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을 썼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유가 있다.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삶의 길을 선택할 정신의 자유가 그것이다. 이 자유만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또 이런 얘기도 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말인즉슨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런 공간을 갖고 있다. 그 공간에서 반응을 선택할 자유와 힘이 있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그가 2년 반 동안 아우슈비츠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는 주장이기에 더 힘이 있고 믿음이 간다. 글쓰기야말로 이런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삶의 길을 선택하는 자유의 시간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사유하는 공간이다. 글을 쓰면 그 어떤 고통도 고통이기를 멈춘다.

빈칸 한줄 채우기

세 번째 공간은 내 글의 독자 안에 있다. 글은 백지 위에 홀로 서지 않는다. 문학조차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미 쓰여 있는 많은 글 사이에 있는 작은 빈칸, 독자들의 마음속에 아직 채워지지 않은 공간을 찾아 그곳을 채우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서 배경과 맥락, 독자를 알고 써야 한다. 내 글 주변에 이미 있었던 생각과 글을 파악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한 줄을 추가한다는 자세로 써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고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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