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따라 그리는 가을 수채화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6.10.17. 16:01

수정일 2016.10.17. 16:01

조회 2,499

가을 정취 가득한 한양도성 낙산구간ⓒ박분

가을 정취 가득한 한양도성 낙산구간

남산이나 동대문에 가게 되면 항상 먼발치에서 올려다보곤 했던 한양도성을 드디어 직접 돌아보게 됐다. 서울시 SNS 팔로워들과 ‘내손안에서울’ 시민기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서울시 SNS 친구들과 함께하는 한양도성 걷기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한양도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이란 것과 산 능선 따라 둘러싸여 무척 아름답다는 것이 알고 있는 전부인 터라 설렘은 컸다.

지난 10월 11일 전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나와 한양도성 낙산구간의 첫 지점인 혜화문으로 향했다. 낙산구간은 혜화문-장수마을-낙산공원-한양도성박물관-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다.

혜화문 앞에는 해설사와 참여자들이 집결해 있었다. 혜화문은 도성 동북 방향의 성문으로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과 더불어 서울 사소문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 동북쪽 관문 역할을 했다. 완공 당시는 홍화문이었으나 창경궁의 정문 이름을 홍화문으로 지음에 따라 중종 6년(1511년)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한양도성 낙산구간의 시작, 혜화문. 천장에 그려진 봉황이 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박분

한양도성 낙산구간의 시작, 혜화문. 천장에 그려진 봉황이 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혜화문의 천장에는 새 중의 절대 강자이며 상상 속의 새로 불리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 지역은 평지라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혜화문 주변에 새들이 많아 새들의 왕인 봉황을 이용해 막으려고 했다고 한다. 성을 지키려는 굳건함은 또 드러난다. 사대문인 흥인지문과 함께 나란히 갑옷(철문)을 입었으니 당찬 아이 같다고 해야 할까?

도심 속 횡단보도를 건너 낙산에 오르니 ‘성곽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려는 것’, 태조실록에 나오는 명구처럼 사적 제10호인 한양도성이 당장이라도 명을 받들 것처럼 웅장한 몸체를 드러냈다. 계절과 잘 어우러진 한양도성 성곽길은 카메라를 어디에다 맞춰도 아름다움을 연출해내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더군다나 구절양장 같은 한양도성의 곡선미는 직선에 길들여진 경직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이완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성벽의 돌 모양은 축조연대에 따라 제각각 다르다.ⓒ박분

성벽의 돌 모양은 축조연대에 따라 제각각 다르다.

서울을 감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이 도성은 백악, 인왕, 남산, 낙산 등 4개의 산을 연결하여 쌓았으며 전체 둘레는 18,127m이다.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은 후 태조4년(1395년)에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여 한양성곽을 쌓은 것이 한양도성의 출발점이다. 성벽을 살펴보면 아랫부분과 중간 윗부분이 각기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옥수수알 모양의 세종대와 네모반듯한 숙종대, 정교한 정방형의 순조대 등 성벽 쌓기는 시대마다 성돌 모양과 쌓는 방법이 각기 달라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축조술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여기 좀 보세요. ‘영동’이라고 씌어 있죠?” 성벽으로 다가가 해설사가 가리키는 돌을 살펴본즉 물론 햇볕과 바람에 많이 닳아 희미하지만 분명 한자로 씌어있었다. 도성 성벽 축성과 관련한 글을 새겨 넣은 돌을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 한다. 성곽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각자성석에는 구간명과 축성 담당자의 이름 날짜 등이 명기돼 있단다. “이 구간은 영동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성을 쌓았다는 뜻이예요. 요즘말로 공사실명제라고 할 수 있어요. 각자성석을 새김으로써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공사에 임하게도 되는 것이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양도성은 무너지고 헐리며 많이 훼손 됐는데 한양도성 낙산구간에 터전을 잡은 장수마을도 한양도성과 다르지 않은 듯 보였다. 훼손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뭉쳐 일궈낸 장수마을은 재생마을의 좋은 표본이 되고 있다. 장수마을을 지나면서 언덕길이 경사가 져 숨이 턱에 차오른다. ‘깔딱고개’로 불리는 이 가파른 고갯길에서 무거운 돌을 져 날랐을 선조들의 구슬땀이 서린 성곽은 구불구불 고갯길을 휘돌아가며 위용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박분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

암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들어오니 시야가 확 트이며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한국의 몽마르뜨’로 불리는 낙산공원은 노을과 야경을 최고로 꼽는 전망 좋은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바깥에서 성곽을 올려다볼 때는 성 안엔 누가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도성으로 발을 들이고 보니 성곽을 낀 공원이라는 것 외엔 동네 여느 공원과 다름 없어보였다. 정자에서는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한가롭게 걷고 있었다.

한양도성 낙산구간을 걷다 보면 정겨운 마을 풍경도 만날 수 있다ⓒ박분

한양도성 낙산구간을 걷다 보면 정겨운 마을 풍경도 만날 수 있다

유명한 이화마을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도성 바깥에 자리한 장수마을에 반해 이화마을은 낙산구간 성벽 안쪽에 길게 자리 잡은 마을이다. 도성 안에 자리 잡은 까닭일까? 오래된 집과 좁은 골목이 세월의 풍파를 머금은 한양도성과 잘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빈터에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밝고 화사한 이미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마을로 급부상했지만 반면에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내방객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끊임없는 사생활 침해를 겪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쉿 주민이 살고 있어요‘라고 적힌 외부인들을 향한 문구가 이 마을 주민들의 불편함을 대변하고 있다.

낙산공원에서 도성 안쪽 성곽을 따라 걸으면 어깨 높이의 여장이 눈에 띈다. 성곽의 맨 윗부분인 여장은 보호시설이자 총을 쏘는 공격시설이기도 하다. 여장의 맨 윗부분은 사선으로 뾰족하게 다듬어 놓았다. 얼핏 보아서는 지나치기 쉽지만 안에서 밖을 잘 내다볼 수 있고 밖에서 안은 잘 볼 수 없게 만들어졌단다. 방어와 공격시설을 적절히 조화시킨 과학적 성벽 쌓기에 감탄하게 된다. 동대문 성곽길 따라 흥인지문 방향으로 내려오면 여장 너머로 보이는 동네가 창신동이다. 조선시대 때 도성 바깥 구역인 창신동 일대에는 퇴직한 궁녀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한양도성ⓒ박분

황금빛으로 물든 한양도성

누렇게 영근 수크령이 물결치는 동대문성곽공원 언덕에 나지막이 엎드려 가을볕을 쬐는 한양도성에도 황금빛 물이 들었다. 동대문성곽공원이 있는 낙산 중턱에 한양도성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품고 있는 한양도성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한국의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이 교통의 요지에 우뚝 서 친근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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