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이상한 실종

최경

발행일 2016.10.14. 14:07

수정일 2016.10.14. 16:08

조회 431

장미꽃ⓒ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3)

한 도시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30대 후반의 A씨가 지난해 가을 갑자기 사라졌다. 가게 운영이 힘든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빚에 시달린 것도 아니었으며, 없어지던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내와 점심시간에 교대를 하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나와야 할 시간에 남편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어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집으로 간 아내가 본 것은 뭔가 이상한 남편의 흔적이었다. 집은 비어있었고, 식탁 위에 A씨의 휴대전화와 자동차 열쇠 그리고 금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휴대전화와 함께 넣어 다니던 신분증과 카드도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목걸이는 결혼할 때 예물로 해준 거예요. 씻을 때조차 풀어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휴대전화에 통화목록이랑 문자메시지, 카톡 메시지도 다 지워져 있었어요. 가져간 거라고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랑 랜턴이 다예요.”

전화 속 지난 기록을 모드 지워버리고 사라진 남편. 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어디로 간 것일까? 부부는 6년 연애 끝에 2년 전 결혼한 신혼이었다. 아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이 사라진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평소 조용한 성격에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남편과 딱히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연애 시절에도 늘 아내의 의견을 잘 맞춰주던 남편이었다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전혀 연락이 닿지 않자 아내는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경찰은 CCTV 등을 통해 A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가 오후 3시경, 모자를 눌러쓰고 비닐봉투를 들고 아파트를 나서는 모습이 확인됐고 8Km 정도 떨어진 도로로 걸어가는 모습을 본 목격자도 찾아냈다. 그런데 그 길은 A씨의 아버지 산소로 가는 길이었다.

혹시나 싶어 A씨 부친의 산소로 간 경찰은 그곳에서 집에서 들고 나간 것을 추정되는 맥주캔과 담배꽁초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의 행적은 나오지 않았다.

“전부 수색을 했죠. 산이랑 저수지를 몇 번 씩 수색했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신분증도 다 두고 나갔는데 새로 만든 흔적이 없어요. 한마디로 생활반응이 전혀 안 나온다는 겁니다. 자살이라고 할 수도, 사고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가출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A씨 스스로 집을 나갔다는 것 외엔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왜 사라졌는지 짐작할 방법은 이제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에서 단서를 찾는 것이었다. A씨에게 아내가 모르는 고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데 A씨가 두고 간 기록이 지워진 휴대전화를 복원해 보니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아내 사진만 골라 지워져 있었고 주소록에 아내의 전화번호만 지워져 있는 것이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제작진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놀라웠다.

“사진은 제가 다 지운 거예요. 제 얼굴이 나온 사진을 다 골라서 지웠어요.”

뿐만 아니라 남편이 사라지고 난 뒤, 그의 짐을 모두 정리해 벽장에 넣어버렸다고 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남편이 원망스러워서요. 절 버린 거잖아요. 왜 나갔는지도 모르겠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얘기를 해서 풀어야지 일을 왜 이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남편에 대한 아내의 원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A씨의 오랜 친구들은 뭔가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을까? 친구들 역시 사라진 뒤 연락이 닿지 않는 A씨를 무척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없어졌다는 얘기 듣자마자 솔직히 번뜩 떠오른 게 있었어요. 속 얘기를 잘 안하는 친구인데 최근에 굉장히 힘들어하더라고요. 가게 쉬는 날도 아내 때문에 처갓집에 꼭 가야한다고, 자기도 본가에 가서 어머니도 만나고 싶고 누나들도 만나고 싶고 그런데 그렇게 못한다고... 그러다 얼마 전에 아내가 유산을 했는데 그 일 때문에 장인어른이 제 친구더러 일을 많이 시켜서 유산한 거라고 하는 바람에 화가 많이 난 것 같았어요. 그런데다가 유산한 일로 아내랑 시댁 사이에 갈등이 심해졌나 보더라고요. 중간에서 너무 괴롭다고, 더 이상 못 참을 수도 있겠다고 폭발하면 감당이 안 될 것 같다고 그런 이야기를 최근에 했었거든요.”

드러나지 않던 부부의 속사정이 조금씩 드러났다. A씨의 노모는 아들이 사라진 뒤,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노모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늦게 결혼을 한 뒤, 혹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아들 집에도 거의 걸음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노모가 보기에 부부 사이가 그렇게 살가워 보이지 않아 내심 걱정을 했었단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이 시댁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결혼이 늦었던 만큼 아내는 임신을 서둘렀지만 유산이 됐고 상심이 큰 와중에 시댁 쪽의 반응 때문에 무척 속이 상했었다는 것이다. 그 일로 아내는 시댁을 더욱 멀리하게 됐다고 했다. 어쩌면 남편 A씨는 이 갈등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결해 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속앓이만 해왔던 건 아닐까. 그 즈음부터 부부의 카톡 대화창은 아내의 일방적인 의견이나 요구뿐이었고 남편은 간단한 대답이나 아예 답을 하지 않는 날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전문가는 이 부부는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고, 알려고 시도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 못하는 상황에서 부부생활이 이어졌고, 남편 입장에서는 부부생활의 문제점이나 불만을 쉽게 이야기 못하는 성격이었던 거죠. 그냥 내가 없어지면 끝나는 게 아닌가 하면서 그걸 실천에 옮긴 겁니다. 결혼 2년 만에 이런 상황이 된다면 앞으로 12년, 22년, 32년을 살아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는 것이죠. 남편이 목걸이를 놔두고 갔다는 건 결혼생활, 즉 부인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요. 남편이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가 됐다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아내는 지금껏 일방통행을 해왔고, 남편은 그것을 아무 대꾸 없이 받아들여 왔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틈이 생겨버린 것이다.

“속 깊은 이야기를 안했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후회돼요. 물어보지 않은 것도 후회 되고, 남편이 힘들어하는 걸 몰랐다는 것도 후회되고 이렇게 밖에 표현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도 후회가 돼요.”

여전히 남편 A씨는 어디로 간 건지 알 길이 없고, 여전히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실종 #부부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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