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헌책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6.10.13. 16:44

수정일 2016.10.13. 16:44

조회 2,192

탑처럼 쌓인 책들로 가득한 청계천의 어느 헌책방 모습 ⓒ박분

탑처럼 쌓인 책들로 가득한 청계천의 어느 헌책방 모습

신간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책향기가 넘실대는 그곳은 서울 중구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있다. 햇살 좋은 초가을 오후, 점심 지나 들른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제법 활기를 띠고 있었다. 두 평 남짓 될까 한 책방엔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쌓인 책들로 탑을 이뤘고 인도 변에도 채 노끈을 풀지 않은 책 더미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70년대 중반 참고서를 사러 다녔던 청계천 헌책방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많이 변모해 있을 것이란 상상과 달리 좁고 허름한 책방은 여전했다. 한 두 사람이 겨우 드나들 공간을 빼곤 자리를 모두 책에 내어준 책방 풍경이며 사다리에 올라 건들면 무너질 것 같은 키를 넘는 책탑 위에서 묘기 부리듯 책을 쌓는 모습들도 변함이 없었다. 다만 너무나 짧아진 헌책방 거리가, 중간에 뚝 끊긴 다리를 맞닥뜨린 것처럼 한참을 망연자실 서있게 했다.

헌책방이 즐비한 청계천 헌책방거리 ⓒ박분

헌책방이 즐비한 청계천 헌책방거리

‘밍키’ ‘대원’ ‘상현’ ‘민중’….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꿋꿋이 지켜낸 고마운 헌책방들이다. 꽤나 너른 평화시장에서 남아 있는 책방은 21곳뿐,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시원스레 흐르는 청계천 따라 길게 늘어선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청계천 버들다리(전태일 다리)와 오간수교 구간 사이 평화시장 1층에 형성돼 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 주변에 보따리장수와 노점상들이 운집해 좌판을 벌이면서 시작된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외국잡지 등을 팔면서 헌책방이 자릴 잡기 시작했습니다. 궁핍한 때였고 책이 귀했기 때문에 그 당시는 물물교환도 가능했죠.” 평화시장 서점연합회장(기독성문서적 대표) 현만수(70세) 씨가 귀띔을 해주었다.

이후로 1962년에 평화시장 완공과 함께 건물 1층에 헌책방들이 입주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계6가에서 8가까지 헌책방이 즐비했던 1970년대가 전성기였다. 헌책방들이 점차 문을 닫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대입본고사 폐지로 인한 참고서 수요 급감이 원인이었다. 인터넷 발달로 점점 호황을 누리게 된 온라인 서점 증가도 부추김을 더했다.

청계천 오간수교에서  청계천 버들다리(전태일 다리)까지 헌책방거리가 이어진다 ⓒ박분

청계천 오간수교에서 청계천 버들다리(전태일 다리)까지 헌책방거리가 이어진다

하지만 헌책방거리의 분위기만큼은 쇠락일로의 모습에 저항하듯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시민들은 차곡차곡 쌓인 책이 천장까지 맞닿아 있는 책방에서 책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고 개중엔 독서삼매경에 빠진 이들도 보였으며 책방 주인은 손님 응대 하랴, 중간수집상들이 부려놓은 책들을 선별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백발의 한 어르신이 책장 가득 빼곡한 책들을 유심히 살펴보는가 하면 점심시간 잠시 휴식삼아 거리를 찾은 인근 직장인들의 기웃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간혹 연인끼리 어깨를 맞대고 걷는 모습도 포착됐다.

20여 년 간 책 중간 수집상을 해온 경험으로 1991년에 문을 열어 현재 1만5,000여 권의 헌책을 보유하고 있다는 한 책방 주인은 손님들이 고르고 고르던 끝에 원하던 책을 싼 가격에 구입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대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헌책방에서 찾은 한시집과 열국지 등 빛바랜  고서들(좌), 약초 전문서적들(우) ⓒ박분

헌책방에서 찾은 한시집과 열국지 등 빛바랜 고서들(좌), 약초 전문서적들(우)

눈에 띄게 색 바랜 고서가 빼곡히 쌓여있는 곳은 인문학 고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책방 ‘상현서림’이다. 이 책방에선 100여 년 전에 출간된 한시집과 열국지 등 진귀한 고서들을 다량 확보해 두고 있었다. 출판사가 문을 닫아 절판된 책도 여러 경로를 통해 구해주며 손님에게 성심을 다하는 점도 헌책방의 매력이다. 때때로 희귀본이나 값진 고서가 흘러나와 지식인 수집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외양이 화려하진 않아도 신간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책의 향이 진한 이곳에 오면 책 고르는 재미와 기쁨을 보너스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동도서에서 소설, 전기, 경제학 관련 서적 등 서로 상생하기 위해 책방들마다 전문성을 띤 다양한 종류의 책이 진열돼 있어 책 고르기가 수월한 이점도 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 때문에 처음 얼마 간은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나 책꽂이에 게시된 카테고리를 살펴보면 곧 익숙해져 책 고르는 어려움을 덜 수 있다. 필요한 책만을 얼른 사가는 신간서점과는 달리 헌책방은 이책 저책을 매만지며 묵은 책에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이나 추억 속에 잠기게 된다. 책값은 정가의 60~70%로 꽤 저렴한 편이다.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자주 찾아달라는 평화시장 서점연합회장 현만수 씨 ⓒ박분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자주 찾아달라는 평화시장 서점연합회장 현만수 씨

평화시장 서점연합회에서는 자구책을 찾아 헌책방을 살리려 안간힘을 쓰던 중 뒤늦게나마 인터넷을 익혀 온라인 판매도 하고 있다. 현만수 평화시장 서점연화회장은 “청계천 헌책방은 전 국민이 고객인 셈”이라며 독서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새 책이 잘 팔려야 헌책도 잘 팔리고…, 아무쪼록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사라져가는 평화시장 헌책방들을 지키기 위해 헌책방 주인들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헌책 문화행사 ‘청계천 헌책 산책’이 10월 12일~15일(낮 12시부터 밤 9시, 토요일은 저녁 6시)까지 청계천 헌책방거리와 청계천 오간수교 아래 산책로에서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기사 `헌책이 주는 설렘 청계천 헌책산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헌책에는 앞서 책을 읽었던 누군가의 시간의 흔적과 추억이 담겨 있다. 헌책만의 향기다. 흐르는 청계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할 수 있어 책을 사지 않더라도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한번쯤 사색에 잠겨볼만한 명소임에 틀림이 없다. 헌책방을 찾는 중장년의 손님들이 주고객이라는 헌책방 주인의 말은 안타까운 여운을 남긴다. 중장년 손님도 그 당시에는 학생이었던 만큼 책을 많이 필요로 하는 최대 독자층인 청년들이 득시글대는 헌책방거리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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