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간디' 함석헌을 아십니까?

시민기자 김영옥

발행일 2016.10.12. 15:02

수정일 2016.10.12. 15:06

조회 1,219

함석헌 기념관

지난 10월 5일, 도봉구 쌍문동 주택가에선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개관 1주년을 맞는 함석헌기념관에서 유족과 주민들, 함석헌기념사업회 회원 등 50여명이 모여 소박한 행사를 열었다. 질곡의 근현대사 속에서 선생이 살다간 삶의 궤적이 주는 의미를 오롯이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였다.

우리나라의 대표 인권운동가이자 시인, 교육자, 언론인, 사상가, 역사가인 함석헌선생(1901~1989)은 1979년, 1985년 두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랐으며, 독립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한국의 간디’라 불렸다.

1958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로 자유당 독재정권을 통렬히 비판해 투옥됐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부터 집권군부세력에 정면으로 도전해 비판을 가했으며 1970년 ‘씨알의 소리’를 발간해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76년 명동사건, 1979년 YWCA 위장결혼식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회부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사셨던 분이다.

함석헌 기념관

작지만 의미있는 큰 공간

지난해 9월, 도봉구 쌍문동의 한 주택가에 함석헌기념관(도봉구 도봉로 123길 33-6)이 문을 열었다. 함석헌선생이 타계하기 전, 7년간 둘째 아들 내외와 함께 살았던 가옥이 기념관으로 탄생한 것. 이 공간은 2011년 도봉구 문화관광 발전계획이 수립되면서 기념관 건립이 제기됐고, 2013년 서울시로부터 주민참여예산을 받게 됐다. 유가족과 함석헌기념사업회와의 협약을 거쳐, 유가족으로부터 쌍문동 가옥을 매입하고, 리모델링과 증축공사를 통해 기념관으로 개관 했다. 그 후 1년이 지났다. 소박한 주택을 공간 개선한 터라 공간이 협소했지만 함석헌기념관은 ‘선생이 늘 민중 속에 있었듯이’ 주민들에게 늘 열린 공간으로 1년을 보냈다.

함석헌기념관

지난 1년 동안 함석헌기념관은 10개 동아리와 교양강좌 수강생들이 정기적인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됐다. 학생들의 캘리그라피 교양강좌도 열렸다. 캘리그라피로 쓴 선생의 시와 글귀는 1주년 기념행사에 출품, 전시되고 있었다. 도봉구의 초중고교 학생들과 도봉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 등 1,740명이 그동안 이곳을 다녀갔다.

저마다 선생을 추억하는 사람들

기념식에 이어 ‘시와 함께 하는 작은 정원 음악회’가 앞뜰에서 열렸다. 시아버님과의 친분 때문에 시댁의 마당에서, 사랑방에서 시아버님과 담소를 나누는 함석헌선생의 모습을 뵈었다는 주민 이혜숙씨가 사회를 맡았다. 바이올린니스트 최수현 씨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시네마천국, 황진이 꽃날` 등을 연주해 작은 기념관 뜰을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로 가득 채웠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여성씨알모임 회원이 나와 ‘먼 눈’이란 시를 낭송했고, 지역 주민 김정옥 씨도 함석헌선생의 시 ‘가을’을 낭송했다.

가족들이 전하는 선생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돌아가시기 전, 7년간 함께 생활했던 둘째 며느리 양영호 씨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훌륭한 스승을 곁에서 모셨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며, “1일 1식을 하시며 늘 소탈하게 잠뱅이를 입고 계시던 모습과 지인이 집으로 찾아오신다 하면 아무리 춥고 날이 궂어도 늘 버스정거장까지 가서 서성이며 손님을 기다리며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람들을 깊이깊이 사랑하셨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회고했다.

또한 “번역을 하실 만큼 영어 실력을 갖추셨는데도 매일 아침마다 중학생이 처음 영어를 읽듯, 큰 소리로 영어를 읽으시며 공부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전했다.

시 낭송

함석헌기념사업회 박상희 목사는 “함석헌선생님을 처음 만날 때는 내가 소녀 같았는데 지금은 선생님 나이를 훨씬 넘긴 나이가 됐네요. 누구보다 올곧고 강인하셨던 분이셨고 앞길을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 주면서 걸어갔던 분이었습니다”라며 1968년 처음 선생을 뵈었을 때와 1972년부터 씨알의 소리 일을 함께 했던 인연을 소개했다.

기념관의 작은 뜰에서 ‘시와 함께 하는 작은 정원 음악회’가 열리는 동안 86세의 둘째 아들 함우용 선생은 ‘쌍문동. 함석헌선생을 기억하다’ 사진전이 열리는 지하 씨알갤러리에서 함석헌선생이 나온 사진들을 천천히 살피고 있었다. 이번 전시 사진들은 가족들과 생일을 맞아 찍은 사진과 선생의 일상적인 모습, 선생을 찾아온 현대사의 거물들의 사진들로 구성됐다.

“내가 지금 86세인데, 아버님의 86세 생신 때 찍은 사진도 여기 있네. 다 엊그제 같은데...”, “이건 나도 없는 사진이네. 가족들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 주니 참 고마운 일이죠”라며, 사진 속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된 아들은 오래도록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었다.

쌍문동. 함석헌선생을 기억하다 사진전

함석헌기념관은 이런 곳

함석헌기념관 내부는 선생의 생전 삶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듯 소박했다. 주택을 리모델링한 터라 그리 크지 않았다. 선생이 생활했던 1층은 유품이 전시된 전시실과 그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동영상이 상영되는 영상실, 안방을 재현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었다.

1층 전시실에는 함석헌선생이 늘 공부하고 독서하고 사색했던 방이 부분적으로 재현돼 선생이 평상시 사용했던 유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오랫동안 사용했을 서안(書案)과 그 위에 촘촘하게 메모가 돼 있는 일력과 안경, 찻잔세트, 문방사우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문갑 위로는 신발과 오래된 라디오와 전화기, 손목시계 등이 놓여 있고, 사위가 선물했다는 흔들의자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간디를 존경해 늘 간디의 사진을 걸어두며 간디의 삶과 사상을 기억했던 그 옛날처럼 간디의 사진도 벽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선생이 직접 쓴 욕심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의 ‘무욕청정(無慾淸淨)’이란 액자는 선생의 삶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선생의 일대기 중 주요사건에 대한 연보가 한쪽 벽을 장식했고, 친필원고와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엽서와 연하장도 전시돼 있다. 동영상과 강의 테이프 등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는 영상실도 마련돼 있다.

시

창고로 사용했던 지하 1층은 주민들이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는 세미나실과 독서공간인 도서열람실, 숙박체험이 가능한 게스트 룸으로 구성돼 있다. 자치구중 최초로 기념관에 게스트 룸이 있어, 함석헌선생의 정신과 사상에 대해 밤새 토론하고 선생의 흔적을 느껴 볼 수 있도록 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생전에 가꿨던 나무와 온실의 화초들도 그대로 보존해 유리온실에 남아있다. 활용도가 낮은 주차장은 전시 가능한 공간으로 지난 5월 재조성해 ‘씨알갤러리’로 운영 중이다. 그동안 주민들의 전시가 8회 개최됐고, 향 후 월 2회 정기 전시를 열 예정이라 한다.

세미나실과 게스트룸은 함석헌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이용하기 10일 전에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게스트 룸은 함석헌 선생이 살았던 집에서 하루 숙박을 체험한다는 취지로 유료이며 전시실 관람, 도서열람실, 세미나실 등은 무료다.

○ 찾아가는 길 : 쌍문역 2번 출구로 나와서 도봉마을버스 5번·6번 정의여고 앞 하차

○ 홈페이지 : hamsokhon.dobong.go.kr

○ 문의 : 02-905-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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