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섬이 묻어버린 어느 남자 이야기

최경

발행일 2016.10.07. 17:00

수정일 2016.10.10. 12:24

조회 716

모래섬이 묻어버린 어느 남자 이야기 ⓒ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2)

해안과 가까운 한 모래섬에서 평소와 다른 이상한 광경이 목격됐다. 근처를 지나던 선장이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건, 독수리 때문이었다.

“큰 독수리가 거기에 앉아 있어가지고, 그걸 뜯어먹고 있는 거예요.”

처음엔 독수리의 먹잇감이 동물의 사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사람의 시신이었다. 모래에 파묻혀 발목만 나와 있는 상태로 백골이 드러날 정도로 부패해 있었고, 밀랍처럼 지방으로 변하는 시랍화 현상이 진행돼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곳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 모래섬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한겨울에 발견된 시신은 아래 속옷만 입은 채였다. 인근 해안가 마을은 곧 소문으로 술렁였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파묻은 그런 느낌 있잖아요.”

“일이 잘 안 풀려서 거기 가서 자살한 것 같아요.”

“술 마시고 배타고 나갔다가 사고로 죽은 거라고도 하던데...”

부검 결과, 두개골 쪽의 타살혐의점은 없었고 나머지는 시랍화 현상으로 사인을 가릴 수 없었다. 지문을 확인할 수 없어 신원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치아 감식을 통해 대략 50세 가량의 남성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었다. 대체 남자는 누구이고, 왜 무인도모래섬에서 속옷만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것일까. 그런데 근처 김양식장에서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걸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 동네에서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져서 안보여요. 한두 달 된 것 같아요.”

모래섬에서 시신이 발견되기 한 달 반 전에 마을에서 사라졌다는 사람... 그는 김양식장이 몰려있는 마을에 머물며 일을 해왔다는 50대 초반의 김씨였다. 그가 머물던 방에는 사용하던 집기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심지어 지갑과 휴대전화도 그대로였다.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확인해보니 인상착의가 발견된 시신의 키와 머리모양이 비슷했다. 그렇다면 모래섬의 시신이 사라진 김씨가 아닐까? 이상한 건, 김씨와 함께 김양식장 작업을 할 때 타고 다니는 모터 달린 배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료는 김씨가 사라진 날이 모처럼 쉬는 날이었고 배를 타고 나갈 리가 없다고 했다. 겨울에 옷을 벗고 있었다는 점도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만약 배를 탔다면 출항신고를 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없어졌던 배는 이틀 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배가 발견된 장소가 공교롭게도 시신이 묻혀있던 그 모래섬이었다. 우연이라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제작진이 전문가와 함께 비슷한 날씨에서 실험을 해봤더니 놀랍게도 빈 배가 조류에 떠밀려 닿는 곳이 바로 모래섬이었다. 시신 역시 그렇게 떠밀려 온 것이라면 그리고 김씨가 배를 타고 나간 것이라면 시신은 바로 김씨가 아닐까?

경찰에선 김양식장에서 사라진 김씨의 가족들을 찾아 나섰고, 목포에서 여동생이 살고 있다는 것이 파악돼 백골 시신과 여동생의 DNA 대조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제작진이 만난 여동생은 오빠가 그렇게 죽었을 리 없다고 했다.

“오빠는 살려는 의지가 강했던 사람이에요. 어릴 때 얼마나 고생하면서 자랐는데요.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도망가 버린 뒤에 오빠가 저를 업어서 키웠어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지독하게 따라붙던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여동생을 보살피며 묵묵히 이겨냈던 오빠였고, 성인이 된 뒤 서로의 삶이 고달파 연락이 끊겼다가 몇 십 년 만에 재회한 게 얼마 전이라고 했다. 그 때 오빠 김씨는 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단다. 제작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경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던 여동생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DNA대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결국 모래섬에서 발견된 시신은 김씨였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김씨는 쉬는 날인데도 김양식장을 둘러보러 배를 타고 나갔다가, 배에 뭔가 돌발상황이 생겨 수습해보려고 하다가 그만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실종 전날에도 밀린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새로운 컴퓨터를 샀던 김씨는 가장 밑바닥에서 고단하게 살았지만 한 번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성실한 사람이었다. 김씨처럼 바다에서 발견된 시신은 한해 평균 1,000여구, 상당수가 사인을 밝히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한평생 외롭게 살다가 마지막 또한 외롭게 삶을 마감했다. 오랫동안 객지생활을 하면서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던 그가 한줌 재가 되어 여동생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걸로 위안 삼기엔 그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고 쓸쓸하다.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모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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