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자식이 있다고요?"

최경

발행일 2016.09.30. 13:52

수정일 2016.09.30. 16:03

조회 1,997

그림자ⓒ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1) 당신의 도플갱어가 있다면?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자식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일까?

A씨는 유학생 시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몇 년 뒤 귀국해 혼인신고와 아이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구청에 갔다가 날벼락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출생신고를 하면서 자녀 한명 중 첫째라고 썼죠. 그랬더니 담당직원이 제 이름으로 아이가 한명 더 있다고 하는 거예요.”

A씨의 가족관계기록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낳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입양하지도 않은 생면부지의 아이가 호적상 자식으로 올라와 있는 게 알려지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시댁은 물론이고 남편까지도 A씨를 의심했다고 한다.

“시댁에선 제가 숨겨놓은 자식이 있으면서 속이고 결혼했다는 거죠. 오해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제가 당신의 아들 신세 망쳐놓았다고... 결국 이것 때문에 이혼까지 했는데 사기결혼으로 소송까지 당했어요.”

대체 A씨도 모르는 자식은 누굴까? 그 아이가 출생신고 된 그 시기에 A씨는 분명 한국에 없었다. 또 다른 A가 그녀 행세를 하면서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A씨는 짚이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온갖 문제를 일으켜온 C라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에서 연락이 오는 바람에 자신의 명의를 도용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 C씨를 직접 만나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C씨는 길에서 우연히 주민등록증을 주웠고, 그걸로 통장개설과 휴대전화가입을 했노라며 용서를 빌었다.

C씨가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했고 나이도 어려 안쓰럽기도 해서 빠른 시일 내에 서류정리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용서해줬는데, 돌연 자취를 감춘 뒤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A씨 행세를 하며 심지어 아이까지 가족으로 등록을 해놓은 것이다. C씨가 A의 신분을 도용해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구청에 출생신고를 할 때까지 관계자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지만 알고 있으면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C씨는 참 쉽게 남의 인생을 훔쳐서 살았다. C씨 때문에 인생이 꼬여버린 A씨는 더 이상 그녀를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제작진과 함께 주민등록상에 올라와 있는 법적인 아들의 주소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마중 나온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한 C씨를 만날 수 있었다. 막상 그 모습을 본 A씨는 달려가 따지지 못했다.

“왜 남의 이름으로 사냐고, 망가진 내 인생을 어떻게 책임 질 거냐고 화내면서 머리채라도 휘어잡고 싶지만 저도 아이 키우는 엄마인데, 제가 그러면 저 아이가 얼마나 놀라겠어요. 아직 어린데...”

제작진은 C씨의 집으로 가서 상황을 이야기한 후 A씨와 만남을 주선했다. 의외로 선선히 만나겠다고 응한 C씨. 그녀는 A씨에게 또 다시 눈물로 용서를 구했다. 정말 궁금했다. 대체 왜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남의 이름으로 살아왔는지 말이다.

“변명 같지만 저는 제 이름이 싫었어요. 그냥 제 삶 자체가 싫었어요. 14살 때 가출했어요. 아빠한테 맞다가 죽을 것 같아서요. 그 뒤부터 밖에서 그냥 떠돌아다녔어요. 그러다 A씨의 신분증을 주웠고, 이걸로 살아가면 지옥 같은 집안도 잊고 끔찍했던 제 10대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냥 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러나 남의 인생을 훔쳐서라도 살고 싶었던 C씨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몇 년 전, A씨의 명의를 도용한 일이 시댁에 알려진 뒤 갈등 끝에 남편과 헤어졌다고 했다. 그러니까 진짜 A씨도, 가짜 A도 모두 같은 문제로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잘못된 가족관계 기록 때문에 이혼 관련 서류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이렇게 삶이 닮아 있을 수 있을까. 각자의 삶을 제자리로 돌리려면 악연의 고리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했다.

결국 가족관계기록을 바로잡기 위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A씨는 C씨와 함께 아이에 대한 두 가지 소송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출생신고를 할 때는 간단했지만 가족관계 정정을 하는 건 복잡했다. A씨와 아이가 친생자 관계가 아니라는 소송과, C씨와 아이가 친생자 관계가 맞다는 소송이 한꺼번에 이뤄져야 비로소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한다. A씨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만 얼룩졌던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도플갱어는 참 소름끼치고 무섭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도플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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