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박물관·미술관이 주는 큰 울림

시민기자 김윤경

발행일 2016.09.30. 13:24

수정일 2016.09.30. 17:11

조회 1,950

과거로부터 무전기 신호가 울리면 시민들이 직접 1분씩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중전화부스ⓒ김윤경

과거로부터 무전기 신호가 울리면 시민들이 직접 1분씩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중전화부스

그 시절의 추억을 담은 작은 박물관 ‘시.그.널’ 전시

“치지지지직…경위님 들리십니까…” 지난 겨울 드라마 <시그널> 속 무전기가 울릴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던 시민들은 긴장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울림은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즌2를 기다리던 애청자라면 더욱 반가운 소식이 있다.

10월 1~2일 오후 1시에서 5시까지 서울도서관 1층 임시 공중전화부스에는 무전기 신호가 울린다. 광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점에서 걸려올 지 모른다. 진행자 안내에 따라 선착순으로 1분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긴장하지 말고 걸려온 상대방과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 프로그램은 서울시와 박물관들이 함께하는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의 일환이다. 서울시민의 일상생활에 숨어있는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공유하자는 취지로 개인적 또는 사회적 가치를 지닌 모든 물품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수집하는 캠페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해 올해 12월 30일까지 진행하며, 일상생활 속 수집된 유산은 2018년 신설되는 13개의 박물관 콘텐츠로 제공된다. 서울도서관에서는 9월 27일부터 10월 8일까지 ‘시.그.널-그 시절 그 날의 널 기억해’ 기획전시로 캠페인에 동참한다.

서울도서관 곳곳마다 과거 추억의 물건들이 보내오는 시그널을 접할 수 있다.ⓒ김윤경

서울도서관 곳곳마다 과거 추억의 물건들이 보내오는 시그널을 접할 수 있다.

이번 ‘시.그.널’ 전시는 기획전·시민참여·시민도슨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기획전시로는 2~3층 계단에 마련한 삐삐가 스마트폰에게 보내는 시그널, 3층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리어카 테이프가 MP3에게 보내는 시그널, 못난이 삼형제가 뽀로로에게 보내는 전시 등을 만날 수 있다. 4층은 명동양장점이 동대문 패션타운에 보내는 시그널, LP음반으로 들을 수 있는 그 시절 시그널 송이 있다. 예약된 50분 간 기증한 옛 음반을 들은 후 감동 기부코너를 이용해 문화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다. 커피와 과자는 덤이다.

LP, 카세트 테이프 등을 통해 추억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전시 공간ⓒ김윤경

LP, 카세트 테이프 등을 통해 추억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전시 공간

전시를 보며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길거리 리어카 테이프에서 울리던 음악은 주머니 사정을 덜어주었다. 결정 장애로 선택을 망설이면 길거리 보드 아저씨는 음악 판도를 예언하며 추천해주는 전문가였다. 삐삐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의시간 중 울리던 ‘1010235’ 삐삐 번호. 그 의미를 모르고 혹여 급한 전화는 아닐까 강의실을 빠져나와 비슷한 번호를 유추해 공중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여러 시민들이 수집해온 물건들과 그 안에 담긴 그 시절의 사연들ⓒ김윤경

여러 시민들이 수집해온 물건들과 그 안에 담긴 그 시절의 사연들

주말에는 시민도슨트 전시가 있다. 서울의 별별수집가 8명이 전시를 직접 소개한다. 옛 시간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물건에 대한 사연과 그 시절의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그 시절 그 날로 돌아간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껏 시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6층이 전시 기간 동안 공개된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시 기간을 놓치면 또 언제 다시 공개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 꼭 방문해야 할 곳이다.

전시 리플렛에는 여덟 군데서 스탬프를 받는 칸이 있다. 장소가 크지 않다 보니 8개는 금방 채워진다. 스탬프를 다 받은 리플렛을 2층에 보여주면 기념품도 받을 수 있다.

삐삐 시절, 숫자암호에 담았던 메시지들ⓒ김윤경

삐삐 시절, 숫자암호에 담았던 메시지들

홍보 기획을 맡은 천서희 씨는 “제 자신이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물건은 못난이 삼형제 인형이었어요. 저희 집에도 있었는데 여러 많은 분들이 같은 기억을 떠올리는 걸 보고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아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구나 하는 유대감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라고 말했다. 곧이어 “양장점의 가위 보이시죠? 양장점을 하시는 분이 기증을 하셨는데 30년을 쓴 가위랍니다. 그만큼 연륜이 쌓이지 않으면 쓰면 안 된다고 하네요.”

일상생활 유산을 발굴할 기회에 동참하고 싶으면 ‘서울을 모아줘’ 페이스북,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 또는 전화( 02-3290-7192)로 문의하면 된다.

시청본관 하늘광장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표준자연` 전시ⓒ김윤경

시청본관 하늘광장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표준자연` 전시

아름다움에 대해 물음, 작은 미술관 ‘표준자연’ 전시

서울도서관 내 ‘시.그.널-그 시절 그 날의 널 기억해’ 기획전이 작은 박물관을 경험하게 했다면, 시청본관 하늘광장 갤러리에서는 작은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지금 시청본관 로비에는 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장터가 열리나 싶었는데 들여다보니 그 모양이 특이했다. 흔히 볼 수 있는 당근, 파프리카, 상추 등 채소·과일이지만 못생기고 별나게 생겼다. 한석현(한국)과 울리 베스트팔(독일) 두 작가가 준비한 ‘표준자연’ 작품들이다.

두 작가는 오랫동안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우리가 흔히 봐온 예쁘고 탐스러운 농작물이 아닌 먹기에 꺼려지는 못난 모양들의 농작물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로 현대인들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있다.

예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농작물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김윤경

예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농작물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단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충분히 영양가 있고 맛있는 농작물들이 무수히 버려진다. 인간의 눈에 적합한 예쁘다는 기준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마트에 진열되려면 엄격한 규격에 맞는 미적 기준에 통과해야 한다. 개성 강한 농작물은 일률적인 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상하고 괴이한 것으로 분류돼 상품이 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비단 농작물에만이 적용되는 현실이 아닐 것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아까운 농산물이 폐기되는 문제는 곧 대량의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생산하기까지 들인 에너지와 노동, 자원은 무의미하게 소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대 식품 산업의 불합리한 행태에서 배척된 못생긴 먹을 것들을 무대에 올려 재조명을 해본다.

시민들이 촬영한 다양한 모양의 농작물 사진들.ⓒ김윤경

시민들이 촬영한 다양한 모양의 농작물 사진들.

마지막 코너에는 6개의 빛이 차례로 비춰지는 소고기를 전시 해놓았다. 빛에 따라 소고기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준다. “정육점이 붉은 빛을 내도록 해놨잖아요. 같은 소고기지만 신선해보이니까요. 이왕이면 좋은 게 좋긴 하겠지만 너무 외적인 면에 치중을 하느라 보아야 할 것을 놓치면 안 되겠죠” 전시 안내를 맡은 장경순 씨의 의견이다.

이곳에서는 이번 달 초 시민들과 특이한 농작물을 가지고와서 슬로우 푸드를 만들어 먹고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에 가져온 농작물이 사진이 되어 벽에 붙어있었다. 시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도 있다. 조금 못생기거나 재미있는 채소, 과일을 촬영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업로드에 참여하면 경품도 받고, 작가인 #한석현 × #울리베스트팔 아트북에 함께 수록되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어릴 적 엄마 심부름으로 못난 농산물을 사오면 꾸중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시장 아주머니도 못난 채소는 그냥 가져가라고도 했다. 아이의 눈에는 못난 농산물이나 예쁜 농산물이나 매한가지로 보였던 그때, 편협하지 않았던 그 아이의 눈이 그립다.

한석현과 울리 베스트팔 두 작가의 `표준전시`ⓒ김윤경

한석현과 울리 베스트팔 두 작가의 `표준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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