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역사는 왜 이렇게 불편할까?

정석

발행일 2016.09.06. 14:50

수정일 2016.09.09. 10:03

조회 3,489

서울역ⓒ뉴시스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20) 주객이 뒤바뀐 민자 역사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롯데백화점 매장을 뺑 돌아 건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러 땅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화가 난다. 공항철도를 타고 와서 지하철로 갈아탈 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게 환승 편의를 고려한 철도역이 맞는가? 주객전도에 기가 찰뿐이다. 어디 서울역만 그런가? ‘민자 역사(民資驛舍)’라는 데가 모두 마찬가지다. 백화점에 노른자 공간을 다 내주고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은 완전 뒷전이다. ‘시민을 위한 도시’와 ‘기업을 위한 도시’는 이렇게 확연히 다르다. 시민이 말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점점 더할 것이다.”

언젠가 세종시에 강연을 다녀온 날 KTX서울역에 내려 지하철 4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엄청 고생한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난리가 났다. 공감한다는 뜻의 ‘좋아요’가 300여 개에 댓글도 줄줄이 달렸다.

“황당 그 자체였습니다. 서울역에서 역을 나가서 백화점으로 여기저기 물어 물어야 했습니다.”

“매주 서울역에 가면 선로에 의자 하나 없는 게… 고객센터에 민원 넣어봤자 소용없어요. 아침 6시 이전에는 에스컬레이터도 다 막아놔서 캐리어 이고지고 계단 올라야 해요. 그리고 승객 편의시설이 맥도널드, 롯데리아라니, 정말 말이 안 돼요.”

“대구역, 영등포역, 수원역, 평택역… 미칩니다. 백화점 투어. 그나마 요즘 공항철도는 서울역 지상 대합실까지 나오지 않아도 내부에서 1호선과 4호선 환승되게 해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멀고 먼 환승 구간입니다. 특히 수원역은 분당선으로 갈아타려면 완전 뺑뺑이. 특히 용인에서 수원역 갈 때 시간 촉박하면 제 시간에 기차 못 타요. 서울역은 대합실이라도 넓으니 롯데아울렛 안 갈 수도 있죠. 암튼 가끔 뚜껑 열립니다.”

“기업을 위해 시민이 이용되는 환승 구조죠. 서울역이나 역사에 붙은 쇼핑몰 말고도 도심의 쇼핑몰들은 시민이나 고객의 편의보다 기업의 편의 구조로 운영되고 있지요. 대한민국은 대기업을 위한 나라예요.”

“노인네들은 도무지 기차를 타거나 바꿔 타기가 불가능해졌습니다. 나도 곧 노인네가 되는데, 이제 어디를 스스로 다닐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역사는 그 도시의 얼굴인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대만에서 감동받은 것 중 하나가 너무도 가까운 환승역이에요! 우리나라는 같은 역도 환승역의 경우 거의 버스 한 정거장 거리죠. 그 이유인즉 지하철 출입구가 곧 부동산이기에?”

“경의선 타러 가면 더 기가 막히게 해놨어요. 아예 공항철도 타고 김포공항에서 내려서 일산행 버스를 타든가 택시를 타야 해요.”

민자 역사는 왜 그럴까? 철도역과 환승센터의 기능에 충실하기보다 노른자 땅을 턱하니 차지하고는 장사하기에만 바쁘다. 시민들의 불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 선량한 시민들을 화나게 만들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민자 역사니까.

‘민자’가 무엇인가. 민간자본이 아닌가. 민자 역사는 말 그대로 민간 자본으로 건설된 철도역이나 전철역을 일컫는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오래된 옛 역사를 철거하고 새로운 역사를 짓게 되는데, 그 때문에 자본을 투자한 민간기업의 상업용 건물이 역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서울역을 비롯해 영등포역, 청량리역, 대구역, 안양역, 부평역 등에 롯데그룹의 백화점이나 아울렛, 마트, 영화관이 있고, 왕십리역과 부천역, 죽전역, 의정부역, 죽전역에는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가 들어서 있다. 철도역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민자 역사를 지으면 이처럼 역의 본래 기능은 뒷전이고 민간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상업시설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민간자본은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주요 시설이나 공간에 들어와 도시를 헤집고 다닌다. 민간자본이 추구하는 것은 명백하다. 바로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행태인지 모른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민간자본이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를 제어할 수는 없더라도 민간자본의 이윤 추구가 공익에 심각한 위해를 주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도시계획이 하는 일도 바로 그런 것이다. 용도나 기능에 따라 어떤 곳에 해당 시설이 들어올 수 있고 없는지를 정하고 규제한다. 민간자본은 끊임없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도시계획은 공익에 침해가 없도록 민간의 개발 행위를 제어하는 것이다.

민자 유치 방식의 도시개발은 주객이 전도되거나 본말이 뒤바뀌지 않도록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 공익을 지키기 위해 민간자본을 제어해야 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만약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민간자본과 결탁한다면 매우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소중한 곳간을 열어주고 귀한 재산을 탕진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9호선과 우면산 터널은 서울시의 민자 유치 사업의 대표적 사례다. 지하철 9호선은 총 공사비 3조 4,600억 원 가운데 6분의 1만 민간사업자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비와 시 예산 등 국민의 세금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민간사업자에게 많은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2년 현대로템과 맥쿼리(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가 대주주로 있는 민자 업체 '서울시메트로9호선'이 서울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지하철 요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이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결국 서울시는 2013년에 민자 사업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조항을 폐지하고, 민간투자자에게 보장해주는 사업수익률도 크게 낮추었다. ‘혈세 먹는 MRG’로 불리는 최소운영수입보장은 사업자가 일정 금액 이상의 수입을 내지 못할 때 시 재정으로 민간사업자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민간사업자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특혜 조치다. 결국 현대로템과 맥쿼리 등 기존 투자자들은 지하철 9호선 사업에서 철수했고, 지하철 요금 결정권은 서울시로 돌아왔다.

우면산 터널은 사업비 1,402억 원을 전액 민간이 투자한 대표적 민자 사업이었다. 이명박 시장의 임기 중인 2003년 4월, 개통을 8개월 앞두고 협약이 변경되면서 MRG 방식이 도입되었고, 통행료도 애초 사업자가 신청한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상향되었다. 서울시가 MRG 조항에 따라 민간사업자 수익 보장을 위해 투입한 금액은 1,746억 원에 이른다.

그러다가 2016년에 와서 우면산 터널에 대한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가 폐지되었다. 민자 사업으로 건설되고 운영되던 지하철 9호선과 우면산 터널 모두 MRG 조항을 폐지함에 따라 서울시는 수천억의 혈세를 아낄 수 있게 되었고, 지하철 요금과 통행료를 결정하는 권한도 되찾게 되었다.

‘민자유치’, ‘민활사업(民活事業)’, ‘민자SOC’, ‘민관협력사업(Public-Private Partnership, PPP)’ 등 아주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되어 이루어지는 이른바 민자 사업은 지금도 도시 이곳저곳, 국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철수했지만 대표적인 국제 민자 사업자로 손꼽히는 맥쿼리는 천안-논산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광주제2순환도로(3-1구간), 마창대교 등 우리나라에 9개 사업장에서 여전히 큰 수익을 얻고 있다.

재원이 부족하면 공공사업에 민간의 재원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시민의 혈세로 민간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특혜성이 짙은 계약을 하거나, 시민보다 민간투자자를 더 우선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영화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 등 기본 생활에 직결되는 도시 기반시설이나 의료, 교육 부문까지 다 민간에 내어준다면, 이익 추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민간자본의 속성에 따라 민영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자본은 절대 강자이고, 아주 세고 지독한 놈이다. 자본이라고 하는 이 강자는 돈이 되는 일은 물불 가리지 않고 뭐든 한다. 자본이 우리가 사는 마을과 도시로 밀고 들어와 제 뜻대로 군림하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눈 똑바로 뜨고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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