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먼 이웃, 당신은 어떤 이웃입니까?

최경

발행일 2016.09.02. 14:40

수정일 2016.09.02. 15:08

조회 1,235

무지개ⓒnews1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8) 당신은 어떤 이웃입니까?

우리나라 사람 열 명 중 여덟 명은 공동주택에 산다. 예전의 마을풍경이 사라진 지금 아파트촌의 모습은 어디나 다르지 않다. 아파트의 삶은 더 편리해지고 윤택해졌고 이웃의 개념도 달라졌다. 과거엔 없던 위층, 아래층이 생겼고, 옆집과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굳이 이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시시콜콜 알던 시절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오히려 이웃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해졌다. 단지 나와 내 가족만큼은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조용하고 착한 이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 대도시 아파트의 윗집 여자는 3살, 5살 사내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수시로 목청을 돋우는 게 엄마의 일상이다. 더군다나 아랫집 여자가 여간 예민한 게 아니어서 조금만 아이들이 뛰면 어김없이 천장을 두들기거나 쫓아 올라와 거칠게 항의를 하는 통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애들한테 뛰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애들이 좀 놀 수도 있는 건데 엄마인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아이들을 잡아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걸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랫집 여자 때문에 아이들을 꽁꽁 묶어둘 수도 없는 일, 윗집 여자는 아랫집 여자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한편 아랫집 여자는 윗집의 젊은 부부가 이사 온 뒤로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윗집 사내아이들이 밤낮 없이 뛰어다니는데 쿵쿵 소리가 인내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바퀴 달린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라도 하면 집안 전체가 그야말로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것 같은 굉음으로 울린다. 몇 번을 찾아가서 사정도 하고 관리실에 하소연도 하고, 윗집 여자에게 얼굴을 붉히며 항의도 해봤지만 전혀 개선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젠 오히려 일부러 소음을 내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집이 막 흔들릴 정도거든요. 그러면 막 혈압이 높아지고 한참 동안 심장이 두근거려서 병원에 가야 할 지경이에요. 우리를 골탕 먹여 죽이려고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니까요.”

폭발 일보 직전인 아랫집이 윗집에 보복할 방법은 방망이로 천장을 두들기는 것밖에 없다. 하도 두드려 대서 천장 여기저기 움푹 팬 자국투성이다. 그런다 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결국 그날 오후, 윗집 아이가 소방차 장난감을 굴리며 놀고 난 후, 아랫집 여자가 윗집으로 뛰쳐 올라갔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내 화를 먼저 폭발하는 게 우선이다 보니 서로 감정만 더 악화돼 버렸다. 각자 속이 상할 대로 상해 눈물까지 흘린 뒤, 똑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원래 참 조용하고 착한 사람인데 이웃 잘못 만나서 성질만 다 버리네...’

한쪽은 참다못해 폭발하고 다른 한쪽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당하는 것이 이웃갈등의 일반적인 양상이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남의 입장을 고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어렵기 때문이다. 심리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은 견디다 못해 항의를 하는 건데도 상대방은 얼마나 참았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나?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또 항의한 쪽에서는 얘기를 했는데도 고쳐지지 않는 건, 저 사람이 우리를 무시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거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이웃 사이에 갈등이 더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 겁니다.”

제작진은 전문가의 도움으로 간단한 심리실험을 해봤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이 인사를 건넨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어떤 도움행동을 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내리면서 스태프가 상자에 담긴 재활용쓰레기를 쏟았을 때, 같이 탔던 실험참가자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봤다.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은 참가자들은 25%만이 쏟아진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걸 도와줬다. 그런데 스태프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넨 경우 참가자의 75%가 도와줬다. 인사하며 안면을 트는 효과가 의외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웃도 마찬가지다. 도시에 살면서 이웃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고, 내가 누구인지 이웃에 알려지는 것도 싫은 폐쇄적인 분위기가 팽배할수록 이웃과의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마음이 열리고 역지사지가 가능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갈등이 심각했던 윗집, 아랫집 여자는 결국 제작진의 중재로 함께 전문가의 상담을 받았고 서로가 원하는 것 한 가지씩 들어주기로 했다. 윗집에서 아이들이 놀 때 아랫집에 어떤 소음이 들리는지 직접 와서 들어보는 것, 직접 들어본 윗집은 소음이 상상했던 것보다 크다는 사실에 놀라며 부랴부랴 어린이용 매트를 깔았다. 아랫집 여자는 오후 시간대엔 다소 소음이 들리더라도 참아보겠노라 했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고, 일주일 후엔 윗집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아랫집에 과일을 준비해 방문했고, 아랫집 여자는 웃으며 이웃을 맞았다. 서로 얼굴만 붉히던 이웃은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세 닢으로 집을 사고, 천 냥으로 이웃을 산다’는 속담이 있다. 사이좋은 이웃을 만드는 데는 그만큼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착한 이웃을 만나기만 바라고 있다면 스스로 묻는 것부터 해야 한다. ‘과연 나는 어떤 이웃인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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