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와 준 가을에 감사

최순욱

발행일 2016.08.31. 14:26

수정일 2016.08.31. 16:27

조회 851

그리스 신화 시간과 계절의 여신 호라이. 이 그림에서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관장하는 셋과 계절의 흐름을 담당하는 셋으로 묘사됐다.ⓒWikipedia

그리스 신화 시간과 계절의 여신 호라이. 이 그림에서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관장하는 셋과 계절의 흐름을 담당하는 셋으로 묘사됐다.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43) 어김없는 시간의 흐름, 호라이

순식간에 가을이 다가왔다. 지난 주 까지만 해도 앉아서 그대로 쪄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었는데, 주말 이후 거짓말처럼 날씨가 쌀쌀해졌다. 오히려 창문을 열고 잠을 잤다간 고뿔이 들기 십상일 정도다. 게다가 오늘(31일)은 전국 각지에 태풍급 비바람이 몰아친단다.

덕분에 계절에 자연의 섭리에 다시금 감탄하고 말았다. 유난히도 더웠던 탓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러다가 가을 없이 곧바로 겨울이 오는 거 아닌가?” 내지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에 속하게 됐다더니 정말인가보다”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말이 되자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와 주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뭐 추석 전까지 간간히 남은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도 있겠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고대 사람들도 이와 같은 자연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1년마다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의 모습에서 신비로움을 느끼고 이를 신이나 정령, 요정 등의 모습으로 형상화해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이런저런 곳으로 퍼져나가면서 서로 비슷해지거나 좀 더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리스 신화의 호라이(Horai)이다. 호라이는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들로 계절과 질서의 여신들이다. 또한 계절의 규칙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간의 여신들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을 수호하기 때문에 생물(특히 식물)의 생장을 수호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며 나아가 인간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에도 관여한다. 호라이는 여러 그리스 신들 중에서 좀 덜 유명한 편인에 유명세에 비하면 많은 일의 무게는 굉장히 큰 셈이다.

사실 호라이는 여러 명의 여신들을 한꺼번에 부르는 말로 문헌에 따라 호라이가 몇 명인지, 각각의 이름과 역할은 무엇인지가 조금씩 다르다. 그렇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써 있는 대로 에우노미아(질서)·디케(정의)·에이레네(평화)의 세 여신들이 호라이를 나타낸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식물이나 꽃의 생장과 관련될 때는 탈로(발아)·아우크소(성장)·카르포(결실)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실 신이 자연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어찌됐건 시간, 또는 계절과 관련된 이런 개념들은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는 것 같다. 힘들 때도 있지만 변함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그리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무엇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바로 이런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닐는지. 변함없이 흐르는 시간과 흐르는 시간 속에 작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어김없이 찾아와 준 가을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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