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가족, 침묵하거나 폭발하거나

최경

발행일 2016.08.19. 15:11

수정일 2016.08.19. 17:15

조회 1,256

석양ⓒ시민작가 강명훈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6) ‘무언가족’, 그 어려운 해법 찾기 2

‘쾅쾅쾅!’

오늘도 김씨는 잠긴 방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너 누구 서로 죽는 꼴 보려고 그래? 빨리 문 열어. 문 열고 나와 보라고!”

잠긴 문 너머에선 아들이 날 선 목소리로 대꾸를 한다.

“문 열고 저만 나오면 뭐해요. 아빠하고 나하고 뭔 할 얘기가 있냐고요. 아빠가 나랑 싸웠어요? 아빠가 자초한 거예요. 이게 다!”

“너 때문에 엄마하고 싸웠지. 내가 누구 때문에 싸우겠니? 이 집안에 분란을 일으킬 사람이 너 밖에 더 있어? 그러니까 문부터 열고 얘기하자니까!... 야!!”

제작진에게 한숨을 몰아쉬며 연락을 해온 이는 아버지 김씨였다. 1년 전쯤 아들과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더니, 도무지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가 일을 하러 나간 뒤에야 방문을 연다는 모자. 문제는 방안에 있는 아내의 상태라고 했다.

“쟤 엄마가 장애가 있어서 손발을 못 써요. 휠체어 타고 누가 옮겨주고 해야만 씻고 나가고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20년을 살았어요. 내가 혼자 벌어 살다보니 갈수록 생활이 쪼들리고 혼자 버는 거로는 당해내질 못하니까 싸우게 되더라고요. 근데 아들놈이 스무 살이 넘었어요. 그러면 자기 앞길 알아서 챙기고, 집에 보탬이 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러는 것도 아니고, 저 놈 때문에 집사람이랑 한 번 크게 싸웠는데 그 뒤부터 둘이 나를 완전히 무슨 벌레 취급을 한다니까요. 지금 저 방안이요. 아주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이 됐다고요.”

20년 전, 장애를 가진 아내와 결혼해 낳은 아들이 스무 살이 넘었지만 앞가림을 못하고 있고, 그게 늘 싸움의 원인이었다. 결국 모자가 방문을 걸어 잠그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방안에 1년 가까이 치우지 않고 쌓아둔 쓰레기가 가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방문 가까이만 가도 악취가 진동했다.

“어휴, 가관이에요. 방안에 쓰레기가 산봉우리보다 더 올라 갔어요. 집에 와도 낙이 없는 거야. 자식이든 마누라든 딱 문 닫고 저러고 살지.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니까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내가 지금.”

제작진이 방 너머와 모자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며칠 동안 설득을 했지만 모자는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관찰을 해보니, 가장인 김씨가 출근을 한 뒤에야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와 화장실을 오가거나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와 방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방안에만 기거하는 아들과 어머니 사이도 그리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아들이 어머니를 씻기는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제대로 식사를 하는지, 화장실은 제 때 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쩌다 이런 가족이 돼 버린 걸까.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건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쓰레기가 가득한 방안에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 이웃의 민원으로 집주인이 집을 방문해 아들을 설득했다. 악취가 진동하는 바람에 이웃에 피해가 가고 있으니 방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아들은 일주일 만에 마지못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린 방안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로 가득했고, 그 한 구석에 어머니가 누워있었다. 어머닌 우리에게 기다렸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저도 이렇게 사는 거 원하지 않아요. 화해를 하고 싶어요. 근데 아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죽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죠.”

열악한 환경에서 1년 가까이 누워 생활해야 했던 어머니는 피부에 진물이 생기고 허물이 벗겨져 엉망이었다. 어머니에게 가정불화는 그야말로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안에 산처럼 쌓였던 쓰레기는 청소업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돼 사흘에 걸쳐 모두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방안이 말끔해졌다고 해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가족관계가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래도 가족 만큼은 변함없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끈이고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위로 받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믿어왔다. 설령 가족이 힘이 되지 않는다 해도 과거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살 때에는 이웃들이 대신 보듬어 주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가고 없다. 마을 공동체를 잃는다는 건, 한 개인의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서는데 필요한 끈들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시대, 누군가 가족으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하면 철저히 외톨이가 되고 돌이키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가족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한다면 고립된 상황에서 꺼내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입을 닫은 위기의 가족들이 한계를 넘어서면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뒤, 다시 방문한 김씨 집에서 제작진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활짝 열린 안방에서 김씨가 아내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있는 것이었다. 김씨 부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밝아 보였다. 단지 방안에 쓰레기를 치운 것 하나로 이렇게 관계회복이 가능했던 걸까? 그런데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먼저 말을 걸었어요. 남편이 자존심이 세니까 내가 먼저 화해를 청했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옥에서 살고 싶지 않거든요. 남편도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저만큼 힘들었을 거예요.”

김씨는 아내가 화해의 손짓을 해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 역시 쓰레기 방안에 방치돼 있는 동안, 수도 없이 남편에게 구조요청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식 때문에 혹은 자존심 때문에 벽을 깰 엄두를 낼 수 없었을 뿐. 그렇다고 이 가족이 처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아들과의 불화는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부부가 대화를 시작한 이상, 벼랑 끝에서 한발 물러서서 뭔가 다시 서로에 대한 희망의 끈을 붙잡을 수 있게 됐다. 가족은 운명으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한다. 그러나 운명도 서로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을 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기억 #세상풍경 #무언가족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