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고추의 알싸한 매력에 빠져봐~

서울식품안전뉴스

발행일 2016.08.12. 11:13

수정일 2016.08.12. 15:30

조회 1,491

고추가루

매운맛을 내는 고추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인들은 외국을 여행할 때도 고추장을 챙겨갈 만큼 매운 맛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불닭'처럼 눈물과 콧물을 쏙 빼놓는 매운 음식들도 여전히 인기다. 고추의 매운맛은 오늘날 한국인의 음식 소비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라고 할 수 있다.

후추보다 더 좋은 향신료, 고추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를 포함한 배 3척에 12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마침내 그토록 꿈꿔오던 항해에 나서게 되었다. 10월 12일에는 구아나하니라고 불리는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도착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인도의 한 부분에 도착한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고는 신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이 섬을 '성스러운 구제자'라는 뜻의 산살바도르 섬이라고 명명했다. 콜럼버스 일행의 항해 목적은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가서 동방에서 오는 비싼 향신료와 황금의 나라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는 4차 항해를 거쳤음에도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버뮤다 지역의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 부르고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을 인도 사람을 의미하는 인디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처럼 아메리카 대륙은 동방의 향신료 때문에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추

콜럼버스는 고대부터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고 비싼 동방의 향신료인 후추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추나무를 본 적도 없었던 그는 후추를 찾는데 실패했고, 대신 후추처럼 매콤한 맛의 고추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고추를 '후추보다 더 좋은 향신료'라고 일기에 기록했다. 고추는 16세기 초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들어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온대지역을 거쳐 인도와 아시아까지 반세기 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고추가 유럽에 들어온 초기에는 수입에 의존했던 후추를 대신해서 매운 맛을 내는 데 쓰였다. 그래서 후추(pepper)와 전혀 종이 다른 고추가 '레드 페퍼(red pepper)'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영조의 고추장 사랑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16세기 말 임진왜란 발발 무렵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본다. 이수광이 1613년에 펴낸 <지봉유설>에는 "남만초(南蠻草)는 센 독이 있는데 처음에 왜국에서 들어왔다. 그래서 왜개자(倭芥子)라 하였다. 때로 이것을 심고 술집에서 그 맹렬한 맛을 이용하여 간혹 소주에 타서 팔고 있는데 이를 마신 자는 대부분 죽었다고 한다"라고 기록했다. 이 글로 보아 고추 수입 초기에는 고추를 식용 작물로 보기보다는 독초로 의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본초강목습유>(1765년)에서는 "고추가 요즘 재배되어 시장에 많이 모여든다. 이 고추는 고추장을 비롯해 널리 쓰인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고추가 빠르게 정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에 고추는 매운 특성 때문에 맵다는 뜻의 고(苦)자를 붙여 고초(苦草)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이후 고추로 불리게 된다.

고추장, 고추

18세기 중엽에는 고추장이 등장한다. <증보산림경제>(1766년)에서는 메주가루와 고춧가루, 맑은 간장, 찹쌀가루 등으로 고추장을 만들었다. 18세기의 절반인 53년 동안 집권한 영조는 고추장을 무척 좋아했다. 영조는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 소식을 했다고 한다. 영조처럼 식욕이 떨어진 사람은 입맛을 돋우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입맛이 떨어질수록 영조에게는 식욕을 돋울만한 것이 필요했다. 왕의 언행을 기록한 1768년 7월 28일자 <승정원일기>를 보면 "송이, 생전복, 새끼 꿩, 고추장 네 가지 별미라, 이것들 덕분에 잘 먹었다. 이로써 보면 아직 내 입맛이 완전히 늙지는 않았나보다"라고 말했다. 이때 영조는 칠십대 중반을 넘었다. 사실 영조는 20년 전부터 식욕을 돋우는 매운맛의 고추장을 좋아했고 고추장 없이는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조의 고추장 사랑은 18세기 중반 고추의 매운맛을 즐기기 시작하는 '입맛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추가 김치를 만나다

고추는 김치와 만나면서 우리 음식에서 중요한 조미료로 자리 잡았다. 고추를 재배하기 전, 김치는 짠지와 같은 소금 절임의 형태였다. 고추가 없었을 때는 생강, 천초, 겨자 등을 사용해서 김치의 매운맛을 냈고, 자주색 갓이나 맨드라미 등으로 붉은색을 냈다. "잎줄기가 달린 무에 청각, 호박, 가지 등의 채소와 고추, 천초, 겨자 등의 향신료를 섞고 마늘즙을 넣어 김치를 담근다"라고 <증보산림경제>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오이소박이, 배추김치, 전복김치, 굴김치 등 다양한 김치를 담글 때도 고추를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고추에는 김치의 부패를 막아주는 성분이 들어 있다.

김치

이로 인해 김치를 담글 때 소금을 덜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젓갈이나 생선이 김치 양념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1700년대 말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도잡지>에서 섞박지를 만드는 법이 나와 있다. "끓여 식힌 새우 젓 국물로 무, 배추, 마늘, 고추, 소라, 전복, 조기 등을 섞어 저장"하면 매운 맛으로 삭는다고 했다. 김치는 발효를 통해 숙성된 채소의 감칠맛에 생선 단백질이 분해되어 내는 감칠맛이 더해지고 고추의 매운맛까지 모두 섞여 특유의 맛을 낳게 된다. 잘 삭은 매콤 새콤한 김치는 입맛을 돋우기에 그만이었을 것이다.

고추가 우리 땅에 들어온 지 400년이 넘었다. 고추는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과거에는 남자 아이를 낳으면 금줄에 마른 고추를 달고, 소주를 내릴 때도 소줏고리 주둥이에 붉은 고추를 매달아 잡귀를 물리치곤 했다. 이렇듯 고추는 우리의 의식과 미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외국음식이 들어온다고 해도 고추장과 김치는 앞으로도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글 정한진(창원문성대학교 호텔조리제빵과 교수, <세상을 바꾼 맛> 저자)

출처 : 서울식품안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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