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88서울올림픽`

시민기자 신유리

발행일 2016.08.11. 14:32

수정일 2016.08.16. 18:24

조회 1,55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개막식ⓒ뉴시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개막식

2주간 열리는 인류의 대제전, 브라질 리우올림픽이 시작됐다. 리우올림픽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세계인의 축제지만 우리에게는 더욱 각별하다. 2년 뒤, 평창올림픽 이전에 열리는 마지막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동하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8번째 국가가 된다. 28년 전 오늘, 우리가 막을 열었던 서울올림픽을 되돌아보고, 올릭픽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금12, 은10, 동1개로 세계 4위를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한국은 쭈욱~ 올림픽 200여개 참가국 중 10위권 안팎의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기 전, 한국 스포츠는 고작 ‘일본에게는 되도록 지지 않는다, 북한은 반드시 이긴다, 아시안게임을 언젠가 유치하면 좋겠다’는 목표를 가진 수준이었다. 86 아시안게임의 경우, 개최 시기는 더 앞서지만 서울올림픽 유치 이후에야 개최가 결정됐다. 올림픽 출전은 1948년부터 했지만 76년에서야 양정모 선수가 첫 금메달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갑자기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다니… 세계로부터 '한강의 기적', '위대한 올림픽'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서울올림픽. 대체 우리나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서울올림픽 조직위 준비과정 IOC 보고

서울올림픽 조직위 준비과정 IOC 보고

1. 모든 것의 시작, 바덴바덴 : 일본을 꺽다

1981년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서울은 일본의 나고야와 88 하계올림픽 유치를 두고 맞붙게 된다. 당시 일본은 동하계올림픽을 모두 개최 했던 스포츠 강국이었고, 우리나라는 아시안게임조차 치러본 적 없는 상태였다. 60년대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 속했고, 70년대 초엔 북한보다도 수교국가가 적었다. 누가 봐도 일본이 이기리라고 전망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발전상을 드라마틱하게 담은 동영상과 한국의 특색을 정성껏 준비한 전시회, IOC 의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과정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개최지 투표에서 서울은 52 대 27로 크게 승리하게 되었다. ‘우리도 이길 수 있구나’ 이 일은 일제 강점기 이후, 무의식 한 켠에 자리 잡은 일본에 대한 패배의식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된다.

2. 북한에게 화해의 손을 : 남북 공동 올림픽 시도

우리나라와 북한은 여전히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던 시기이다. 북한 공작으로 추정되는 86년 김포공항 폭발사고, 87년 대한항공 858기 실종 사건도 잇달아 있었다. 그럼에도 서울올림픽 유치가 가까워오자 동유럽권 국가들과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남북한 공동개최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서울올림픽준비위원회는 이런 의견에 부응해 북한과 공동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4차례 만나 협상을 시도한다. 우리 측에서는 5개 종목의 공동 출전을 제안했지만 북한 측에서는 8종목 공동출전, 평양올림픽 호칭과 TV 방영권, 공동 개폐회식 등 무리한 요구를 했다. 결국 북한은 끝까지 참여의사를 표시하지 않았고, 서울올림픽의 남북 공동협력은 무산되고 만다.

그러나 테러가 노골적으로 벌어지던 당시의 격한 상황으로 봤을 때는 평화적이고 고무적인 화해의 시도였다. 이후 스포츠를 통한 화해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입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3. 스포츠 강국 : 제일 어려운 일이 스포츠 스타를 만드는 일

아무리 올림픽이 성대하게 치러진다고 해도 개최국의 실력이 형편없다면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하지 않는다. 일례로 몬트리올 올림픽의 경우, 은메달 2개를 따는 데 그쳤는데 이 때문에 올림픽에 대한 자국민의 관심이 지극히 저조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유치 시의 기량으로 보면 결과를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유치 이후 7년 간 엘리트체육 육성을 위해 정책적인 투자를 했고, 서울올림픽 때 세계 4위라는 깜짝 놀랄만한 성과를 낸다. 김운용 전 IOC부위원장(당시 서울올림픽준비위 수석부위원장)의 회고록을 보면 “올림픽 준비 과정 중에 스포츠 스타를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예상외의 선전에 서울올림픽은 열화와 같은 성원과 관심 속에 치러지게 되었다. 나 역시 당시엔 무척 어렸었지만 아빠를 따라 낮이고 밤이고 올림픽 프로그램을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4. 한강의 기적 : 세계가 다시 보다

세계가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약소국,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얼룩진 나라, 민주주의 없는 독재국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 일색이었다. 아니, 어쩌면 존재감 없는 변방의 국가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세계무대에서 도무지 눈에 띄는 일이 없는 나라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는 서울을 다시 보게 되었다. 88올림픽 기간 동안 160개 국가에서 24만 명이 우리나라를 찾아와 번화한 도시, 잘 닦여진 도로, 발전하고 있는 경제, 우수한 경기능력, 유구한 전통문화 등을 경험한다. 또 올림픽 기간동안 227개 방송망을 통해 140개국에 우리나라를 알릴 기회를 가졌다. TV방영권이 올림픽의 주요 수입원이니 돈을 받고 전 세계에 대대적인 광고를 한 셈이다. 외국의 언론들은 우리나라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며 발전된 변화상을 소개했다.

5. 위대한 올림픽 : 12년 만에 냉전 종식

서울올림픽 이전에 치러진 2차례의 올림픽은 반쪽 올림픽이라 불리웠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냉전으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선 미국이, 1984년 LA올림픽에선 소련이 보이콧을 선언하고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 사회주의국가들과 정식 수교를 맺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하지만 온전한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권 국가들이 참석하도록 최대한 노력했고, 12년 만에 동서 양 진영에서 모두 참석하는 온전한 올림픽을 치러낸다.

당시 160개국이 참석해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참여하고, 약 5억 달러의 수익을 내 가장 흑자를 많이 낸 올림픽으로 기록되었다. 물론 지금은 두 기록이 모두 깨진 상태다.

6. 외교의 길을 여다 : 동유럽권 국가들과 외교관계 수립

1945년 이후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사회주의 국가들과 교류가 없었다. 그런데 동유럽권 국가들의 올림픽 참여는 우리나라와의 정식 외교관계로 이어지게 된다.

소련, 동독,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올림픽 참석을 위해 우리나라에 임시 영사사무소 개소를 요구한다. 소련은 올림픽의 편의를 위해 영공을 대한항공이 지날 수 있도록 허가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8월 17일부터 50일간 지정했던 서울올림픽 예술축제 기간 동안 한국과 처음으로 문화 교류를 하게 된다.

올림픽 직후, 11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국과 정치와 외교를 제외한 경제, 학술, 문화, 체육,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교류하기로 결정하고 상공회의소 설치에 합의한다. 신데탕트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잇따라 다른 동유럽권 국가 및 중국과도 정식 외교관계의 문을 열게 된다.

7. 가장 값진 성과 : 나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모든 성과들도 중요하지만 88올림픽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가장 값진 선물은 우리나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더라’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해낼 수 있다는 승리의 경험이 마음 속에 새겨지게 된 것이다.

올림픽에서 매스컴에 주로 비춰지는 건 스포츠의 경기력과 메달의 획득 여부이지만 사실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모든 분야가 결집 돼 치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이자 교류의 장이다. 경기력 향상, 외교, 행정, 건설, 마케팅, 경기운영 및 심판, 수송, 교통, 숙박, 음식, 안전, 통번역, 방송, 의료, 법률, 공연 및 전시 등 각종 분야의 일들이 맞물려 돌아가야 성공할 수 있다.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5만 명의 운영위원, 2만 6,000명의 출연자, 11만 2,000명의 안전요원, 2만 1,000명의 성화봉송 협력자, 1만 5,000명의 지원업무 등 22만 4,000여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분야에서 많은 이들의 협력이 이루어진 것이다.

올림픽은 스포츠 경기라는 것보다 세계의 국가들이 한 자리에서 교류할 수 있는 축제라는 점이 더 크게 와 닿는다. 어떻게 치러내느냐에 따라서 국가 이미지와 실질적인 경제성과, 외교관계 등이 크게 달라지게 되니까. 브라질올림픽을 볼 때도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이런 역학관계도 염두에 둔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초의 남미올림픽, 최초로 난민이 참여한 올림픽으로 기억될 브라질 올림픽…. 대통령 탄핵, 불안한 치안, 경기장 미비, 지카바이러스, 청결 문제, 도핑 소동 등 갖가지 우려를 안고 시작하는 브라질올림픽이지만 어렵게 준비한 만큼 올림픽 이후 좋은 소식이 들려왔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올림픽의 백미는 개회식과 폐회식이다. 지구상의 어떤 축제도 올림픽 개폐회식처럼 한 번에 많은 인원과 자금을 투자해서 만들지 않는다. 이번 리우올림픽 개회식은 역대 최저 예산임에도 불구하고 230억 원 정도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런던올림픽 개회식(460억 원)의 절반 정도 규모다. 개최국은 전 세계 사람들이 보게 되는 개회식과 폐회식에 자국의 문화, 역사, 철학, 예술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최상의 노력을 해서 만들어낸다. 혹시 개회식을 보지 못했다면 폐회식은 놓치지 말자.

■ 참고도서

위대한 올림픽/ 김운용/ 연세대학교출판부/ 1990

세계를 향한 도전/ 김운용/ 연세대학교출판부/ 2002

바덴바덴의 기적 남기고 싶은 이야기/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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