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연애편지' 쓰듯이

강원국

발행일 2016.08.08. 16:37

수정일 2016.08.08. 17:38

조회 1,389

연인ⓒ뉴시스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2) 바로 그 한 사람을 위해 써라

군대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집에 옷가지를 부치면서 편지를 쓰게 한다.

이 편지를 받은 대다수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초등학교 다닐 적, 위문편지를 많이 썼다.

이 편지를 받은 국군 장병 아저씨가 우는 경우는 없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훈련병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가 아니라 자기 ‘엄마’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초등학생은 이 땅의 모든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썼기 때문이다.

훈련병은 특별한 한 사람을 독자로 하고 있고, 초등학생은 불특정 다수가 독자다.

대상이 분명할 때, 할 말이 구체화되고, 진심이 담긴다.

임자가 없는, 번지수가 불분명한 글은 감동을 주기 어렵다.

연애편지는 늘 감동적이다.

대상이 명확하고, 간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상관없다.

누구를 독자로 상정하고 쓰는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누구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느냐고 물어봤다.

저학년은 담임선생님을 독자로 상정하고 썼다고 대답했다.

고학년은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부분 사람이 독자를 명료하게 떠올리며 글을 쓰지 않는다.

상대를 꼭 집어놓고 쓰지 않으면 글이 공허해진다.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아무도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글이 된다.

일반론으로 흐르거나 추상적인 글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무엇을 써야 할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으니, 그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도 막연한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는 독자가 분명하다.

보고서를 읽게 될 상사가 독자다.

이 경우에도 상사의 성향과 취향 등을 속속들이 알수록 잘 쓸 수 있다.

글쓰기는 독자와의 대화

“글을 쓰기 전에는 항상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라 상상하라. 그 사람이 지루해 자리를 뜨지 않도록 하라.”

전 세계 작가 중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미국 소설가 제임스 패터슨의 말이다.

독자를 시야에서 놓치지만 않아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글재주를 타고나지 못하고, 독서량과 어휘실력이 부족해도 말이다.

인기 드라마 작가는 시청자 심리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시청자 반응을 보며 드라마 결말을 바꾸기도 한다.

연설을 잘하는 사람은 청중 연구에 철저하다.

청중 반응에 따라 준비된 연설 내용을 즉석에서 수정하기도 한다.

문인들은 더하다.

최인훈 소설 <광장>,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모두 증쇄 때마다 개작을 거듭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도 독자의 비판을 수렴하여 몇 차례나 고쳐 썼다.

글쓰기는 독자와 발을 묶고 함께 뛰는 2인3각 경주다.

글은 독자를 상정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독자에게 읽힘으로써 완성된다.

독자는 글의 시작이자 끝이며, 글쓰기는 독자와의 공동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 작품을 ‘팽이’에 비유한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은 맞다.

계속 맞아야만 팽이가 서있을 수 있듯이, 문학 작품 역시 독자의 읽기 행위에 의해서 지탱될 때만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한 글쓰기

특정인을 독자로 두고, 그에게 말을 걸고 대화하듯 써보자.

그가 내 글에서 얻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느 대목에서 지루해 할지,

어디에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할지,

끊임없이 물으면서 써야 한다.

그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상태를 고려하여,

그의 수준에 맞게,

그가 관심 갖는 것을,

그가 좋아할 만한 어휘와 전개방식으로,

그의 기대에 부응하게 쓰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고 정확하게 알게끔 쓴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알고 싶은 것을 쓴다.

그가 내 글에서 무엇인가는 얻어갈 수 있게 쓴다.

사실과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것을,

관점과 시각과 해석을 얻고자 하는 독자에겐 그것을,

느낌과 감동에 목마른 사람에겐 또한 그것을 선사한다.

독자를 읽고 쓰는 방법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독자를 정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한 사람이면 된다.

자기 주변에서 찾는 게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고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

청와대에서 글을 쓸 때, 내 글의 유일한 독자는 대통령 한 사람이었다.

간혹 좋은 글이 나온 경우는 바로 그 독자에게 깊이 빙의됐을 때였다.

끝으로, 확장한다.

다른 상황에 있고, 다른 기대를 가진 독자 몇 사람을 더 생각한 후 거기에 맞춰 글을 수정한다.

그래야 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그 사람만을 위한 글에 머물지 않는다.

내 아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모든 젊은이로 대상을 확장할 수 있다.

내 아내나 아버지를 상정하고 쓴 글 역시 많은 이들을 상대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20~30대 남녀 직장인을 독자로 생각한다.

그들이 내 글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들이 글을 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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