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되기' 참 어려운 세상

최경

발행일 2016.08.05. 14:34

수정일 2016.08.05. 17:35

조회 902

아기ⓒ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4)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반대가 아무리 심해도 자식이 원하는 것을 끝내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 부모가 반대하는 진로, 부모가 반대하는 수많은 선택들에서 자식들은 처음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지만 끝끝내 승리하고 만다. 물론 결과는 부모가 염려했던 대로 나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식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식의 몫이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을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일들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몇 년 전, 집안에서 대화가 전혀 없는 가족들에 대한 방송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제보를 해온 이는 어머니였다. 스물여섯 살 아들이 군대를 다녀온 뒤부터 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였다. 대체 이유가 뭔지 대화를 해보려고 해도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부모와 얼굴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억지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화를 내고 폭력적으로 변해 건드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건, 때가 되면 방문 앞에 밥상을 차려 갖다 주는 것이란다. 배가 고프면 그제야 문을 살짝 열고 밥을 가져다 먹는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안방을 차지하고 문을 잠가버린 아들, 용변도 안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문밖으로 나올 일이 없단다. 부모는 방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자식 때문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살고 있다며 한숨을 지었다.

“처음엔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애를 밖으로 끌어내 보려고 했지만, 안되더라고요. 내 자식이지만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뭔 짓을 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착하고 부모 말 잘 듣던 애가 왜 갑자기 저러는 건지. 취직시험에 몇 번 떨어지더니 상심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저런 애가 아니에요.”

그런데 이런 ‘은둔형 외톨이’ 자식과 제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며 연락을 해온 부모들이 의외로 많았다. 공통적으로 자식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를 단절한지 5~6년 이상이 됐고, 스무살을 훌쩍 넘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심리전문가는 은둔형 외톨이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스무살 이상 나이가 많을수록 예전의 모습으로 돌이키기 힘들다고 했다. 외부로부터 상처를 받고 패배감과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위축시키다가 어느 순간 상처받지 않는 공간, 그러니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 기간이 길어지면 현실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라고 했다. 처음엔 안쓰러워서, 혹은 아직 감당할 능력이 되니까 자식의 문제를 그냥 덮어주고 지켜만 보다가는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제보를 해온 부모 대부분이 60대 중후반으로 이미 체력도 경제력도 전 같지 않게 약해져 있어서, 방안에서 괴물이 돼가는 자식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져버린 후였다. 답이 없는 전쟁. 전문가 역시 해결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생각이라면서 툭 던진 이야기가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거예요. 부모가 나이 들어 죽거나, 아니면 방안의 자식을 그대로 둔 채로 독한 마음먹고 떠나 버리거나. 먹여살려주던 부모가 없어지면 방을 나올 겁니다. 기생할 곳이 없어지니까요.”

결국 이 가족에 대해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방송도 하지 못했다. 다만 부모는 나이가 들수록 자식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만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괴물이 된 자식을 만나지 않으려면, 그 전에 자식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오냐오냐 키우다가는 나중에 골머리 앓는 자식으로 클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간섭을 하다가는 아예 자식과 등지며 살 수도 있다. 독립심도 키워주고, 자발성도, 인격도, 사회성도 제대로 뿌리박힐 수 있게 자식을 키워야 한다. 그러고 보면 아이를 낳는 것도, 제대로 키우는 것도 참 어렵다. ‘부모 되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부모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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